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첫날, 국회 앞 피켓 든 이들의 사연은?

소속 메시지 다 달라도 아스팔트 선 이유 절절한 생계 때문

기사승인 2020-10-14 10: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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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랩] 글 심신진·영상 박시온= 지하철 국회의사당역 6번 출구. 바쁜 구둣발 소리. 걷기와 뜀박질의 중간쯤 걸음으로 국회에 가는 사람들의 행렬이 길다. 지하철 출구에서 국회 정문까지의 거리는 채 50여 미터도 되지 않는다. 제21대 국회의 첫 국정감사가 열리던 지난 7일. 이 짧은 길목에서 만난 사람들은 저마다 절박한 사연을 갖고 있었다. 

국감이 시작되면 모든 관심이 국회로 집중된다. 국감 첫날 국회 앞의 풍경은 키를 훌쩍 넘긴 장대 깃발, 교통 소음을 이기기 위한 확성기, 대문짝만한 피켓 등으로 요란했다. 누군가는 관심의 주변시야에라도 들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대학원생, 노동자, 시민단체 활동가 등 소속도, 알리려는 메시지도 제각각. 어떻게 묶어 불러야 할까.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보이지만 보이지 않고 소리치지만 들리지 않는다. 꼭 투명인간 같다. 앞선 구둣발들은 갑자기 바빠진 채 투명인간의 앞을 빠르게 지나쳐 국회 정문으로 쏙 들어갔다. 

궁금했다. 투명인간들은 왜 아침부터 이곳에 서 있을까? 
국감 첫날, 국회 앞 피켓 든 이들의 사연은?

밀짚모자에 삼베 도포를 입은 중년 남성. 모자에는 ‘생존권사수’라는 붉은 매듭이 매여 있었다. 그을린 피부는 모자 그늘에도 선명했다. “안 되잖아요 대기업이 들어오면 안 되잖아요.” 그는 서울차매매조합장이다. 중고차 매매업은 2013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돼 대기업 진출이 제한됐다. 지난해 초 지정 기한 만료로 제한이 풀리자 현대자동차는 중고차 매매업 진출 의사를 밝혔다. 안씨는 울화통을 터뜨렸다.
 
“우리 매매상사가 전국에 6000여 개가 있어요. 딸린 식구가 30만 명이에요. 30만 명의 가족을 하루아침에 내쫓는 거나 똑같잖아요.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님께 부탁이 있습니다. 중고차매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해 대기업 진출을 막아야 합니다.” 

대화를 끝내자 건널목 너머 노란 조끼가 보였다. 조끼에 박힌 문구는 ‘한국게이츠 공장폐업 철회’. “용납할 수 없어요.” 금속노조 한국게이츠지회의 조합원은 이 말을 되풀이했다. 한국게이츠 공장은 최근 폐업신고를 하고, 직원들에게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한국게이츠의 본사 미국게이츠인데, 최대주주는 사모펀드운용사 블랙스톤이다. 블랙스톤은 주주총회에서 한국 공장 폐업을 결정했다. 

전체 직원 146명 가운데 남은 사람은 이제 25명. 자초지종을 설명해 준 조합원도 25명 가운데 한 명이다. “노동자들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전원 해고시키는 과정이 전혀 용납할 수 없어요. 한 평생을 이 회사에서 몸을 담았는데 용납할 수 없어요.” 그가 되풀이하던 용납할 수 없다는 말 속에 많은 감정이 담겨있었다.

그날은 춥지도 덥지도 않았다. 제법 괜찮은 날씨였다. 초가을의 스산한 바람이 누군가에게는 겨울바람 같다. 내가 만난 투명인간들에게는 겨울이 일찍 찾아왔다. 그들은 지금도 겨울로 접어드는 아스팔트 위에 피켓을 들고 서 있다. 

ssj9181@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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