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 속에 뻗친 상상력…기습 컴백한 테일러 스위프트

테일러 스위프트, 정규 8집 ‘포크로어’ 깜짝 공개

기사승인 2020-07-30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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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 속에 뻗친 상상력…기습 컴백한 테일러 스위프트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미국에 락다운(봉쇄)이 시행되던 지난 4월말. 팝가수 테일러 스위프트는 프로듀서 애론 데즈너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세상에, 나 벌써 한 곡을 만들었어. 엄청 신난다!” 몇 시간 뒤엔 자신이 직접 부른 일종의 데모 음원과 함께 노래에 붙일 가사도 보내왔다. 한국 시간으로 지난 24일 공개된 테일러 스위프트의 정규 8집 타이틀곡 ‘카디건’(cardigan) 탄생기다.

애론 데즈너는 ‘카디건’ 작업 당시를 떠올리며 “여전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테일러 스위프트는 애론 데즈너에게 ‘카디건’ 데모를 보내기 불과 9일 전에 월드투어 콘서트 ‘러버’(Lover)의 취소를 알린 바 있다. 상실감에 빠질 겨를도 없이 새 음반 작업에 착수해 빠르게 결과물을 낸 것이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정규 8집 ‘포크로어’(Folklore)에 실린 곡 대부분을 자가 격리 중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포크로어’가 세상에 나오는 과정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음반 공개를 불과 16시간 남짓 앞두고 SNS를 통해 기습적으로 신보 소식을 전했다. 친구 등 가까운 지인에게도 알리지 않았던 컴백이었던 셈이다. 뿐만 아니라 음반을 발매하기에 앞서 홍보 목적으로 선공개 싱글을 내놓던 팝계 관행을 깨고, 테일러 스위프트는 16곡이나 되는 수록곡을 한꺼번에 공개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음악은 대규모 마케팅 없이도 성공할 수 있다는 증거”(영국 가디언)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고립 속에 뻗친 상상력…기습 컴백한 테일러 스위프트
테일러 스위프트는 음반과 함께 공개한 편지에서 “고립 속에서 상상이 날개를 펼쳤고, 그 결과물이 이번 음반”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뿐 아니라, 삼각 관계에 빠진 10대 소년·소녀나 로드아일랜드 지역 어느 별장 주인 등 상상 속의 인물들의 관점에서 노래를 써내려갔다고 한다. “의식의 흐름 같은 노래와 이야기의 묶음집이에요. 저는 펜을 들고 환상과 역사, 기억 속으로 빠져 들었어요.” 음반 제목인 ‘포크로어’는 우리말로 ‘입으로 전해져온 이야기’를 뜻한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음반을 내며 “이제 여러분의 이야기를 전할 차례”라고 했다.

대대적인 마케팅 없이 기습 발매된 음반이지만 대중의 반응은 뜨겁다. ‘포크로어’는 공개 24시간 만에 세계 최대 규모의 음원 플랫폼 업체 스포티파이에서 8000만회 이상 스트리밍되며 ‘역대 여가수 음반 데뷔 스트리밍’ 1위 기록을 세웠다. 업계 2위 애플뮤직에서도 역대 팝 음반 중 24시간 동안 가장 많은 스트리밍 횟수를 기록했다. 음반은 발매 3일 만에 50만 유닛(디지털 스트리밍 및 실물 음반 판매량 합산)이 팔렸다. 미국 연예매체 히츠데일리더블(HDD)은 ‘포크로어’가 빌보드200 1위로 데뷔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평단의 반응도 좋다. “더 이상 증명할 것이 없는 아티스트의 음악”(롤링스톤), “테일러 스위프트의 가장 자아성찰적이고 감정적으로 솔직한 음반”(USA 투데이) 등 호평이 쏟아진다. 미국 평론사이트인 메타크리틱에 따르면 ‘포크로어’에게 21개 매체가 준 점수(29일 기준)는 평균 89점을 나타냈다. 영국의 가디언과 텔레그래프는 100점을 줬고, 미국 LA타임스·롤링스톤은 90점을, 피치포크·NME는 80점을 매겼다.

고립 속에 뻗친 상상력…기습 컴백한 테일러 스위프트
▲ 테일러 스위프트 ‘카디건’ 뮤직비디오
10대 때 데뷔해 두 번째 음반으로 최연소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음반상을 받았다. 2014년에 낸 5집 ‘1989’로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음반상을 두 번 받은 최초의 여가수가 됐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가수. 하지만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비난을 받기도 한 가수. ‘옆집 소녀’의 이미지로 10대를 통과한 테일러 스위프트는 20대가 된 뒤 몇 번의 공개연애를 했다가 온갖 가십에 휘말렸다. 헤어진 남자친구와의 이야기를 노래에 담았다고 ‘테일러 스네이크(뱀)’이라는 조롱도 들었다.

그러나 테일러 스위프트는 자신의 길을 찾아 흔들리지 않고 나아간다.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해 젊은 여성 예술가를 독려하고, 무료 이용이 가능한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자신의 음반을 빼버리기도 하며, 자신을 성추행한 DJ에게 단 1달러를 손해배상금으로 청구해 ‘꽃뱀’ 논리를 부수기도 했다. 올해 초 공개한 다큐멘터리 ‘미스 아메리카나’에선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표현하고, 외모 강박증을 벗어던지고, 페미니스트임을 드러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테일러 스위프트가 여전히 좋은 음악을 내놓는다는 점이다. 애론 데즈너는 “포크송처럼 우리의 사랑도 계속 전해질 거예요”(And just like a folk song, our love will be passen on)라는 수록곡 ‘세븐’(Seven)의 가사를 ‘포크로어’의 주요 메시지로 꼽았다. 가십과 미움, 정치적인 암투 속에서도 사랑을 구전하는 젊은 장인. 영화 번역가 황석희의 말처럼, “테일러 스위프트를 보면 포크가 장르를 넘어 삶의 태도나 철학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wild37@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