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에서 석 달 살기] 선운산 골째기 탐방

고창의 은퇴자공동체마을 입주자 여행기 (6)

기사승인 2020-10-24 0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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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에서 석 달 살기] 선운산 골째기 탐방
선운사 동구를 노닐다가 선운산 골짜기로 들어서는 문이 일주문이다. 일주문에서 오른쪽 길로 몇 걸음만 옮기면 곧 울창한 숲으로 들어선다. 선운사 부도밭과 박물관 그리고 천왕문으로 이어지며 왼쪽엔 도솔천이 따라온다.
선운사 동구를 거닐다가 선운산 골짜기로 들어가는 문이 ‘도솔산 선운사’ 일주문이다. 물론 문화재관람료라는 명목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등산로 입구에 절이 자리 잡고 있어 마치 통행료처럼 ‘문화재관람료’를 내고 들어가는 곳이 적지 않아 때로 마음에 불편함을 간직하고 산에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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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에서 관심을 두고 살피면 비로소 오른쪽 울창한 숲 저 안쪽의 햇빛 평화로운 부도밭이 눈에 들어온다. 추사 김정희가 쓴 ‘백파율사비’가 있는 곳이다.
일주문을 지나 삼나무 숲 깊은 곳에 있는 부도밭을 찾아가면 추사 김정희가 쓴 백파율사비를 만난다. 한때 비석을 보호하기 위해 모각한 비석을 세워둔 적이 있다고 하는데 현재는 원래의 비석이 다시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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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앞 도솔천은 아래쪽에 야트막한 보가 설치되어 있어서 마치 거울처럼 잔잔해 그 위로 나무가 거울처럼 비친다. 11월 중순으로 접어들며 단풍이 짙어지면 나무뿐 아니라 물도 화려하게 물든다.
부도밭을 나오면 소리 없이 조용히 흐르는 도솔천을 다시 만나는데 특히 수면에 비치는 나무의 모습이 아름답다. 단풍이 최고조에 이르면 이 장면을 사진에 담기 위해 때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모여든다. 이 개천의 물은 맑지 않고 검은 듯 부옇게 보인다. 오염된 물은 아니고 선운산에 많은 도토리의 떫은맛을 내는 탄닌 성분이 물에 녹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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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문은 선운사 마당으로 들어서는 정문이다. 처마 아래의 天王門’이 원교 이광사의 글씨다. 천왕문의 섬뜩함이 싫은 이들을 위해서인지 문 왼쪽의 담장이 없어 사람들 대부분은 이리로 드나든다.
절 마당으로 들어서는 문 처마에 걸린 현판 글씨 ‘天王門 (천왕문)’이 특별하게 보인다. 평생 사회에서 격리되어 살았지만, 조선 최고의 글씨를 썼다고 평가되는 원교 이광사의 글씨다. 그러나 한 세대 뒤에 추사 김정희는 그의 글씨를 인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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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마당엔 만세루라는 대형 건물이 자리하고 있어 천왕문에선 대웅전은 물론 그 뒷산의 동백숲도 보이지 않는다. 봄엔 동백꽃, 여름엔 배롱나무꽃, 가을엔 마당의 감나무 고목이 눈길을 끈다. 계절과 관계없이 대웅전 뒷산 동백나무의 울창함을 보지 않고 지나치기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천왕문을 들어서면 좌우에 무시무시한 사천왕상이 내려다보고 있는데, 섬뜩하기는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무릎 아래에서 쩔쩔매는 양반이 보이고 심술궂은 표정의 노파도 있다. 사람들은 못된 양반과 뺑덕어미가 벌 받는 중이라고 말한다. 고개를 들면 마당 가운데 커다란 건물이 가로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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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 마당을 나와 다시 걷는데 문득 담장 너머 기와집이 곱게 보인다. 그 처마 아래의 크지 않은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선운사에 전해 내려오는 원교 이광사의 또 다른 글씨다. ‘靜窩 정와’, 고요한 움집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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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세상에 나아가지 못하고 나라 북쪽 끝과 남쪽 끝에서 유배생활을 하며 ‘조선 최고의 명필’ 소리를 들었던 이의 글씨를 더 자세히 보고자 마당으로 들어섰다. 때마침 스님이 마루로 내려서며 들어오는 곳이 아니라 한다. 이 집이 고요함을 깬 미안함에 원교 글씨를 자세히 보고 싶어 실례했다고 사과를 하고 돌아서는데 기왕에 들어왔으니 편안히 보고 가라며 문을 나선다.
