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달 후 폐지되는 ‘낙태죄’ 여성계·의료계 의견 평행선

낙태 대안 먼저 마련해야 VS 여성 신체·권리 보호도 생명윤리 일환

기사승인 2020-09-25 05: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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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낙태죄 유효기간이 3개월 남았지만, 여성계와 의료계에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여성의 임신중단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의학적·우생학적·윤리적 사유에 따라 조건부로 허가하는 형법(이하 낙태죄)이 제정 66년 만에 오는 12월31일을 기해 효력을 잃는다.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리고, 개정 시한을 올해 말일로 정했다. 헌법불합치는 헌법에 위배되는 법률을 즉시 폐기하지 않고, 대체법을 마련할 말미를 주는 제도다.

연말까지 개정해야 하는 조항은 형법 269조, 형법 270조, 모자보건법 14조 등이다. 현행 형법 269조 ‘자기낙태죄’는 임신한 여성이 낙태를 하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 벌금에 처벌한다고 규정한다. 형법 270조 '업무상 동의낙태죄'는 의사·한의사·조산사 등 의료진이 임신한 여성의 동의를 받아 낙태시술을 할 시 2년 이하 징역으로 처벌하도록 정했다. 모자보건법 14조는 의학적·우생학적·윤리적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해 임부 본인과 배우자의 동의하에 낙태시술을 진행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현재 정부는 국무총리실 주도로 법무부·여성가족부·보건복지부·교육부·문화체육관광부 등 5개 관계 부처와 개정안의 내용을 논의 중이다. 지난달 진행된 관계 부처 차관 회의에서는 임신 중단 허용 기간을 임신 14주 내외로 정하는 방안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석달 후 폐지되는 ‘낙태죄’ 여성계·의료계 의견 평행선
바른인권여성연합과 케이프로라이프가 지난 22일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낙태죄 폐지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박태현 기자

법 개정 시한이 다가오고 있지만, 낙태죄 존폐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요원한 상황이다. 여성계와 의료계에서는 찬반 입장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23일 바른인권여성연합과 케이프로라이프 등 시민단체는 서울정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낙태죄 폐지에 반대하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정부는 태아가 어느 시점부터 생명인가를 논쟁거리로 삼으며 생명을 함부로 다루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많은 여성들이 낙태가 아닌 출산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며 “낙태가 여성의 몸에 어떤 후유증을 남기는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숙려기간을 두는 ‘낙태 전 의무 상담’ 제도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주장에 일부 의사들도 가세했다. 24일 성산생명윤리연구소(이하 연구소)는 입장문을 내고 낙태의 비범죄화를 조장하지 말라는 여성단체들의 발표를 지지하며, 모든 낙태 행위를 반대한다고 밝혔다. 성산생명윤리연구소는 지난 1997년 성산 장기려 선생 기념사업회와 협력해 출범한 기독교 의사 단체다.

연구소는 “낙태죄 폐지는 여성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낙태를 마음대로 하게 허용함으로써 여성의 건강·출산권·생명권을 외면하는 인권유린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낙태를 하지 않아도 여성들이 손해를 보지 않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낙태죄 폐지의 대안으로 연구소는 임신과 출산에 관한 남성의 책임을 강화하는 ‘남성책임법’, 신생아 유기를 예방하는 ‘비밀·익명출산법’, ‘입양특례법’ 등을 제시했다.

석달 후 폐지되는 ‘낙태죄’ 여성계·의료계 의견 평행선
시민단체 연합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은 지난해부터 낙태죄 완전 폐지를 촉구하는 집회를 이어왔다./노상우 기자

반면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여성계와 의료계 단체들도 입장을 표명하며 팽팽히 맞선다. 23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이하 인의협)는 ‘문재인 정부는 낙태죄 완전 폐지로 후퇴가 아닌 진전을 택하라’는 논평을 내고 정부의 낙태죄 유지 시도를 비판했다. 인의협은 지난 1987년 6월 민주 항쟁을 계기로 창립된 의사 단체다.

인의협은 “현재 정부가 논의 중인 개정 방향은 낙태죄 관련 조항을 형법에 두고, 임신 14주 이내의 임신 중단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겠다는 안”이라며 “낙태죄의 헌법불합치 결정에도 어떻게든 법에 여성을 처벌하는 조항을 남기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임신중지에 대한 처벌은 평등한 삶의 권리를 보장해야 할 국가의 책임을 방기하고, 여성에게 (임신·출산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태아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언명은, 임신한 여성의 신체적·사회적 보호를 포함할 때 실질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강조했다.

같은 날 여성시민단체 한국여성민우회(이하 민우회)도 오는 28일 낙태죄 완전 폐지를 촉구하는 온라인 캠페인을 예고했다. 민우회는 “임신 중단을 임신 14주 내외 시점에서 허용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낙태죄를 그대로 (형법에) 두겠다는 말”이라며 “심지어 14주는 임신 사실을 인지하거나, 임신 중단을 결정하고 실행하기 어려울 정도로 짧은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의 낙태죄 존치 시도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부정하고 시계를 되돌리는 역주행”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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