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용기의 대가

민수미 / 기사승인 : 2020-07-17 14:5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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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쿠키뉴스] 민수미 기자 =살면서 냈던 용기의 순간들을 더듬어 봅니다. 전학 가는 친구에게 ‘그날 싸우면서 했던 말은 진심이 아니었다’고 편지를 적어 건넨 일, 좋아하는 사람에게 ‘같이 식사 하자’고 먼저 말한 일, 업무상의 불합리와 개선을 상사에게 요구한 일까지. 돌아보면, 드문드문 지나온 시간 모퉁이마다 크고 작게 용기를 낸 흔적들이 있습니다. 어떤 용기는 눈 한번 질끈 감으면 해결되기도 했지만, 어떤 용기는 동이 트는 새벽하늘을 수십 번 본 후에야 겨우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물론 용기 내지 못한 순간이 더 많았고, 그에 따른 후회가 훨씬 깁니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 피해자 A씨의 새벽은 어땠을까요. 상사가 저지른 위계에 의한 성추행이라는 점, 그 상사가 영향력이 막강한 서울시장이라는 점, 하필 그 서울시장이 여성인권을 위해 일한 인물이었다는 점 모두 A씨의 발목을 번번이 잡았을 겁니다. 그럼에도 A씨는 어려운 마음을 먹었습니다. A씨가 말한 대로 ‘그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꿨기 때문이겠죠. 그가 원한 삶은 시작됐을까요. 적어도 지금은 아닙니다. 정치권에서는 상대를 아직 피해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뜻으로 이해될 ‘피해호소인’이라는 단어를 쓰고, 박 전 시장 지지자들은 A씨 조롱하는 글을 SNS에 올립니다. 끔찍한 시간은 여전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많은 이가 A씨와 연대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피해자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용기에 지지를 보내는 것 또한 사회의 몫입니다. 그리고 그런 연대보다 앞서야 하는 것은 ‘상식’입니다. 죽음은 사건을 책임을 지는 행위가 아니라는 상식, 생전 지대한 공이 있었더라도 성추행은 면죄 받을 수 없는 범죄라는 상식, 고인 추모보다 피해자 보호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상식 말입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 나오는 용기는 어쩌면 또 다른 재앙이나 다름없습니다. 오늘도 뜬 눈으로 새벽을 지새울 많은 피해자는 어떤 생각을 할까요. 우리는 그들에게 용기를 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mi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