이 만세루에 가려 대웅전과 그 뒤의 울창한 동백나무 숲이 보이지 않는다. 천연기념물 제184호로 보호받고 있는 ‘고창 선운사 동백나무 숲’이며 미당 서정주가 노래한 그 동백이다. 평균 높이 6 미터의 동백나무가 약 30여 미터 넓이의 띠 모양으로 분포되어 있는데 통상 3월 하순 꽃이 핀다. 강진 다산초당 너머 만덕산 백련사 근처의 동백나무 숲과 견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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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을 지나 걷다 보면 도솔암까지 이어지는 넓은 길을 만난다. 포장되지 않은 도로여서 가끔 차라도 지나가면 먼지가 성가신 길이다. 그래도 넓은 길 위를 덮으며 자라고 있는 나무들이 마련해주고 있는 그늘이 넉넉해 걷다 보면 마음이 한가해지는 길이기도 하다.
선운사 마당을 벗어나 나오면 실개천을 따라 계곡 끝의 도솔암까지 약 2.5km를 걷는다. 이 길을 실개천 오른쪽으로 간혹 차가 다니는 비포장도로가 있고 왼쪽으로는 오솔길이 마련되어 있다. 어느 길이든 머리 위로 나무가 울창해 하늘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다만 차도는 간혹 차라도 지나게 되면 먼지가 성가시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오솔길이 걷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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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산 골짜기를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은 실개천을 건너 오솔길을 걸어 올라가는 것이다. 오른쪽으로는 맑은 물 졸졸 흐르는 개천이 따라오고 왼쪽으로는 숲이 지키는 이 길은 바위와 나무 사이로 꼬불꼬불 이어진다. 때로 느닷없이 다람쥐가 뛰어나와 선운산 골짜기의 주인 행세를 하기도 하는 길이다.
길은 가파르지 않고 완만하니 몸도 마음도 그저 편안하다. 잠시 세상의 일 잊기에 이만한 곳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다 마주친 다람쥐가 잠시 놀라 얼어버렸다. 가만히 마주 보다 쏜살처럼 내달린다. 그 뒤를 따르던 눈길을 거두고 가던 길에서 늘씬한 소나무 한 그루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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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의 어느 길에서든 물소리와 나뭇잎 속살거리는 소리에 취해 걷다 보면 문득 미끈한 소나무가 눈에 들어오는데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 중인 장사송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장사송이라는 소나무다. 이 소나무는 아래쪽에서부터 가지가 갈라져 우산 모양으로 자라는 반송으로 구분되지만 특이하게 나무 높이 3m 정도에서 가지가 여럿으로 갈라진 듯 보인다. 그러나 아래쪽에서 갈라졌던 가지가 다시 합쳐진 것으로 보고 있다. 장사송의 나이는 600살, 높이 23m, 가슴 높이의 나무 둘레가 약 3 m 정도이다. 나무가 있는 곳의 옛 지명이 장사현이어서 장사송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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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굴은 장사송 바로 아래 암벽에 있는 깊지 않은 굴이다. 신라 진흥왕이 말년에 왕비와 공주를 데리고 선운산에 와서 이 굴에 머물며 수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전설보다는 멋진 사진 찍기에 더 관심이 많았다.
