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투 ‘반도’①] ‘지루한 연민’ vs ‘연대의 승리’ vs ‘또 다른 쾌감’

‘지루한 연민’ vs ‘연대의 승리’ vs ‘또 다른 쾌감’

기사승인 2020-07-15 08: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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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15일 개봉하는 영화 ‘반도’(감독 연상호)는 제 시간에 도착한 드문 영화다. 영화 ‘부산행’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 여름 블록버스터 정도로 소개될 뻔 했던 ‘반도’는 예정대로 7월에 개봉하며 코로나19의 여파가 일상에 스며든 시대에 다시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 모아야 하는 중책을 맡았다. ‘반도’는 1100만 관객을 모은 전작에 이어 연상호 감독이 같은 세계관으로 연출했다는 점, 배우 강동원과 이정현이 주연을 맡았다는 점, 그리고 제73회 칸 영화제 오피셜 셀렉션(Official Selection)에 선정됐다는 점으로 기대를 모았다. 영화를 본 쿠키뉴스 대중문화팀 기자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각자의 시선으로 본 ‘반도’는 어떤 영화였는지 들어봤다.

 
[웰컴 투 ‘반도’①] ‘지루한 연민’ vs ‘연대의 승리’ vs ‘또 다른 쾌감’
사진=영화 '반도' 스틸컷

‘반도’는 멸망 이후 상식이 달라진 세계를 그렸다. 전작 ‘부산행’에서 극단적인 이기심과 야성적인 생존본능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용석(김의성)의 상식이 ‘반도’에선 낯설지 않게 됐다. 좀비는 여전히 많고 빠르고 위협적이다. 살아남은 인간은 ‘들개’로 불리고, 좀비는 동물처럼 ‘마리’로 세어진다. 자신을 희생하면서 타인을 구했던 상화(마동석)와 아빠의 이기심을 지적하며 변화시켰던 수안(김수안) 같은 ‘사람’은 ‘반도’에 없다. 아군도, 지원군도 없고 사방이 짐승으로 가득한 열악한 상황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간 전직 군인 정석(강동원)에게 주어진 미션은 세 가지다. 약속한 물건 가져오기, 살아남기, 인간되기.

‘반도’는 상식이 무엇인지 물으며 정석의 인간성 회복을 도모한다. 자신의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타인을 구할 이타심의 존재 여부는 ‘부산행’부터 시작된 핵심 질문이다. ‘부산행’은 이타심을 보여준 인물들이 생존한다는 기존의 교훈을 뒤집으며 충격을 줬다. 용석의 상식이 싫지만 받아들여야 생존에 유리하다는 메시지는 살아남아도 살아가기 어렵겠다는 절망을 관객들에게 체험시켰다.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반도’의 태도는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지 못한 기성세대에 대한 연민으로 읽힌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연대를 통해 인간으로 살아남는 것에 성공한 민정(이정현) 가족보다 정석의 성장과 미쳐버린 서 대위(구교환)의 서사를 중심으로 다뤄진다. 급기야 다음 세대에 대한 미안함을 눈물로 사과하는 장면에 이르면, 이 영화에서 빨리 탈출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진다.

영화의 한 축을 형성할 정도로 대단한 존재감을 뽐냈던 ‘부산행’의 좀비와 달리, ‘반도’의 좀비는 위협감을 주지 못하고 장애물, 혹은 짐승 정도로 다뤄진다. 영화의 트럭 탈취 작전은 일종의 게임, 혹은 케이퍼 무비처럼 전개되고, 후반부 탈출 시퀀스는 SF 재난영화처럼 그려지는 등 명확한 콘셉트를 보여준다. 하지만 소개가 길고 이미지의 나열에 그치며 장르적 매력을 구현하는 데 실패한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웰컴 투 ‘반도’①] ‘지루한 연민’ vs ‘연대의 승리’ vs ‘또 다른 쾌감’
사진=영화 '반도' 스틸컷

