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죽지 않을 만큼만 아프면 좋겠어

네가 죽지 않을 만큼만 아프면 좋겠어

기사승인 2020-09-24 08:5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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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죽지 않을 만큼만 아프면 좋겠어
[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정부가 정말 성매매를 퇴치할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

국고가 룸살롱을 향해 열렸다. 22일 국회는 유흥주점을 2차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에 넣었다. 이에 따라 룸살롱·클럽·콜라텍 등도 새희망자금 200만원을 지원받는다.

그동안 유흥주점은 ‘국민 정서를 고려해' 재난지원금을 비롯한 재정 지원 혜택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다른 업종과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이번에 혜택 대상에 포함됐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유흥업을 장려하기 위해서 지원하자는 게 아니라, (유흥주점들이) 실제 문을 닫아서 피해가 큰 업종들이었고, 더구나 방역에 철저히 협조를 해준 분들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고려한다는 국민 정서에 여성의 정서는 포함되지 않았다. 여성 국민의 정서보다 유흥주점 업주에게 보장해야 할 형평성의 무게가 더 무겁다고 판단한 것일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유흥주점을 끌어안는 결정은 여성계를 분노하게 했다. 마약성 약물 GHB ‘물뽕’ 이용 성범죄가 자행되고, ‘보도방’으로 불리는 성매매 업자들의 영업 무대가 존속되기를 정부가 응원하는 모양새다.

200만원의 기회비용을 떠올리면 분노는 배가 된다. 이 정도의 결단력과 재원을 불법 성매매와 성 착취 범죄 근절에 쏟았다면 물뽕이나 보도방은 진작에 자취를 감췄을 것이다. 차라리 전국의 성매매 피해 여성 보호기관에 200만원씩 지원한다면 더 가치 있는 지출이다. 팬데믹으로 운영에 차질이 생긴 곳은 유흥주점이나 보호기관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성매매 추방 주간에 유흥주점을 살리겠다는 결정을 한 것은 더욱 기만적이다. 정부는 지난 2015년부터 해마다 9월19일~25일을 성매매 추방 주간으로 정하고 성매매 근절과 여성폭력 예방을 위한 캠페인을 진행했다. ‘인간의 성(性)은 거래대상이 될 수 없다’는 캠페인의 슬로건은 가식이었는지 의심스럽다.

정부는 성 상품화에 반대한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한 대통령을 필두로 국회와 정부 부처는 모두 우리 사회의 성인지감수성을 제고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성 착취에 기반한 산업이 지금 당장 무너지게 내버려 두지는 않는다. 성 착취 산업이 많이 위축되면 좋겠지만, 아예 죽는 건 원치 않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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