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읽기] '블랙 옵스 콜드 워', 착한 놈 없는 나쁜 놈들의 세상

기사승인 2020-12-05 05:43:01
- + 인쇄
[게임읽기] '블랙 옵스 콜드 워', 착한 놈 없는 나쁜 놈들의 세상
▲사진='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콜드 워'. 블리자드

[쿠키뉴스] 강한결 기자 = 인류 발전사에서 전쟁은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입니다. 국가의 형태가 생기기 전인 선사시대에도 부족 간의 생존을 두고 전쟁이 벌어졌으니까요. 침략자와 방어자, 양측 모두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싸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기원후에도 인류는 수많은 전쟁을 치러왔습니다. 아테네 및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뭉친 고대 그리스 도시 국가와 페르시아가 맞붙은 페르시아 전쟁, 예루살렘을 차지하기 위한 유럽의 가톨릭과 이슬람이 격돌한 십자군 전쟁, 그리고 지구가 반으로 갈라져 격돌한 세계 1·2차대전까지. 전쟁에 참여한 이들은 목숨을 바쳐가며 뜨거운 피를 전장에 뿌렸습니다.

하지만 20세기 중후반 새로운 전쟁의 양상이 등장합니다. 적대 관계였던 미국과 소련은 직접적 전면전 대신 첩보전이나 군비경쟁, 대리전 등의 방법으로 총성 없는 차가운 전쟁을 이어갔습니다. 콜드 워, 즉 냉전의 시작이었습니다. 양측의 서로 직접적 교전은 없었지만, 각자가 지원하는 세력에 의해 한반도,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이란-이라크 등 세계 각지에서 대리전이 발발했습니다.

전면전은 없었지만, 물밑 첩보전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진행됐습니다. CIA(미국)와 KGB(소련), MI6(영국) 등 각국의 정보기관은 방첩, 비밀공작, 첩보까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냉전은 첩보물의 단골 소재로 사용됐죠. 첩보물의 대표작 '007' 역시 대부분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죠. 

[게임읽기] '블랙 옵스 콜드 워', 착한 놈 없는 나쁜 놈들의 세상
▲냉전시대 첩보요원들의 이야기를 그려낸 '007 위기일발'. 네이버 영화 화면 캡처

지난달 출시된 '콜 오브 듀티'의 신작 시리즈 '블랙옵스 콜드 워'는 이름처럼 냉전말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블랙옵스' 시리즈에서 멋짐을 맡고 있는 아재 삼인방 '프랭크 우즈', '알렉스 메이슨', '제이슨 허드슨'이 재등장해 유저들에게도 반가움을 전했죠. CIA 특수활동부에서 그들이 어떠한 활동을 했는지 궁금해하던 유저도 많았으니까요.

이번 시리즈의 주인공은 특이하게 성, 이름, 배경(CIA, MI6, 전직 KGB) 등은 전부 플레이어가 선택할 수 있는데요. 코드네임 '벨'로 불리게 됩니다. '콜오브듀티' 시리즈 주인공답게 벨은 사격부터 첩보, 육탄전, 헬기 조종까지 완벽하게 마스터한 인간병기입니다. 유저들은 벨로 플레이를 하다보면 애정을 가지게 되죠.

전통적으로 '콜오브듀티' 주인공들은 모두 정의감이 투철한 인물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던워페어의 '소프', '프라이스'뿐 아니라 '블랙옵스'의 아재 3인방도요. 물론 과격한 면도 있고, 더 큰 선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르기도 하지만요.

[게임읽기] '블랙 옵스 콜드 워', 착한 놈 없는 나쁜 놈들의 세상
▲사진=게임 속에 등장한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게임플레이 화면 캡처

하지만 '블랙옵스 콜드 워'의 등장인물들의 면모를 보면 이들을 선하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이들은 악인에 더욱 가깝다는 것이 기자의 생각입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하게 말할 수는 없기에, 독자 여러분들이 '콜드 워' 싱글플레이를 해보시고 인물들에 대한 평가를 직접 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네요.