‘반도’는 장르영화의 볼거리와 상업영화의 미덕을 모두 갖추려는 영화다. 좀비떼의 규모는 ‘부산행’보다 커졌고, 과거 군인이었던 정석(강동원)을 비롯해 반도에서 살아남은 민정(이정현)의 가족, 631부대 등 등장인물 대부분 높은 전투력을 전제하고 있어 액션 시퀀스도 더욱 화려해졌다. 한편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대엔 어쨌든 희망이 당위로 설정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던 연상호 감독의 말처럼, 후반부 휴머니즘을 강조한 전개는 보편적인 윤리에 복무하며 상업영화가 해야 할 몫을 해낸다. 다만 ‘돌직구’로 날아드는 몇몇 대사와 최루성 짙은 장면들은 신파적이라는 지적을 피해갈 수 없을 듯하다. 정석의 갑작스러운 각성도 보기에는 다소 민망한 구석이 있다.

‘부산행’에서 석우(공유)는 딸 지안(김수안)을 살리기 위해, 상화(마동석)는 임신한 성경(정유미)을 살리기 위해 좀비와 맞섰다. 이들의 사투는 곧 가부장적 부성애의 승리이기도 했다. 반면 ‘반도’에선 여성과 아이와 노인이 연대해 살아남는다. 약육강식이 ‘상식’으로 통하는 지옥에서 이들은 서로의 손을 맞잡는 것이 생존에는 더욱 유리할 수 있음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또한 혈연과 결혼으로 묶였던 ‘부산행’의 인물들과 달리, ‘반도’의 민정, 준이(이레), 유진(이예원), 김 노인(권해효)은 전통적인 가족관계를 벗어난 유사가족 형태를 띤다. 관객은 이들 가족을 통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연대가 혈연 중심의 가족을 넘어 보다 넓은 관계로 확장할 수 있음을 확인한다. 후반부 등장하는 ‘그 사람’의 성별과 인종은 ‘백인 남성 히어로’의 이미지를 전복해 더욱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웰컴 투 ‘반도’①] ‘지루한 연민’ vs ‘연대의 승리’ vs ‘또 다른 쾌감’
사진=영화 '반도' 스틸컷

‘반도’에선 ‘부산행’의 그날, 함께 손을 붙잡고 터널을 지났던 성경(정유미)과 수안(김수안)의 안부를 알 수 없다. 다만 폐허가 된 땅에서 타인을 돕기 위해 운전대를 잡고 누구보다 영리하게 움직이는 ‘반도’의 아이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부산행’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반도’는 알려진 대로 영화 ‘부산행’ 4년 이후를 그린 작품이다. 정체불명의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한 땅은 서울부터 부산까지 모두 초토화돼, 더는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반도’는 신이 버린 땅에서 희망을 놓지 않는 인간의 이야기다. 인간답게 살기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반도’에서 좀비보다 무서운 것은 희망을 놓고 생존과 쾌락에만 탐닉하는 631부대의 인간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살아남기를 위해 타인을 학살하고 쾌락을 위해 인간을 도구로 사용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그와 대척점에 선 아이와 여성, 노인은 유사가족 형태로 연대하며 야만과 다른 방법으로 살아가기 위해 애쓴다. 극명한 구분은 생존이 전부인 것처럼 보이는 세계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 장치로 보인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대재앙 이후)를 배경으로 한 우화와도 같다.

질문과 메시지를 펼쳐내는 방식은 다분히 오락적이다. 한정된 공간에서 좀비와 사투를 벌이는 ‘부산행’ 같은 긴장감은 없지만, 시간이 지나 그만큼 익숙해진 좀비의 특성을 활용해 그들을 유인하고 쓸어버리는 액션은 또 다른 쾌감을 자아낸다. 스크린에서 볼만하다. 특히 여성이며 아이인 준이(이레)와 유진(이예원)이 주인공인 카체이싱 장면은 좀처럼 보기 힘든 상상력이 더해진 화면이라 더욱 반갑고 흥미롭다. 이밖에도 영화 곳곳에 예상하기 어려운 시퀀스가 등장해 재미를 더한다.

인세현 기자 inout@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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