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프레스] 우물 안 개구리에게 세상을 보여주려면

“대입 공정성 확보, 근본적으로 다가가야”

기사승인 2020-12-14 21:2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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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프레스] 우물 안 개구리에게 세상을 보여주려면
[쿠키뉴스 유니프레스] 이현진 연세춘추 기자 = 경상남도 김해시. 대학에 입학하기 전 살아온 정든 나의 동네다. 김해는 경전철을 타고 40분만 달리면 이웃들이 사는 여기저기를 모두 넉넉히 둘러볼 수 있을 만큼 자그맣다. 해마다 입시철이 가까워지면 어디 사는 누가 서울 무슨 대학교에 합격해 고등학교에 플래카드가 붙었다는 자질구레한 입시 소식까지도 속속들이 퍼졌다. 특히 상경길을 밟게 된 복 받은 누군가의 이야기는 두고두고 회자되곤 했다. 서울로 가는 문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이윽고 2018년 3월, 우리 고등학교에서 함께 서울로 올라온 친구들은 열댓 명이 고작이었다. 서울에서 공부하기를 간절히 꿈꿨지만, 어쩔 수 없이 김해에 남은 친구들을 생각할 때면 왠지 모를 부채감이 떠오른다. 예컨대 내 친구 A는 서울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 시작은 A가 고등학교 1학년, 서울에 여행을 다녀온 때였다. A는 서울역에서 내리자마자 인파로 붐비는 지하철에 끼여 30분을 이동했다고 한다. 누가 들어도 기꺼운 경험은 아니지만, A는 김해의 한적한 경전철에서는 겪지 못한 1호선의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색다른 활력과 열기를 느꼈다고 회상했다.

그 벅참을 잊지 못한 A는 그날 이후 언제나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고 등교하는 대학생이 되길 바라왔다. 그리고 대입 원서 접수 당시 수시 6장의 카드 모두를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지원했지만, 입시의 결과는 냉혹했다. 그 밖에도 수많은 친구가 서울의 문턱을 넘지 못해 좌절했다.

나는 그들의 간절함이, 그리고 서울에서 공부하기를 바라며 노력한 학창 시절이 나보다 모자라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어째서 그들은 서울에 올 수 없었을까? 입시가 끝난 이후 줄곧 마음 한편에 있던 불편한 물음표다. 해답은 수도권 출신의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며 자연히 알게 되었다. 언젠가 서넛이 모여 야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내어놓던 와중에 누군가 얼핏 “대입만을 위해 준비한 6년”이라고 지난 과거를 회상했다. 내가 듣기로는 어폐가 있었다. 대입을 준비한 것은 3년이라며 가볍게 핀잔을 주는 내게 그는 외려 되물었다. “대입을 3년만 준비해서 되는 거냐”며 커다란 물음표를 띄우고 의구심을 드러내는 얼굴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김해에서는 아무도 6년간 대학 입시를 준비하지 않는다. 누구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알려주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막 입학할 때쯤 그제야 주변에서 정시는 가당치 않으니 수시를 준비해야 한다며 슬그머니 이야기를 꺼낸다. 그때까지도 대입 준비의 필요성을 체감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고등학교 생활도 절반이 지날 때쯤이야 대입이 코앞으로 다가왔다고 생각하는 또래들이 하나둘 보였다.

돌이켜보니, 그제야 김해에 남겨진 이들과 내 차이가 떠올랐다. 나는 김해에서 유별나게 일찍 선행학습을 시작한 유일한 아이였다. 책상 공부가 적성에 맞던 내 성향을 일찍 알아차린 부모님이 발 빠르게 내 진학 계획을 세우신 덕분이다. 중학교 3학년 1학기에, 고등학교 1학년 수학 문제집을 풀고 있던 나를 보고 친구들은 의아한 시선을 던졌다. 인제 와서 여기저기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은 중학생 때 고등학생 『개념원리』며 『수학의 정석』을 푸는 것이 당연하다 했다.

애당초 출발선이 달랐던 걸까, 깨달은 순간 허망함에 잠겼다. 비로소 내가 살았던 곳은 자그마한 우물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정작 우리가 맞서야 할 존재는 우물 밖에 있다는 것을 몰랐다. 나와 수험생활을 함께한 김해 또래들은 우리가 우물 속에 있는 줄도 모르고 나름의 최선을 다해 대입에 임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물 밖에서 양껏 햇살을 받으며 단련한 이들과 비견하기엔 역부족이었던 걸까.

개구리들이 우물 안에 머물러있는 동안, 우물 밖은 분주히 굴러간다. 누구나 입신양명 등용문으로 여기는 인서울 대학 진학을 위해 사활을 다한다. 그런 한편 우물 안에서는 편법을 이용해 대입에 임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급기야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자녀 대입 비리’로 대입 공정성 논란이 불거지자, 교육부에서는 지난해 11월 28일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서울 16개 대학의 정시 비율 확대와 ▲학생부종합 전형 평가에서 비교과 요소 배제 등의 내용을 포함해 대입 공정성을 제고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근시안적 대안에 불과하다. 우물 안에서 태어난 사람들과 우물 밖 사람들이 접하는 자원은 확연히 다르다. 이 간극을 메우려면 대입 제도를 ‘일부’ 바꾸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근본적으로 대입 제도의 공정성 확보, 나아가 모든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 밖으로 나설 수 있도록 하는 사다리가 필요하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입시제도 변혁이 될 수도, 혹은 제3의 대안이 제시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도 우물 밖 세상의 존재조차 모른 채 우물 속에서만 고전하는 개구리들이 있다. 모든 우물 안 개구리가 올라오기 충분할 만큼 길고 원만한 사다리를 드리워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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