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환리포트] 코로나19 시대 자발적 긴장의 성스러움 

[안태환리포트] 코로나19 시대 자발적 긴장의 성스러움 

기사승인 2020-11-30 09:5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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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안태환 프레쉬이비인후과 대표원장(이비인후과 전문의)

[안태환리포트] 코로나19 시대  자발적 긴장의 성스러움 
안태환 대표원장
강남 프레쉬이비인후과의원

사람들은 원하지 않는 진실은 애써 외면한다. 반면 갈구하는 환영은 찾아서 믿는다.  그래서인지 사실의 고백이 때론 난감할 때가 있다. 다시 확산일로에 놓인 코로나19, 백신의 상용화 소식에는 확증편향으로, 거리두기 강화에는 외면으로의 가능성이 상존하는 이유이다. 침묵의 감염병은 다시 불 꺼진 사람의 마을을 만들어 내고 있다. 부산스러웠던 일상도 긴 한숨으로 멈춰 서고 있다. 

무증상 감염자의 확산은 한국 사회 긴장의 척도이다. 2017년 인류를 곤혹스럽게 했던 사스는 내 안의 바이러스를 드러내는 발열의 특징이 있었다. 발열 증상이 나타난 이후에야 전염성을 띠었으니 어찌 보면 노출된 적이었다. 예방도 수월했고 자발적 긴장도 수반되었다. 그러나 코로나19는 스나이퍼이다. 도통 그 정체를 구분해내기가 쉽지 않다. 사스와 달리 잠복기가 길어 다수의 무증상 감염자가 발생하고 있다. 멈출 줄 모르는 확산의 주요 원인이다. 
 
무증상 감염자를 위한 변명을 하자면 그들 스스로 감염된 사실을 모르쇠로 일관하지 않았으리라. 타인에게 전파된 조심스럽지 않았던 일상에 대해 굳이 단죄한다면‘미필적 전파’라고 해야 타당할 것이다. 휘황찬란한 의학의 발달과 문명의 자신감 뒤에 코로나19라는 서늘한 파탄이 내재되어 있는 것도, 한 치 앞을 가늠하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이다. 어느 누구도 비껴가기 힘든 감염병의 그늘이다.  

무증상자의 규모가 커진다는 것은 방역에 있어 매우 심각하다. 무증상자는 유증상자만큼이나 전파력이 크기 때문이다. 증상이 없어 본인은 물론 상대도 접촉을 피하기 어렵다. 부지불식간에 타인을 전염시킬 수 있다는 스스로의 긴장감은 결국 거리두기 준용과 마스크 착용뿐이다.

생리학에서 긴장은 근육의 긴장도를 가리킨다. 골격근육이 신체 안에 있을 때는 언제나 일정한 단축 상태에 있음을 의미한다. 인체가 일정한 자세를 항시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개개의 근육이 긴장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체뿐이랴, 적당한 정신적 긴장도 태만함과 느슨함을 제어한다.  

연일 터져 나오는 백신 소식에 사람들이 흥분하고 있다. 거리두기는 강화되었으나 사회적 긴장은 느슨해진다. 생각해보라. 백신 개발 후 공급까지는 가야 할 길이 아직 멀다. 백신의 수용도를 살피는 절차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접종까지는 시간이 더 걸린다는 의미이다. 불타오르는 집에 소방차가 온다는 이유만으로 타들어가는 집을 바라만 볼 것인가. 양동이에 물을 길어 불길에 쏟아부어야 하지 않을까. 그 반듯한 공동체에 대한 실천은 다시 마스크 착용과 거리두기뿐임을 자각해야한다. 이 몹쓸  감염병은 아직 우리에게 공동체적 긴장감을 요구하고 있다.

평온했던 그해 겨울을 지나 다시 새로운 겨울이 목전에 왔지만 시들어 가는 것은 낙엽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이었다. 혼절한 자유였다. 흐르는 것은 시간만이 아니라 쓰러져간 사람이었다. 코로나19는 닫힌 사회를 강제했고 거리두기는 인간의 성찰을 요구했다. 어울림의 존재인 젊은이들에겐 더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이기적이며 우악스러운 세상을 살아내며 우리는 자연과 생명과 배려의 가치를 통렬하게 경험하고 있다. 성장 우선주의 시대에 대한 면밀한 반성도 깊어졌을 것이다. 코로나19는 역설적이게도 오만한 인간에게 자성의 마중물이 되었다. 팬데믹 이전, 모두가 당연시했던 걸 갑자기 상실한 후, 감염병 발생 원인이 우리의 느슨했던 삶에 있었음을 비로소 깨닫고, 이전의 방만했던 삶과 절연하는 과정을 모질게 거치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거리두기에 지쳐있다. 자영업은 파탄지경이고 학교 운동장엔 아이들의 웃음이 멈추었다. 허나 반듯한 성찰로써 인류 종말에의 두려움을 겸손하고 부드럽게 수용하는 태도는 다시 긴장감이다.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현재 우리들의 구속된 삶은 그대로 간다. 서늘해진 세밑, 자발적 긴장감으로 외로움을 감내하자. 고행은 언제나 성스럽다.
[안태환리포트] 코로나19 시대  자발적 긴장의 성스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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