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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호 / 기사승인 : 2020-12-05 08:2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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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은 가수 보아의 지난날은 곧 K팝의 역사이기도 했다. 한국 가수 최초 일본 오리콘 차트 1위, 한국 가수 최초 미국 빌보드 메인 차트 진입, 역대 최연소 가요대상 수상, 해외 시장을 공략한 첫 번째 성공 모델이자 후배 가수들과 가수 지망생들의 모범적인 역할 모델…. 보아가 남긴 발자취를 여러 키워드로 돌아본다.

20주년: 올해 8월25일은 보아가 데뷔음반 ‘아이디: 피스 비’(ID: Peace B)를 발매한 지 20년째 되는 날이다. SM엔터테인먼트는 20년 전 보아의 데뷔를 알리는 CF를 제작해 TV에 송출하기도 했는데, 지금도 흔치 않은 파격적인 마케팅이었다. 애초 보아는 데뷔일이 있는 8월에 20주년 기념 음반을 발매할 계획이었지만 일정이 미뤄졌고, SM은 그룹 엑소 멤버 백현 등 후배 가수들이 보아의 히트곡을 리메이크하는 ‘아워 비러브드 보아’(Our Beloved BoA)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이 외에도 보아의 20년 음악 활동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202020 보아’가 유튜브와 네이버TV에 공개됐고, 리얼리티 프로그램 ‘모두가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아’(Nobody Talks To BoA)도 네이버 브이라이브를 통해 시청자와 만나고 있다. 보아의 팬이라면 5일 KBS2 ‘불후의 명곡’도 빠뜨리지 말자. 보아가 출연해 동료 가수들의 헌정무대를 지켜본다.

내전근: 다리 안쪽을 구성하는 근육. 지난 1일 보아의 데뷔 20주년 기념 음반 타이틀곡 ‘베러’(Better)의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자, 온라인은 보아의 내전근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춤을 출 때 마다 뚜렷하게 드러나는 근육에 특히 여성 팬들이 더욱 뜨거운 환호를 쏟아냈다고. 2년 전 ‘우먼’ 활동 당시에는 강력한 코어 근육을 이용해 공중에 거꾸로 매달린 채 무대에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물론 거저 얻은 결과는 아니다. 보아는 평소 자기관리가 철저한 것으로 유명하다. 골프 등 운동은 물론, 무대에 올라갈 수 있는 컨디션을 만들어 놓기 위해 일주일에 두 번씩 재활치료도 받는다고 한다. 무엇보다, 해야 하는 일이라면 그는 해낸다. 보아는 말했다. “저는 살면서, 시도도 안 해보고 못한다고 말하는 게 제일 싫어요. 저 조차도 해보지도 않고 ‘못해’는 아닌 거예요.”(SBS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 선명하게 갈라진 내전근, 그것은 보아가 들인 노력의 흔적이다.

이수만: SM의 대표 프로듀서이자, 초등학생이던 보아를 발탁해 데뷔시킨 인물. 보아는 초등학생이던 1998년 백화점에서 열린 춤 경연대회에 참가했다가 SM 관계자의 눈에 띄었고, 그의 권유로 참여한 SM 오디션에서 이수만에게 발탁됐다. 당시 SM은 보아의 데뷔를 위해 약 30억 원을 투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남양주에서 서울 방배동까지 왕복 4시간 거리를 오가며 연습하기를 3년여. 마침내 세상에 나온 보아는 훗날 이수만이 “보아가 없었다면 지금의 SM도 없다”고 말할 만큼, 한국은 물론 아시아 전역에서 인기를 누리는 가수로 대성했다. 특히 이수만은 보아의 활동곡을 두고 보아와 자주 의견 차이를 보였던 것으로 유명하다. 보아에게 첫 대상을 안겨줬던 히트곡 ‘마이 네임’(My name)이나 ‘걸스 온 탑’(Girls on top)에서 남자 안무가 등에 올라타는 안무 모두 이수만이 반대했던 것이라고 한다. 덕분에 최근에는 보아와 ‘톰과 제리’ 같은 사이로 자타의 인정을 받고 있다. 누가 톰이고 누가 제리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아시아의 별: 보아의 별명. 보아는 중학생이던 2001년 일본에 데뷔해 아시아 전역에서 인기를 누리며 한류를 개척했다고 평가받는다.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데뷔 전엔 언어를 배우기 위해 일본 NHK 아나운서 집에서 하숙하다가 ‘국제 미아’가 될 뻔했고, 밀려드는 일본어 인터뷰를 통역사 없이 소화해야 했다. 외로운 시간이었다. 오죽하면 그가 일본에서 가장 제일 외운 한자가 ‘눈물 루’(淚)였을까. 게다가 립싱크가 익숙하던 당시 한국 가요계와 다르게 일본은 100% 라이브를 요구했다. 고대하던 첫 쇼케이스를 망쳤다. 무대가 무서워졌다. 하지만 보아는 ‘눈물을 흘려도 남는 건 퉁퉁 붓는 눈 밖에 없다’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이듬해 일본에서 발매한 네 번째 싱글 ‘리슨 투 마이 하트’(Listen to my heart)로 대박을 내면서 반전이 시작됐다. 해당 곡이 실린 일본 정규 1집은 100만장 넘게 팔리며 한국인 최초 오리콘 일간, 주간 음반 차트 1위를 차지했다. “저 친구가 단독 콘서트를 하려면 10년은 걸리겠다”는 일본 소속사 관계자의 말을 뒤집고 2003년 일본 6개 도시에서 단독 공연을 열었다. 티켓은 연일 매진이었다. 베스트 음반을 포함해 2008년 발매한 정규 6집까지 일본에서 낸 음반 일곱 장이 모두 오리콘 주간 음반 차트 정상에 올랐다.
 
걸크러쉬: 보아를 대표하는 콘셉트. 보아는 ‘걸크러쉬’라는 단어가 생겨나기 훨씬 전이었던 2000년 발표한 데뷔곡 ‘아이디; 피스 비’에서 기성세대를 향한 저항을 보여줬고, 이후에도 ‘마이 네임’과 ‘걸스 온 탑’ 등을 통해 가요계에 당당하고 강인한 여성상을 제시했다. 2000년대 초중반 보아가 보여준 걸크러쉬가 SMP(SM music performance) 특유의 강렬함과 시너지를 냈다면, 보아가 본격적으로 음반 작업에 참여하기 시작한 2010년대 이후 발매한 노래들에선 한층 넓어진 스펙트럼과 보다 선명해진 자의식이 드러난다. 보아가 직접 노랫말을 쓴 ‘우먼’이 대표적인 보기다. 이 곡에서 보아는 “제2의 누군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진정한 우먼”은 결국 “내면이 강한 멋진 나”라고 노래한다. 그리고 이는 연령주의와 유리천장이 뒤엉킨 정글 같은 쇼 비즈니스 업계에서, 20년 가까이 최정상을 지킨 보아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콘셉트가 아닌 존재 자체로써 여성에게 용기와 영감을 주는, 이것이 보아의 걸크러쉬다.

wild37@kukinews.com / 사진=SM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