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소리도 없이’ 어둠에서 빛으로

기사승인 2020-10-15 06: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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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쿡리뷰] ‘소리도 없이’ 어둠에서 빛으로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이미 벌어진 범죄 사건의 후속 이야기, 혹은 스핀오프를 그리면 이런 느낌일까. 영화 ‘소리도 없이’(감독 홍의정)는 범죄 조직이 아닌 조직의 하청을 받아 시체 뒤처리를 하며 살아가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그렸다. 다리를 저는 창복(유재명)과 말을 하지 않는 태인(유아인), 두 사람은 평범하지 않은 환경에서 일하지만 그들에겐 평범한 일상을 소리도 없이 반복하며 살아간다. 어느 날 이들에게 며칠 동안 유괴된 아이를 맡아달라는 새로운 일이 맡겨진다. 창복(유재명)의 완강한 거부에도 결국 두 사람은 11세 아이 초희(문승아)를 떠안게 됐다. 이후 일이 꼬이며 초희의 앞날을 결정할 선택의 순간이 두 사람에게 찾아온다.

‘소리도 없이’는 기존 범죄 영화의 관습을 따라가지 않는다. 꽤 긴 시간을 창복과 태인의 일상 이야기에 투자하며, 그들의 업무가 범죄와 별개인 것처럼 그린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폭력 조직의 뒷 처리를 한다는 걸 정확히 알고 있다. 하지만 직접 범죄에 가담하진 않는다. 누군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관여하거나 누군가의 잘못을 판단하지 않는 단순 작업을 묵묵히 처리할 뿐이다. 누군가 해야 할 시체 수습과 매장이 그들에게 주어진 일의 전부다. 영화는 범죄의 외주화가 일어나는 현장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처럼 묵묵히 설득해낸다.

눈에 잘 띄지 않는 범죄의 경계 한 구석에 위치한 이들을 조명한 영화는 죄의식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인물들은 의도하지 않은 일이 겪으면서 그것이 범죄라는 걸 분명 인식한다. 하지만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더 큰 범죄를 방관하게 되는 상황이 펼쳐지는 건 다른 문제다. 이들의 욕망과 판단 대신 상황이 어둠의 세계로 등을 떠민다. 사건이 일어나는 시골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광은 죽음의 그림자와 범죄의 냄새와 교차하며 아이러니를 형성한다. 영화는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끈질기게 붙잡고 되묻는다. 당신은 두 사람의 삶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그리고 이들은 정말 죄를 저지른 것이냐고.

‘소리도 없이’는 질문에 답하거나 가르침을 전하지 않는다. 대신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답한다. 어둠의 세계에서 빛의 세계로 나가고 싶은 태인의 욕망이 전면에 나오면서 영화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사람에서 스스로에게 떳떳한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은 설득력을 얻는다. 하지만 그가 벌인 행동과 선택들이 설득력을 얻는 것과 범죄자의 딱지를 떼는 건 다른 문제라는 걸 영화는 멀리서 지적한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선과 악을 결정하는 건 무엇인지, 범죄자 옹호의 경계는 어디까지인지 등 영화는 더 많은 질문을 남기며 막을 내린다. 어떤 질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영화가 달리 보일 가능성이 크다.

살을 찌우고 짧은 머리로 변신한 배우 유아인의 찡그린 표정과 육중한 무게감이 영화의 한 축을 형성한다.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인지, 말을 하지 않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위치에서 영화가 이야기하는 걸 충분히 표현해낸다. 영화의 메시지를 탐색하는 것보다, 자신에게 와 닿은 메시지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15일 개봉.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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