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늙어 죽을 때까지 ‘배우 이정현’으로 살고 싶거든요”

기사승인 2020-07-21 06: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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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인터뷰] “늙어 죽을 때까지 ‘배우 이정현’으로 살고 싶거든요”
사진=NEW 제공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영화 ‘반도’(감독 연상호)의 민정(이정현)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를 다룬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문 캐릭터다. 국가 체계와 치안 시스템이 무너진 불안하고 위험한 환경을 다룬 장르에서 여성을 약하고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로 표현하는 것과 달리, 민정은 직접 총을 들고 운전대를 잡는다. 이정현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영화에선 4년 동안 폐허가 된 땅에서 민정 가족에 대한 별다른 설명이 없이도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떻게 살아남았을지 이해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최근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이정현은 개봉 직후 공개된 관객수에 놀라고 얼떨떨한 눈치였다. ‘반도’가 첫날부터 35만 관객을 모은 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다수의 영화가 개봉을 미루기 시작한 2월 이후 처음 만나는 광경이었다. 그만큼 새로운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목마름이, ‘반도’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는 얘기다. 여러 차례 “감사하다”, “믿을 수 없다”고 이야기하던 이정현은 2014년 KT&G '대단한 단편영화제' 심사를 함께 맡은 연상호 감독과의 인연을 소개하며 ‘반도’와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갑자기 연상호 감독님에게 연락이 왔어요. ‘저랑도 같이 영화 해야죠’라고 하시며 시나리오를 읽어보라고 주셨어요. 민정 캐릭터라는 얘길 들었는데 시나리오가 너무 재밌어서 제 캐릭터도 잊어버리고 읽었어요. 엄마 역할일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맞더라고요. 정말 기뻤어요. 사실 연 감독님이 애니메이션 할 때부터 팬이었고, 원래 좀비도 정말 좋아했거든요. 예전에 박찬욱 감독님이 찍어주신 뮤직비디오가 있는데 그때 콘셉트도 좀비였어요. 촬영장에서 좀비 배우분들을 보니까 무섭기도 하지만 정말 좋았어요. 너무 신기해서 촬영장에 한 시간씩 일찍 가서 옆에서 구경하고 그랬어요.”

[쿠키인터뷰] “늙어 죽을 때까지 ‘배우 이정현’으로 살고 싶거든요”
영화 '반도' 스틸컷 / 사진=NEW 제공

이정현은 인터뷰 내내 별다른 촬영 에피소드를 언급하지 않았다. 연상호 감독과 생각이 잘 통했고 연 감독도 이정현의 연기에 만족스러워했다. 이정현은 “별 무리 없이 촬영했다”며 일찍 끝나는 현장이라 좋았다고 웃었다. 민정 캐릭터 역시 다른 작품에서 참고하는 것보다 시나리오에 있는 그대로 연기했다.

“영화를 보면 제가 초반부엔 평범한 주부로 나와요. 그때 안고 있는 아이가 예원이죠. 그런 세상에서 살아남는 전투력이 모성애에서 나온다는 게 이해가 많이 됐어요. 모성애가 아니면 진작 죽었거나, 좀비에게 물리거나, 살 의지가 없었을 것 같거든요. 어머니들이 보시면 많이 공감하실 것 같아요. 실제로 우리나라가 폐허가 된다면 어머니들이 자식들을 위해 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니 바로 납득할 수 있었고 그 지점에 포인트를 맞춰서 갔어요. 만약 아이가 있다는 설정이 없었으면 엄청나게 힘들었을 것 같아요.”

이정현만큼 행보를 예측하기 어려운 배우가 또 있을까. 이정현의 최근 출연작 목록을 살펴보면 독립영화부터 가벼운 상업영화와 블록버스터 대작이 뒤섞여 있다. 그의 ‘반도’ 출연 소식 역시 그 자체로 화제가 됐다. 이정현은 자연스럽게 맺어진 결과라고 설명했다.

[쿠키인터뷰] “늙어 죽을 때까지 ‘배우 이정현’으로 살고 싶거든요”
사진=NEW 제공

“캐릭터가 좋고 감독님도 괜찮으면 작품 규모에 상관없이 출연하는 편이에요. 다양성 영화를 좋아해서 시나리오를 많이 찾고 많이 보는데, 아직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맘에 확 드는 작품은 못 만났어요. 독립영화를 조금 편하게 찍으려면 상업영화도 해야 도움이 되더라고요. 식사가 좀 더 풍성해진다는 얘기도 있고요. 그래서 저는 병행하면서 찍고 싶어요. 어차피 계획대로 되지 않으니,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이정현은 상승과 하강을 반복했던 자신의 20대를 힘들었던 시절로 기억했다. 영화 ‘꽃잎’과 가수 활동, 한류붐을 차례로 겪으며 이정현의 삶의 궤도도 요동쳤다. 이젠 마음을 내려놓으니 쉽게 들뜨지 않고 마음도 편하다. 가수보다는 배우 이정현으로 평생 기억되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전 대중이 저를 배우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할머니가 되고 늙어서 죽을 때까지 배우를 정말 하고 싶거든요. 지금도 드라마에 출연하시는 선생님들이 연기하시는 모습을 보면 존경스러워요. 전 영화와 연기를 정말 좋아하니까 다른 수식어 말고 ‘배우 이정현’이 어색하지 않은 배우, 그런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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