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정치권, 코로나19 사태 속 ‘총선’ 강행의지 여전

해외에선 대선·올림픽 등 ‘연기’ 결정… 선관위, 17개국 재외국민 투표 ‘불가’로 ‘끝’

기사승인 2020-03-28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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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 오준엽 기자 = 정부와 정치권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국내 전염이 사실상 종식돼간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많은 사람이 모여도 방역에만 신경을 쓴다면 통제가 가능한 상황이라고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21대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4.15 총선 얘기다.

코로나19 사태의 현황을 살펴보면, 27일 0시 기준 국내 확진자가 총 9332명으로 집계됐다. 전날과 비교하면 91명이 늘었다. 확진자 발생 추이는 지난 22일 98명으로 떨어졌지만 90명 전후로 오르내린다. 사망자도 전날보다 8명이 늘어 누적 사망자가 139명에 이르렀다.

홍콩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대입일정을 4주 뒤로 연기하기로 했다. 지난 2일부터는 사무실로 출근했던 공무원들이 26일 다시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학교도 계속 문을 닫았다. 지금까지 홍콩의 확진자는 273명, 사망자는 4명이다.

19명의 확진자가 나온 볼리비아는 5월 초로 계획됐던 대선과 총선을 모두 미루고, 오는 29일부터 2주 간 전 국민에게 격리조치를 명했다. 미국도 11월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연기를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반정부군과 내전 중이던 리비아는 잠정적인 휴전에 들어갔다.

하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7일 자정, 17개국 23개 재외공관에서 이뤄질 예정이었던 해외체류 내국인 1만8392명의 선거권만을 사실상 박탈했다. 이외의 조치라면 추가하기로 했던 해외 10개 투표소 계획을 철회한 게 전부다.

굳이 더하자면 미국 동부 등 일부 지역의 코로나19 확산세를 살펴 재외선거 사무중지 결정 등 선거권 제한조치를 추가로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을 뿐이다. 국내에서의 선거일정은 예정대로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셈이다. 

일부에서 제기된 선거연기에 대해서는 검토도 하지 않았다. 선관위 관계자는“선거연기는 대통령 결정사항이며, 일정 변경 등 선거법 개정은 국회의 역할”이라며 “선관위에서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했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선거연기 등에 대한 의견개진이나 검토도 하지 않았냐는 추가질문에는 “논의된 바가 없다. 권한도 없다”고 답했다.

그렇다고 선거연령 확대에 따른 만18세 이상 청소년들의 선거교육을 철저히 하거나 투표소에 대한 철저한 방역조치도 계획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장 선거를 23일 앞뒀던 지난 25일 선관위는 고교생 유권자를 대상으로 하는 대면 선거교육을 전면 취소했다. 

대신 영상시청과 시청각지도, 메시지 발송 등으로 올바른 투표권 행사를 유도하겠다는 계획만을 세우고, 아이들도 없는 일선 학교로 ‘학생 유권자 대상 선거교육에 만전을 기하라’는 내용의 공문과 선거관련 홍보물 및 포스터만 덩그러니 보냈다. 실제 교육은 개학인 6일부터 선거 전날인 14일까지 7일이 전부인 상황이다. 하지만 추가 계획은 내놓지 않고 있다.

방역도 문제다. 선관위는 투표소 입구에 손소독제를 구비하고 1명이 투표를 하고 나오면 투표소를 매번 소독하는 방안을 내놨다. 아울러 투표 시 줄을 설 경우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도록 안내하겠다고 했다. 다만 유권자들에게 마스크를 꼭 착용하고 올 것과, 증상이 있을 경우 투표를 하지 말아달라는 당부의 말도 남겼다. 투표권도 중요하지만 국민 안전을 위한 조치란다.

한편 대책이 없기는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별 논의도, 답도 없었다. 심지어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될 때인 3월 초 선거연기를 제안했던 바른미래당은 민생당으로의 합당과 내분, 비례공천을 둘러싼 내홍 등으로 추가논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시일을 보냈다. 미래통합당은 선관위의 행태를 강하게 비난했지만, 묘안을 내놓지는 못했다.

김우석 상근대변인은 27일 논평을 통해 “WHO(세계보건기구)가 팬데믹(감염병 세계 대유행) 선언을 한지 벌써 보름이 넘었다. 그동안 중앙선관위는 뭘 했냐”며 “어떻게 하면 선거업무를 안전하게 수행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선관위의 일인데 고작 내놓은 게 선거권 박탈이냐”고 질타했다.

이어 “해외의 국민은 국민이 아니냐. 그들은 투표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이를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겠냐”며 “그렇지 않아도 정부의 무능과 초기대응 실패로 확진자가 9000여명에 이르는 등 국민이 오롯이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의 대표자를 뽑는 소중한 권리마저 포기하라니 국민들은 황당하기만 하다”고 꼬집었다.

그렇지만 ‘코로나19 확산사태 속에서 통합당이 검토하고 있는 혹은 논의된 대안이나 대책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야당이 행정기관을 거느리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대책을 만들고 제안하긴 어렵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에 문제점을 지적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며 “대책을 만드는 것이 선관위와 정부의 역할”이라고 답했다.

정부·정치권, 코로나19 사태 속 ‘총선’ 강행의지 여전

이와 관련 소수정당 지도부에 속한 한 의원은 “지금 국민들의 온 정신은 코로나에 쏠려 있는데 후보나 정당의 정책이나 공약을 살펴보고 올바른 선거를 할 정신이 있겠냐. 후보의 얼굴이나 이름이라도 알면 다행”이라며 “결국 거대양당의 선거법을 악용한 꼼수에 코로나 사태까지 겹쳐 소수정당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불편한 심기를 여과 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위원도 “지금 두개의 역병이 우리를 덮치고 있다. 하나는 물론 코로나19다. 한데 인류 문명 전체가 이렇게 너무도 급박하게 대전환을 요구받는 시점에 대한민국에서는 또 다른 역병이 함께 창궐하고 있다. 거대 양당의 비례위성정당 경쟁이 그것”이라며 한 칼럼에서 선거연기의 필요성을 설파했다.

정치개혁을 가로막고 뒤집으려는 위성정당이라는 퇴행적 시도가 인류 전체의 대전환을 요구하는 재난과 동시에 전개되고 있는 만큼 총선을 연기하고 위성정당들을 모두 해산해 21대 국회는 양당 카르텔을 넘어서는 다양성과 역동성을 바탕으로 새 시대의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만약 실패할 경우 정치는 퇴보하고 개혁은 멀어질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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