장사송 인근에 진흥굴이라는 깊지 않은 동굴이 있다. 신라 진흥왕이 왕위를 물려주고 왕비와 공주를 데리고 이곳에 와 이 굴에서 수도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야기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암자를 짓고 왕비의 별호인 ‘도솔’을 따 암자 이름을 도솔암으로 정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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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암 왼쪽의 암벽에 새겨진 높이 13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마애불은 ‘평온, 편안’보다는 ‘위압’이라는 단어를 먼저 생각나게 하는 모습이다. 이 도솔암 마애불의 명치 부근에 보이는 사각형의 공간 속에 나라를 구할 비밀스러운 글이 숨겨져 있었는데 고창의 무장에서 포교활동을 하던 손화중이 이를 손에 넣었다는 말이 퍼졌다. 고창에서 손화중이 동학에 가담하며 고부에서 일어났던 농민들의 난이 비로소 ‘동학농민혁명’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도솔암에 가면 암벽에 커다란 마애불이 세월을 견디고 있다. 마애불은 높이 15.7m, 무릎 부분의 넓이가 8.5m인데 마애불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새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신라 말기, 고려시대, 조선시대 등으로 조성시기에 대한 의견이 다양하며 백제 위덕왕 때의 검단선사가 새겼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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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불 맞은편의 계단은 조금 부담스럽게 다가오지만 오르는 수고보다 그 위에서 얻는 기쁨이 훨씬 크니 일단 오르고 보아야 한다.
특히 이 마애불의 가슴 아래에 새겨진 복장에 비밀스러운 기록이 숨겨져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다. 이 비밀의 기록이 알려지는 날 조선이 망한다는 것이다. 1700년대 중반 전라감사 이서구가 이 기록을 꺼내는 도중 천둥과 함께 벼락이 떨어져 꺼내지는 못하고 ‘이서구가 꺼내본다’는 내용만 읽었는데 100여년 후 동학접주 손화중이 이를 꺼내 가져갔다고 한다. 동학농민혁명이 움트던 시절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했던 간절함이 담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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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위의 천마봉은 해발 284 미터에 불과하지만 멀리까지 많은 곳을 보여준다. 저 아래 까마득한 선운사 동구에서 선운사를 거처 도솔암과 마애불까지의 걸어온 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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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봉을 나와 능선을 걸으며 내다보면 선운산 밖에도 크고 작은 산들이 겹겹이 에워싸고 있으며 그 골짜기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흔적이 보인다. 선운산이 모란꽃을 닮았다.
선운사에서 2.5 km 걸어 올라온 도솔암 인근의 산세는 능선의 바위 때문에 매우 험준하게 보인다. 마애불 맞은 편의 가파른 철제계단을 오르면 해발 284m에 불과한 천마봉의 너른 바위 위에 서게 되는데 선운사가 골짜기 아래 아득하고 거대했던 마애불마저 손톱만 하게 보인다. 끝처럼 보였던 능선 너머로 산줄기가 겹겹이 모란꽃잎처럼 겹쳐지고 그 골짜기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또 하나의 세상이 이어지고 있다. 선운산은 커다란 꽃이다. 피어나고 있는 모란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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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중순 선운산에 남아 있는 꽃은 많지 않았지만 보고 즐기기에 부족하지는 않았다. 물봉선 (왼쪽 위)과 며느리밥풀꽃 (오른쪽 위)은 마지막 꽃을 피웠고 잔대 (왼쪽 아래)는 사람들의 탐욕스런 손을 용케 피해 자손 퍼뜨릴 기회를 얻었다. 단풍취꽃 (오른쪽 아래)은 여리게 보이지만 이른 봄 사람들이 꺾어간 뒤에도 다시 싹을 틔운 강인한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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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근식은 1958년에 태어났다. 철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철도청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군 복무를 마치고 복직해 근무하던 중 27살에 대학에 진학했다. 졸업 후 두 곳의 영어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인제대학교 백병원 비서실장과 홍보실장, 건국대학교병원 홍보팀장을 지내고 2019년 2월 정년퇴직했다. 2019년 7월부터 1년 동안 제주여행을 하며 아내와 함께 800km를 걷고 돌아왔다. 9월부터 고창군과 공무원연금공단에서 마련한 은퇴자공동체마을에 입주해 3달 일정으로 고창을 여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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