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용
[단독] 특허청장상 진짜 주인공 “8년 전 보고서 ‘복붙’…그냥 넘어갈 수 없어”
▲사진= 김용래 특허청장이 지난해 10월15일 서울 강남구 한국지식재산센터에서 열린 ‘제2차 혁신 아이디어 공모전’ 시상식에서 손모씨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쿠키뉴스] 정진용 기자 = 소설 ‘뿌리’를 무단 도용해 문학상을 5개나 받는 등 각종 경력이 허위로 드러난 손모씨로부터 아이디어를 도둑맞은 원작자가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쿠키뉴스 취재 결과 ‘뿌리’와 비슷한 방식으로 손씨는 한 아이디어를 복수의 공모전에 응모해 상금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손씨는 지난해 10월 특허청이 주최한 ‘제2차 혁신 아이디어 공모전’에 ‘공공데이터를 활용한 신개념 자전거 내비게이션 애플리케이션, 케이-바이크(K-BIKE)’을 제출해 최고상인 ‘특허청장상’을 수상했다. 상금 100만원을 받았다. 특허청 측은 당시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아이디어의 실현 가능성이 높고 기존 서비스 대비 편의성이 우수하다는 점에서 심사위원으로부터 최고점수를 획득하였다”고 평가했다. ▲사진=지난해 10월 열린 ‘2020 시민도시계획 아이디어 공모전-빅데이터를 통해 바꾸는 서울 공모전’. 같은달 손씨는 사단법인 대한국토·도시계획협회와 서울시가 공동 주최한 ‘2020 시민도시계획 아이디어 공모전-빅데이터를 통해 바꾸는 서울 공모전’에도 참여했다. 특허청에 제출한 아이디어를 ‘재활용’했다. 손씨는 이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 상금 50만원을 받았다.  특허청과 서울 시민 아이디어 공모전 측은 모두 손씨가 표절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수상 취소와 상금 환수에 나선 상태다.K-BIKE 아이디어의 원작자인 이슬기(36)씨는 20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신파극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라며 “너무 어처구니가 없다”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이씨는 창업의 꿈을 가지고 바쁜 직장생활 와중에도 매년 서너 번은 꾸준히 공모전에 도전해왔다. 이씨의 ‘버킷 리스트’에 공모전에서 1위를 하는 게 올라있을 정도다. 이씨는 지난 2013년 공공데이터 창업 활용 경진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K-Bike 아이디어를 떠올려 보고서를 만들어 제출했고, 당시 수상에는 실패했다. 보고서를 그냥 묵히기는 아까워서 지난 2018년 리포트 공유 누리집 ‘해피캠퍼스’에 이 보고서를 올린 것이 발단이었다. ▲사진= 이씨 블로그 캡처. 창작물이 인정받고 공모전에서 상을 받는, 이씨가 꿈꿔왔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그런데 시상대에 오른 이는 아이디어를 훔쳐간 ‘공모전 사냥꾼’. 이씨의 심경은 어떨까.  이씨는 “대학생 때만 해도 공모전이 취업 스펙 중 하나라서 공모전 수상이 하나의 자부심 같은 거였다. 공모전 하나를 위해 한 학기 내내 매달린 분들도 있다”면서 “아이디어를 도용해서 자기 것인 양 홍보하고 서울시를 통해 사업화까지 할 수 있다는 글을 SNS에 올려놓은 것을 보고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지난 18일 도용 여부를 확인해달라는 공모전 측의 전화에도 “아이디 내용을 더 발전시키거나 다른 아이디어를 첨부했다면 그건 제 아이디어가 아니지 않겠냐”고 답했던 이씨였다. 그러나 “한번만 확인해달라”면서 담당자가 보낸 손씨가 제출한 보고서를 본 뒤 이씨는 “그냥 넘어가서는 안되겠다”고 생각을 바꿨다.  ▲사진= 서울 시민 공모전에 손씨가 제출한 작품 캡처. 8년 전 그가 한 달을 꼬박 들여 작성한 보고서와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복사해서 붙여넣기’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손씨는 이씨가 작성한 “자전거를 이용하여 친척집을 방문하기 위해 상용 되어있는 네비게이션을 활용하여 경로를 탐색하였던 적이 있다”는 아이디어 구상 배경을 자신의 경험으로 둔갑시켰다. 기존에 출시된 서비스와의 비교 분석을 위해 이씨가 넣은 2013년 기준 자전거 애플리케이션들을 최신 것으로 바꾸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손씨는 하지 않았다. 보고서에서 인용된 2014년 기사 역시 그대로였다. 특허청과 다른 공모전의 심사 과정이 허술한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했다. 이씨는 “보고서에 들어간 애플리케이션은 8년도 더 된 것들로, 지금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검색하면 이미 서비스를 종료해 안 나오는 애플리케이션이 수두룩하다. ‘어떻게 수상이 가능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손씨는 전날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특허청 수상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도용의 기준은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똑같이 베낀 것이라고 생각해 (참고했다고) 말한 것”이라며 “내가 생각한 도용의 기준과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기준이 다른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이씨는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다. 그는 “제가 움직이지 않으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다. 법적 대응을 한다고 해서 얻을 것도 없을 것 같지만 이건 그냥 정말 아니다”라며 “시간이 들고 돈이 들더라도 그냥 넘길 수 없다. 가만히 있다가는 손씨 주장대로 ‘참고한 수준’으로 넘어갈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스스로 (이 상황을) 납득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