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해고 칼날에 베인 LG청소노동자

기사승인 2021-01-06 17: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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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해고 칼날에 베인 LG청소노동자
[쿠키뉴스] 윤은식 기자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생전 "엘리베이터에서 아는 직원들을 만나면 항상 먼저 인사해라. 모두의 하루를 기분 좋게 할 수 있다"며 구광모 회장에게 당부했다. 그리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곤 했다. '겸손'과 '배려'는 고 구 회장이 생전 구광모 회장에 남긴 최고의 가르침이다.

"경영환경이 어렵다고 사람을 안 뽑거나 함부로 내보내서는 안된다"(지난 2007년 고 구본무 회장 신년사 중) 

고 구 회장이 7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고 구광모 회장은 40세의 젊은 나이에 재계 4위 LG그룹을 이끌게 됐다. 구 회장은 취임사에서 아버지의 인간존중 경영을 이어 가겠다며 "인간존중, 정도경영 이라는 자산을 계승·발전시키겠다"고 천명했다. 

"살려주세요. 우리도 한 가정의 가장입니다. 쫓겨나면 갈 곳이 없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2020년 12월 31일. LG 트윈타워 청소노동자 80여명은 해고됐다. 이날 수은주는 영하 12도. 세밑 한파 그 이상으로 노동자들의 마음은 꽁꽁 얼어붙었고, 여의도에 부는 칼날 같은 찬 바람은 노동자들의 심장을 날카롭게 베어나갔을 것이다.

해고 노동자들은 지난해 12월 16일부터 고용 승계를 요구하며 트윈타워 로비에서 농성을 이어갔다. 

트윈타워를 관리하는 S&I 코퍼레이션이 해고 노동자들이 소속돼 있는 지수아이앤씨 대신 백상기업에 넘겼고 지수아이앤씨는 계약만료 통지를 보냈다. 정부의 지침은 용역업체가 변경되더라도 기존 노동자의 고용은 승계하도록 권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S&I 코퍼레이션은 지주사인 (주)LG의 100% 자회사다. 용역업체 지수아이앤씨는 구광모 회장의 고모인 구훤미씨와 구미정씨가 지분 50%를 들고 있는 기업이다. 사실상 총수일가의 회사다. 그들이 뿌리 정신으로 여기는 '인화(人和)의 정신'은 온데간데없다.

S&I 코퍼레이션이 농성 해고자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인화의 LG 모습은 없었다. 트윈타워 건물 로비에서 노숙 농성 중인 노동자들에게 넣어준 음식을 가로챘고, 바닥에 내농댕이 쳐졌다. 초코빵을 가로채 날랜 걸음으로 달아났다.

솔직히 먹는 것 가지고 이러는 건 치사하지 않나 싶다. 전쟁 중에 잡힌 적국 포로도 굶기지는 않는다. LG는 이들 노동자가 포로만도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심도 든다.

이런 행태가 방송언론을 통해 밝혀지자 그제야 음식물 반입을 수용했다고 했다. 그간 국민 기업, 착한기업 이미지로 대중에 사랑을 받아온 LG의 본 실체가 드러난 것인지 안타깝기만 하다.

노동자 해고와 관련해 S&I 측은 "당사와 지수아이앤씨는 조합원들에게도 고용 유지 결정을 전달한 상황이며, 지속적 대화를 통해 빠르게 사안이 마무리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했다.

하지만 "사람을 함부로 내보내서는 안 된다"는 고 구본무 회장의 인간 존중 가르침이 무색하게만 느껴진다.

'진짜 사장이 나와라'는 노동가가 있다. 복잡한 하도급 관계를 악용해 법적 책임을 피하려는 원청 사용자와 직접 교섭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노동가로 알려진다. 

'진짜 사장이 나와라'는 문장이 가진 뜻과는 다르지만 고 구 회장이 남긴 '정도 경영'·'인간존중 경영'을 이어받겠다는 '진짜 사장' 구광모 회장의 혜안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그것이 국내 재계 4위의 대기업 수장으로서 해야 할 사회적 책임이다. 

eunsik80@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