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배우고싶어요”·“간호사 배치기준 부실해요”

청와대 앞에 선 간호사들의 생존권 투쟁 ②

기사승인 2020-07-03 06:5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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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 #“정부 고위 인사들의 ‘덕분에 챌린지’를 보면 화가 나요. 국민들이야 직접 도울 방법이 없으니 의료진을 응원하는 운동에 동참한다지만, 제도를 개선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일반 국민처럼 엄지만 내밀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입니다.”

간호사들이 차트 대신 피켓을 들고 청와대 앞으로 나왔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덮쳐오자 한계가 드러난 간호사 근무환경의 실태를 고발하기 위해서다. 일주일간 진행되는 릴레이 1인 시위에는 날이 갈수록 취재진의 발길이 뜸해졌다. 그러나 간호사들은 더 큰 목소리로 발언을 이어갔다.
“더 배우고싶어요”·“간호사 배치기준 부실해요”
1일 발언에 나선 최원영 서울대병원 간호사/사진=한성주 기자

신규 간호사 교육기간 부족하다

황은영 간호사는 신규 간호사들에게 업무 숙지 기간을 보장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는 “환자들에게 신규 간호사는 안쓰럽지만, 내 담당 간호사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존재”라며 “신규 간호사들이 그런 존재가 되는 이유는 충분한 교육 기간을 거치지 못한 채 살인적인 업무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규 간호사에게 주어지는 업무 숙지 기간은 최대 3개월이다. 황 간호사는 “3개월은 서울아산병원같은 대형병원 일반병동 간호사에게 주어지는 교육 기간으로, 평균과 비교해 아주 긴 축에 속한다”며 “내가 입사할 당시 서울의료원은 6주를 줬는데, 신규 간호사들이 난색을 보이자 8주로 늘려줬다”고 덧붙였다.

그는 충분한 교육기간이 보장되지 않는 원인으로 인력 부족 문제를 꼽았다. 황 간호사는 서울의료원에서 첫 근무를 시작한 지 2개월 차에 중증 환자 5명을 포함해 10명의 환자를 간병인 없이 혼자 간호했다. 그의 동료 가운데는 20명을 혼자 간호한 경우도 있었다. 황 간호사는 근무 강도와 선임들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3개월 만에 퇴사했다. 이후 폐쇄병동에 입원해 1개월 이상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황 간호사는 자신이 겪은 일이 특이한 사례가 아니라고 말했다. “간호사들은 신규 때 자살 생각 안 해본 간호사는 없을 거라는 말을 농담처럼 한다”며 “이게 정상적인 상황인가”라고 반문했다.

전날 발언에 나선 최원영 서울대병원 간호사도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최 간호사는 “짧은 교육기간이 끝나고 신규 간호사들 병원에서 늘 민폐 취급을 받는다”며 “신규들은 어떤 기상천외한 실수를 저지를지 모르는 폭탄이라는 말을 듣는다”고 말했다. 이어 “대체 왜 업무를 제대로 숙지시키지 않고 신규 간호사들을 독립시키는 것이며, 왜 갓 입사한 신규 간호사한테 경력 있는 간호사와 같은 업무량을 소화하도록 강요하는가”라고 토로했다.

최 간호사는 신규 간호사에게 충분한 교육기간을 보장하지 않으면 환자도 피해를 입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임상에서 직접 환자를 간호하게 되면 간호 업무가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절실하게 느껴진다”며 “(간호 업무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다면) 간호사들은 보호자의 눈물, 환자의 고통과 죽음이라는 성적표를 받게 된다”고 말했다.

“더 배우고싶어요”·“간호사 배치기준 부실해요”
2일 시위를 시작한 황은영 간호사/사진=한성주 기자

간호사 배치기준이 부실하다

최정화 간호사는 간호사 배치기준이 현장의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 간호사는 이날 현장에 참석하지 못해, 이민화 간호사가 발언문을 대독했다.

간호사 배치기준은 의료법상 의료기관이 확보해야 하는 최소한의 간호사 인원이다. 의료법 시행규칙 38조에 따르면, 종합병원은 평균 1일 입원환자를 2.5명으로 나눈 수만큼 간호사를 고용해야 한다. 요양병원의 경우 연평균 1일 입원환자 6명마다 간호사 1명을 두어야 한다. 외래환자는 12명당 입원환자 1명으로 환산된다. 

최 간호사는 간호사 배치기준을 강화해 지방 병원도 적정 간호 인력을 확보하고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간호사의 급여는 지역과 병원 규모에 따라 편차가 크다. 대도시보다 지방에서는 간호사 이직·사직도 잦다. 최 간호사는 “우리나라에서 면허를 가진 간호사 가운데 임상간호사는 50%인데, 이는 OECD 최하위 수준 간호사 면허증의 절반이 장롱면허”라며 간호사들이 오랫동안 병원에 머물며 경력을 쌓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지방 병원 간호사들은 병원을 떠난 동료의 공백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빈번하다. 최 간호사가 근무하는 지방 종합병원에서는 올해 상반기에만 6명의 간호사가 사직했다. 그는 인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이달부터 병동을 재배치받았다. 최 간호사는 의료기관에서 필수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간호사 인원의 하한선을 높여, 지방 병원이 간호사 확보를 위해 근무 환경과 간호사 처우를 개선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최 간호사는 ‘아프면 쉴 수 있는’ 근무 환경을 만들어줄 것을 촉구했다. 그는 “간호사들에게 ‘아프면 민폐’라는 말을 듣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라며 “태움(선배 간호사가 신규 간호사의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괴롭히는 교육 방식) 문제로 간호사들이 목숨을 끊는 사건들의 배경에는 인력 부족과 (높은) 노동 강도 문제가 깔려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섣불리 제도를 도입하거나 변경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간호사 인력을 확충하고, 근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복지부 간호정책TF 관계자는 신규 간호사 교육 방안에 대해 “교육전담 간호사 지원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며 “작년부터 간호사협회와 소통하며 신규 간호사 교육 관련 안내사항을 마련, 병원에 배포했다”고 말했다.

이어 “교육 기간을 보장하라는 현장의 요구가 있는 것은 알지만, 신규 간호사 교육을 제도화해 모든 병원에 일괄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개별 병원마다 규모와 환경이 상이하고, 만약 교육을 제도화 한다면 신규 간호사들이 교육을 이수할 수 있는 일부 병원으로만 가야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간호사 배치기준에 대해서는 “의료법상 기준치를 높인다고 해도 당장 병동에 간호사 인력이 보충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신규 간호사의 배출이 늘어나고, 간호사들이 의료기관에 오랜기간 남아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또 “간호사 면허 소지자 가운데 15~20%는 학교·복지부·심사평가기관 등 비의료기관에서 근무하고 있다”며 “의료기관이 간호사를 우선 확보할 수 있도록 병원의 근무 환경을 개선하고자 노력 중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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