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일터' 중대재해법 제정···노사 이견 '대립'

勞 "사업자 처벌 수위 원안보다 낮아져 실효성 의문"
社 "세계 최대 가혹한 처벌 부과···'경영위축' 귀결"
정치권, 중대재해법 잉크도 마르기전에 개정 만지작

기사승인 2021-01-14 04: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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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일터' 중대재해법 제정···노사 이견 '대립'
▲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가운데)와 고 김용균씨 모친 김미숙 김용균 재단이사장, 고 이한빛 PD 부친 이용관씨 등이 11일 국회 본청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에 들어가고 있다. (왼쪽부터)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 김미숙 김용균 재단 이사장, 강은미 원내대표, 고 이한빛 PD 부친 이용관씨, 김종철 정의당 대표. 사진=박효상 기자

[쿠키뉴스] 윤은식 기자 =노동자가 작업 중 사망하거나 다쳤을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게 형사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이 제정됐다. 사업주에게 징역형 또는 벌금형을 부과해 안정한 사업장을 조성하겠다는게 핵심 포인트다. 하지만 법 통과에 노동계와 경제계가 서로 다른 이견을 내세우며 법 실효성문제를 지적하고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경영계는 중대재해법이 과도한 처벌 수위 등으로 경영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정치권에 보완입법을 주장하고 있지만 노동계는 애초 법 원안보다 낮아진 처벌수위와 경영자 면책 여지를 남겼다는 점에서 반쪽짜리 법에 그쳤다며 법 개정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중대재해법 제정으로 산업재해 발생시 하청은 물론 원청도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됐다. 법에 따르면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게 징역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을 처한다. 법인의 경우는 10억원이하 벌금에 처한다. 노동자가 상해를 당했을 때나 질병에 걸렸을 때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다만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대상에서 제외된다.

이 법을 적용하면 지난 2016년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승강장 스크린 도어를 수리 중 열차에 치어 숨을 거둔 김 군의 사건의 경우 경영책임자인 하청업계 은성PSD와 원청인 서울메트로 대표가 모두 1년 이상 징역,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그러나 당시는 중대재해법이 제정되지 않아 하청업체 대표는 징역 1년의 집행유예 2년, 서울메트로 대표는 벌금 10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 받으면서 솜방망이 처벌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노동계는 그러나 5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대상에 빠졌고 50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 유예 등 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 중대재해법이 통과된지 이틀 만인 지난 10일 여수산업단지 금호티앤엘에서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가 컨베이어에 끼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앞서 이 회사는 지난 2018년에도 비정규직 노동자가 석탄 운반용 컨베이어 밸트에서 떨어져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대재해법이 제정됐음에도 금호티엔엘은 처벌받지 않았다. 법 부칙에 따라 공포 후 1년 뒤 시행되는 데다가 노동자 50인 미만 사업장은 법 공포 후 3년 유예 규정으로 처벌을 면할 수 있었다. 이 사업장에서 노동자가 숨지는 사고가 계속돼도 3년의 유예 기간이 지나지 않은 이상 처벌을 할 수없다는 얘기다.

또 광주 광산주 지죽동 플라스틱 재생업체에서 근무하던 50대 여성 노동자가 기계에 몸이 빨려들어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이 역시 처벌 대상이 아니다. 고용 규모가 4인으로 법 적용 대상이 될 수없기 때문이다. 법이 시행중이었어도 처벌할 수도 없다.

민주노총은 "10만 노동자, 시민의 법안발의가 국회에서 중대재해법 제정으로 결실을 맺었다"면서도 "또 다른 편법과 꼼수를 통해 중대재해를 유발한 자들이 법의 그물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뻔히 보이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5인 미만 사업장의 적용제외와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적용 유예가 대표적"이라며 "실제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작은 사업장의 현실을 무시한 법 제정으로 인해 법을 빠져나가기 위해 사업장을 쪼개 50인 미만,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이 속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노동계와 반대로 경제계는 중대재해법은 세계 최대 가혹한 처벌을 부과하는 것"이라며 법의 보완입법을 주장하고 있다.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중소기업중앙회·소상공인연합회·대한전문건설협회 등 6개 경제단체는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찾아 보완입법을 요구했다. 

이들 단체는 법 제정으로 인한 경영활동 위축 등 부작용 방지를 위해 사업주 징역 하한규정의 상한 변경, 반복적 사망에만 중대재해법 적용, 사업주 의무 구체화 및 의무 다할 시 처벌 면제, 50인 이상 중소기업에도 최소 2년 유예기간 부여 등의 보완입법을 요구했다.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은 "법 제정 전 경제계 요구를 반영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단 하나도 검토되지 않았다"며 "법의 최대 피해자는 중소기업이고 사업주가 처벌되면 결국 일자리까지 없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치권도 중대재해법을 놓고 '설왕설래'다. 국민의힘은 재계 입장을 반영해 법을 다시 뜯어 고치겠다는 뜻을 밝혔고, 중대재해법을 주요 입법과제로 처리한 민주당 내에서도 정의당과 노동계 주장과 궤를 같이 하는 의원들과 그렇지 않은 의원들사이에 이견이 나오는 상황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경제계단체와 만난 자리에서 "법의 허점은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고 입법된 법에 부작용이 있거나 문제가 있으면 진솔하게 사과하고 보완작업을 해야한다"며 법 개정의 뜻을 밝혔고, 이낙연 더불어빈주당 대표도 "부족하나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새로운 출발로 삼고 앞으로 계속 보완,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해 법 개정의 뜻을 내비쳤다.

정의당은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중대재해법 개정 발언에 발끈하며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다"며 분개했다.

정호진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국민의힘이 6개 경제단체를 초청해 중대재해법의 개악 개정을 약속했다"며 "불과 사흘전 후퇴를 거듭한 끝에 통과한 중대재해법을 무용지물로 만들겠다는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unsik80@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