씨름은 알지만 ‘씨름의 희열’을 모르는 당신께 [권해요]

씨름은 알지만 ‘씨름의 희열’을 모르는 당신께

기사승인 2020-01-18 07: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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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장사다.’ 장사(壯士)는 몸이 우람하고 힘이 아주 센 사람을 뜻하는 단어다. 씨름 경기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남는 최후의 승리자, 최강자만이 얻을 수 있는 타이틀이기도 하다. 하지만 힘이 센 것만으로는 씨름판의 장사가 될 수 없다. 상대를 번쩍 들어 올리는 힘은 기본이고 여기에 복잡한 수 싸움과 화려한 기술까지 더해져야 비로소 장사의 자리를 넘볼 수 있다. 

열여섯 명의 금강·태백급 선수들이 모여 경량급 장사인 태극장사를 가리는 KBS2 예능 ‘태백에서 금강까지 씨름의 희열’(이하 ‘씨름의 희열’)은 모래판 위 승부에 힘뿐만 아니라 얼마나 많은 것이 필요한지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11월 30일 첫 방송을 시작해 매주 토요일 오후 10시45분 방송된다. 총 12회로 마지막 회인 결승전은 생방송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씨름의 희열’은 씨름은 알았지만 씨름이 주는 희열을 몰랐던 사람들에게 권할만한 프로그램이다. 씨름의 기본적인 규칙을 모르는 한국 사람은 별로 없지만, 씨름의 기술이 얼마나 다양하고 역동적인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씨름의 희열’ 출연자 16인은 씨름판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이다. 그들은 지금껏 하던 대로 경기를 하지만, 시청자는 새로운 재미를 발견한다. 작은 체구의 선수가 큰 체구의 선수를 이기는 이변은 물론이고, 예쁜 씨름이 무엇인지, 왼덧걸이와 앞무릎차돌리기가 무엇인지, 경기 중간에 바나나를 비롯한 음식물을 먹어도 되는지 등을 알게 되는 것이다. 

씨름은 알지만 ‘씨름의 희열’을 모르는 당신께 [권해요]

‘씨름의 희열’은 시청자가 씨름을 보고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충실한 안내자 역할을 한다. 씨름에 오롯이 집중해 진정성을 보여주는 한편 영리한 경기 구성 등을 통해 예능적인 재미를 잃지 않는다. 첫 경기인 라이벌전과 체급대항전에서는 탈락자를 두지 않아 출전한 선수 전원의 특징과 장점을 보여줬다. 자연스럽게 선수들의 캐릭터도 만들어졌다. 시청자는 이 과정을 통해 씨름의 다채로운 기술을 익히며 응원하고 싶은 선수를 점찍었다. 시청자가 몰입할 준비를 마치자 본격적으로 탈락자가 발생하는 조별리그를 시작했다.

화면과 음악은 프로그램의 완성도에 방점을 찍는다. ‘씨름의 희열’은 전통 스포츠인 씨름을 세련된 방식으로 풀어내며 새로운 이미지를 만든다. 특히 경기가 끝난 후 나오는 느린 화면과 해설은 모르고 지나쳤던 ‘씨름의 희열’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눈 깜짝할 사이 끝나버린 단판 승부에 어떤 기술이 사용됐고 그 기술은 어떠한 원리를 토대로 한 것인지, 선수들의 목소리로 직접 들으며 곱씹을 수 있는 것이다. 몰랐던 씨름을 알게 될수록 시청자는 희열을 느낀다. 적재적소에 쓰인 음악도 마찬가지다.

‘씨름의 희열’ 연출은 ‘순한 맛’이다. 모든 것은 모래판 위에서 이뤄진다. 바깥의 사연에 눈을 돌리기 보다 씨름과 선수들의 실력과 노력을 조명한다. 순하다고 싱거운 것은 아니다. 정중하되 치열하고 박진감이 넘친다. 가장 중요한 것에 집중했기에 가능한 진국의 재미다.

인세현 기자 inout@kukinews.com / 사진=K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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