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위치에 있든” 정계 진출 쐐기 박은 윤석열

정진용 / 기사승인 : 2021-03-04 16:2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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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사퇴 입장을 밝히고 있다. 박태현 기자
[쿠키뉴스] 정진용 기자 = 윤석역 검찰총장이 4일 전격 사퇴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윤 총장의 사퇴 의사 표명 1시간여 만에 사의를 수용했다.

직을 내려놓은 윤 총장의 향후 행보가 결국 정계 입성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윤 총장은 이날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의를 표명했다. 임기를 넉 달여 앞둔 시점이다.

윤 총장은 사퇴 입장문을 통해 “저는 오늘 총장을 사직하려 한다”며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 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고 밝혔다. 윤 총장은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며 “저는 이 사회가 어렵게 쌓아 올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검찰에서 제가 할 일은 여기까지다. 그러나 제가 지금까지 해온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면서 “그동안 저를 응원하고 지지해주신 분들, 그리고 제게 날 선 비판을 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끝맺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3일 오후 직원과의 간담회를 위해 대구고검과 지검을 방문한 자리에서 권영진 대구시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윤 총장 사퇴 입장문 내용 중 눈길을 끄는 것은 “앞으로도 어떤 위치에 있든”이라는 문구다. 

윤 총장은 전날 대구고·지검에 방문한 자리에서 정계 진출 여부를 묻는 말에 “지금 이 자리에서 드릴 말씀은 아니다”고 즉답을 피했다. 

같은날 윤 총장의 대구·고지검 방문은 정치인 유세장을 방불케 했다. 지지자와 취재진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윤 총장이 도착하기 전부터 응원하는 화환 20여개와 현수막이 설치됐다. 시민들은 ‘윤석열’을 연달아 외쳤다. 한 지지자는 ‘윤석열 대통령’이라고 적힌 플랜카드를 들었다. 윤 총장을 마중나온 국민의힘 소속 권영진 대구시장은 꽃다발을 건네며 “헌법 가치를 수호하는 총장님의 행보를 응원한다”고 덕담했다.

윤 총장의 바뀐 화법도 정치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를 싣는다.

3일 윤 총장은 여당이 추진하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겨냥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은 ‘부패완판’(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한다)”이라고 발언해 주목을 받았다. 정치인들이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하고 언론의 주목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내는 신조어와 비슷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지난 1일 국민일보와의 취임 이후 첫 언론 인터뷰에서는 “중수청은 민주주의의 퇴보이자 헌법정신의 파괴”라며 “법치를 말살하는 것”이라고 작심발언을 했다. “국민들께서 관심을 가져달라”며 여론전을 주도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사퇴 입장을 밝히고 있다. 박태현 기자

중수청 강경발언 이후 윤 총장의 지지율은 소폭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1∼3일 전국 성인 100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3월 1주차 전국지표조사(NBS)에서 ‘차기 대통령감으로 누가 가장 적합한가’라는 질문에 윤 총장은 전주 대비 2%p 반등한 9%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지난 1월 이후 줄곧 하락을 기록하다가 5주만에 반등했다. 여론조사의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서 ±3.1%p다.

윤 총장의 지지율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의 갈등이 정점에 이르렀던 지난 1월 이재명 경기도 지사,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제치고 차기 대선주자 1위를 차지했다. 같은달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1~2일까지 양일간 실시한 여야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결과 윤 총장이 30.4%의 지지율로 1위에 올랐다. 같은 조사에서 이 지사는 20.3%, 이 대표는 15%로 집계됐다. 해당 여론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 응답률은 5.2%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윤 총장의 사퇴 표명은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 항명 파문의 연장 선상”이라며 “‘조국 사태’ 이후 추윤 갈등과 검경 개혁 과정에서 윤 총장은 본인 의사와는 무관하게 정치 행보를 밟아왔다”고 말했다.

이어 “여당이 너무 과도하게 검찰을 밀어붙이면서 오히려 윤 총장에게 사퇴의 명분을 준 셈이 됐다. 윤 총장으로서는 더 총장직을 유지하는 게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며 “타이밍, 명분, 상황 삼박자가 맞아 떨어졌다”고 했다.

최 연구원장은 “사표를 내는 행위 자체가 정치다.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나온 표현을 보면 정치권에서 쓸 수 있는 가장 강도 높은 단어만 썼다. 배틀필드(전장), 헌법, 졸속추진 등 단어를 봤을 때 작심하고 준비를 많이 한 것”이라며 “국민에게 공개적으로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아마 4월 보선이 끝나면 정치권에 합류할 가능성이 높다”며 “윤 총장은 이미 무형의 정치활동이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