'블랙옵스' 시리즈에는 '세뇌'라는 중요한 키워드가 등장하는데요. 대대로 주인공들이 적대 세력에게 세뇌를 당해 조종당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블랙옵스2' 역시 알렉스 메이슨이 세뇌에서 벗어나기 위한 과정을 담았습니다. '콜드 워'에도 '세뇌'를 당하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이것도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누구인지는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유능한 첩보 요원을 세뇌해 살인병기로 만든다. 이미 영화 등에서도 많이 사용된 설정이죠. 첩보물의 정수로 손꼽히는 '본 시리즈'에서 멧 데이먼이 분한 '제이슨 본'은 트레드스톤 트레이닝 프로그램에 참여해 CIA에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게 됩니다. '캡틴 아메리카 : 윈터솔저'에서 '스티브 로저스'의 친구이자 전우인 '버키 반즈'는 하이드라에 납치돼 정신 세뇌를 당한 뒤, '윈터솔저'라는 이름의 암살자로 거듭납니다.

냉전 시기 미국 사회에는"정부가 국민을 최면·세뇌하여 조종하려는 계획을 꾸미고 있다"는 도시전설이 유행했습니다. CIA가 인간의 정신을 조종하여 사람을 맘대로 움직이는 실험을 극비리에 진행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LSD와 같은 향정신성약물을 사용해 이용해서 환각상태인 사람을 맘대로 조종한다는 것이었죠. 당시에는 음모론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죠.

[게임읽기] '블랙 옵스 콜드 워', 착한 놈 없는 나쁜 놈들의 세상
▲사진='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저'. 월트디즈니코리아 

그런데 이 인간세뇌가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라면 믿으시겠어요? 'MK 울트라 프로젝트'는 1953~1964년 약물과 전기자극 등으로 인간 정신과 행동을 통제·조종하려 했던 비밀 실험 프로젝트 명칭입니다. 1974년 뉴욕 타임스에 의해 MK 울트라 프로젝트가 단순 유언비어가 아니라는 사실이 폭로됐고, 이듬해 미 의회를 통해 실제로 행해진 세뇌 실험의 실체가 확인됐습니다. 미국 사회는 발칵 뒤집혔고 당시 대통령이었던 제널드 포드가 나서 진상조사를 벌였습니다.

조사로 밝혀진 내용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마약류를 동원한 것은 MK 울트라의 서브 프로젝트 중 하나일 뿐이었고, 서브 프로젝트의 가짓수만 54개에 달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죠. CIA는 전기, 빛, 음향, 방사능, 화학, 약학, 생물학에 내외과 수술을 포함한 광범위한 기술을 동원해 세뇌, 역세뇌, 세뇌 해제, 기억 소거, 기억 주입 등 반인륜적인 실험을 서슴지 않았던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파일이 CIA에 의해서 대부분 파기당했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입은 고통을 증명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국가안보라는 미명하에 이같은 끔찍한 반인륜적 실험이 진행됐다는 사실은 아직까지도 충격을 자아냅니다. 당시 역시 우려를 제기한 이들도 있었겠지만, 냉전 상황 속 소련의 위협을 막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깨기에는 어려움이 있었겠죠.

[게임읽기] '블랙 옵스 콜드 워', 착한 놈 없는 나쁜 놈들의 세상
▲사진=게임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악인이 되버린 것도 결국 냉전의 영향이 아니었을까. 게임플레이 화면 캡처

'블랙 옵스 콜드 워'에는 악인 밖에 없다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전작(시간상으로는 '콜드 워' 이후)에서 인간적인 모습으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아재 3인방 역시 이번 작품에서는 비도덕적인 결정을 합니다. 냉전이라는 비정상적인 시대상이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이겠죠.

1989년 냉전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뒤 소련 중심의 동구권과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는 긴장 대신 화해를 택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 초중반까지 지구촌에는 잠시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2017년 이후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블랙옵스 콜드 워'를 하던 중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리는 없지만,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들 정도로 차갑게 긴장구도를 조성하는 냉전이 더욱 무서울 수도 있다는 것이요.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신냉전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울한 기분이 듭니다.

sh04khk@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