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오너 2·3세 잇달아 전면 등장…전문경영인 체제 뒷걸음질?

기사승인 2020-07-03 05: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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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 오너 2·3세 잇달아 전면 등장…전문경영인 체제 뒷걸음질?
한화생명 김동원 상무(왼쪽)과 김남호 DB그룹 회장(오른쪽). 사진=각사
[쿠키뉴스] 김동운 기자 = 보험업계에서 오너 2세·3세들이 경영 일선에 나서며 가업 승계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제야 본격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전문경영인 체제가 후퇴하는 모습을 보일까 우려하고 있다.

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한화생명 김동원 상무와 DB그룹 김남호 DB금융연구소 부사장은 각각 한화생명 최고디지털전략책임자(CDSO)와 DB그룹 회장으로 경영 일선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최근 보험사 오너의 후계자가 가장 먼저 선두로 나선 곳은 한화생명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차남 김동원 상무는 지난해 8월 한화생명의 최고디지털전략책임자(CDSO)에 취임했다. 이후 지난달 15일 한화생명은 김 상무 주도로 디지털 중심의 조직개편을 단행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한화생명 본사 내 사업본부의 약 60%가 디지털과 신사업 영역으로 전환됐으며, 한화생명 내 김 상무의 영향력이 커지게 됐다.

DB손해보험을 자사로 두고 있는 DB그룹도 김준기 전 회장의 장남인 김남호 DB금융연구소 부사장을 신임 그룹 회장에 선임하면서 본격적인 ‘2세 경영’ 체계에 돌입했다. 김남호 신임 회장은 DB손해보험과 DB아이엔씨의 최대 주주로, 내년 초 정기주총을 거쳐 그룹 제조서비스부문의 실질적 지주회사인 DB 아이엔씨의 이사회 의장도 겸임할 계획을 밝히며 사실상 일인 체제를 공고히 할 계획이다.

이외에 오너가 있는 보험사들의 2세 및 3세들도 각각 승계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교보생명의 경우 신창재 회장의 장남 신중하씨는 지난 2015년 자회사 KCA손해사정에 대리로 입사, 2018년 기준 과장으로 승진했으며, 차남 신중현씨는 해외에서 유학하고 있다. 신창재 회장은 이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들들의 경영능력을 확인한 뒤 경영권을 넘겨줄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뜻을 밝힌 바 있다.

오너 2세 정몽윤 회장이 진두지휘하고 있는 현대해상의 경우 아직 본격적인 경영 승계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다만 장남 정경선씨가 운영하고 있는 비영리법인 루트임팩트와의 활발한 교류를 이어가며 접점을 늘려가고 있다. 

이처럼 보험업계에서 본격적으로 오너 2세·3세들이 경영 일선에 나서는 모습을 보임에 따라, 금융 전문가들은 이제야 뿌리를 내리고 있는 전문경영인 체제가 후퇴할까 우려하고 있다.

금융소비자연대 배홍 보험국장은 “일단 전문경영인보다 오너 체제가 좀 더 빠르고 신속한 의사결정체계를 가질 수 있다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보험이라는 금융업 특성상 가장 정교하고 어려운 분야를 오너 2·3세에게 맡기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특히 대면 접촉이 많은 보험업계 특성상 시작부터 치열한 경쟁을 거쳐 올라온 전문경영인이 보험사를 더 잘 이끌어 나갈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양대학교 이창민 경영학과 교수는 오너 기업 체계보다 전문경영인 체계가 실적면에서도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해외에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전반적으로 2세 또는 3세가 경영권을 승계하는 것은 기업의 가치나 경영적인 측면에서 좋지 않다는 분석이 있다”며 “또한 시장에서도 가족에 한정돼 인재 풀이 좁은 오너체계보다 시장경쟁을 거쳐 올라와 인재 풀이 넓은 전문경영인 체계에 대한 신뢰가 높다”고 말했다.

이어 “일반적으로 오너 체계를 유지하는 회사들이 전문경영인 체계로 전환하지 않으려는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개인적으로 얻을 수 있는 권력인 ‘경영의 사적 이익’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욕구와, 오너 체계에서 생겼던 치부가 전문경영인 체제에서 드러날 것을 우려하는 것”이라며 “이들에 대한 해법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전문경영인 체계는 요원하다”고 덧붙였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원장은 오너사들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와 시민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할 사안라고 지적했다. 조 원장은 “한국의 개발과정에 있어서 국가주도 하에 수혜를 받은 재벌들이 성장해왔고, 1세대 오너들은 실제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오며 한국의 발전을 이끌어왔다”라며 “이런 한국의 ‘오너 신화’에 대해 시장 및 한국인들은 아직도 기대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개발시대 이후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오너체제에서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되면서 투명하고 공정한 경영체계를 확립해야 한다”라며 “일반 시민들과 시장의 인식도 이에 맞춰 오너 체제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오너들도 ‘소유하되 지배하지 않는다’로 변화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chobits3095@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