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죽이는 여자들과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

죽이는 여자들과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

기사승인 2020-09-29 06: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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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쿡리뷰] 죽이는 여자들과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다. 영화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감독 신정원)도 그렇다. 등장인물 모두 생존을 위해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지만, 카메라를 통과하는 순간 이들의 사투는 우스꽝스러운 소동극이 된다.

소희(이정현)의 남편 만길(김성오)은 속된 말로 ‘벤츠남’이다. 고스펙, 고소득자에 자상하고 다정한 데다가 부모는 이역만리 타국에 떨어져 산다. 하지만 결정적인 결함이 있으니, 그것은 하루 21시간 동안 술집과 클럽을 누비며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 소희는 사설탐정 닥터 장(양동근)을 통해 만길을 뒷조사하고 결국 그가 ‘언브레이커블’, 즉 죽지 않는 존재임을 알아낸다. 서로를 제거하려는 소희와 만길의 ‘사랑과 전쟁’도 이때부터 시작된다.

영화 ‘시실리 2㎞’, ‘차우’, ‘점쟁이들’ 등 코미디와 호러를 결합해온 신정원 감독의 특기가 빛나는 영화다. 소희는 고등학교 동창인 세라(서영희)와 양선(이미도), 그리고 닥터 장의 도움을 받아 만길을 공격한다. 만길의 무기는 초자연적인 생존력과 파괴력이다. 그야말로 창과 창의 대결. 게다가 곳곳에서 예상치 않은 사건들이 자꾸만 터지고, 정부 요원까지 합세하면서 대결은 점점 전대미문의 상황으로 치닫는다.

[쿡리뷰] 죽이는 여자들과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
영화의 가장 큰 소구력이 신 감독의 이름에서 발휘된다면, 두 번째 매력은 ‘죽이는 여자들’에 있다. 학창시절 절친했던 소희와 세라는 물론, 엉겁결에 사건에 휘말린 양선조차도 ‘바람피우는 남자는 죽어 마땅하다’는 믿음을 공유하며 복수를 계획한다. 남탕 영화에서 늘 ‘죽임당하던’ 여자들의 통쾌한 역할 반전이다. 만길의 반격에 간담이 서늘해지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폭력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도 영화의 미덕이다.

특히 배우 서영희의 변신이 반갑다.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감독 장철수), ‘추격자’(감독 나홍진)에서 강력 사건의 피해자로 지지리도 고통받았던 그는 이번 작품에서 ‘전 남편을 셋이나 죽였을지도 모르는’ 정육점 사장 세라로 분한다. 살인과 시체 유기를 저지르면서도 시종 새침한 소희와 말 그대로 ‘웃픈’ 처지에 놓인 양선의 아이러니한 모습도 재미를 더한다. 웃음 타율이 가장 높은 인물은 단연 닥터 장이다. 중반부에선 그가 입만 떼도 웃음이 터져 나온다.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감이 떨어지는 전개는 아쉽다. 닥터 장이 소희에게 추근대는 장면은 캐릭터 설정을 위한 것이라고 이해하려 해도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신 감독 특유의 시추에이션 코미디, B급 감성의 유머와 연출이 돋보인다. 중간중간 감독의 전작을 오마주한 장면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29일 개봉. 15세 관람가.

wild37@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