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저씨가 ‘노 엔씨’ 외치게 된 이유는

엔씨소프트 대표작 '리니지' 운영 방식에 이용자 분노
충성도 높은 고객 '린저씨', '노(NO) 엔씨' 불매 운동
논란 확산에 엔씨 주가도 와르르

기사승인 2021-04-08 06:3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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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저씨가 ‘노 엔씨’ 외치게 된 이유는
리니지M 이용자의 항의 문구가 담긴 트럭. 유저 제공

[쿠키뉴스] 문대찬 기자 =5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는 엔씨소프트를 규탄하는 항의 메시지를 담은 트럭이 섰다. 트럭에는 “문양패치 업데이트, 고객들은 현금결제, 제멋대로 문양롤백, 돌아온 건 환불거부”, “고객들이 원하는 건 책임 있는 윤리경영”, “택진이형 출두해 신사답게 사과해” 등의 문구가 적혔다.

트럭 시위의 주체는 ‘린저씨’들이다. 린저씨는 엔씨의 대표 게임인 ‘리니지’와 아저씨의 합성어다. 20년 넘게 리니지를 즐기는 등 충성도가 매우 높은 이용자로 통한다. 

린저씨는 엔씨의 VIP 내지 주요 고객이다. 리니지 시리즈(리니지M·리니지2M·리니지1·리니지2)의 지난해 매출은 1조9586억원으로 엔씨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한다. 엔씨가 업계 1위로 도약할 수 있었던 데에는 린저씨들의 도움이 컸다. 그간의 잦은 논란에도 큰 불만 없이 게임을 즐겼던 린저씨들이 이제는 ‘사지 않겠다, 제작하지 않겠다’며 ‘노(NO) 엔씨’를 부르짖고 있다. 무엇이 린저씨들을 움직였을까.
린저씨가 ‘노 엔씨’ 외치게 된 이유는
리니지M 이용자의 불매 운동 문구. 리니지M 인벤

지난 1월말 업데이트가 화근이 됐다. 당시 엔씨는 더 많은 이용자들에게 혜택을 주고자 ‘리니지M’ 내의 강화시스템인 ‘문양’을 완성시키는 난이도를 낮췄다. 기존 방식으로는 문양 한 개를 완성하려면 3000만원에서 5000만원의 비용을 들여야 했는데, 업데이트를 통해 1000만원 수준까지 줄였다. 그러자 이미 큰돈을 들여 문양을 완성시킨 최상위 이용자들이 불만을 터뜨렸다. 부담을 느낀 엔씨가 나흘 만에 이를 번복하자 이번엔 ‘1%만을 위한 게임 운영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엔씨의 사후 대처도 논란에 기름을 끼얹었다. 문양을 원상복구하고 비용을 환불하는 과정에서 이를 현금이 아닌 ‘다이아’와 같은 게임 머니로 지급한 것이다. 이밖에도 1억6000만 원을 결제해 환불을 요구했더니 5000만원어치 게임머니만 주더라는 이용자의 주장 등이 나오면서 보상 기준을 놓고 논란이 커졌다. 엔씨가 지난달 2차 보상을 일괄적으로 실시했지만  이용자들은 ‘보상 기준 공개’, ‘전액 환불 및 진정성 있는 사과’, ‘확률 조작 의혹 해명’, ‘과도한 사행성 유도 해명’ 등을 요구하며 집단행동에 나섰다.

국내 게임업계의 뒤숭숭한 분위기가 린저씨들의 이번 집단행동의 촉매가 됐다는 시각도 있다. 최근 주요 게임사가 확률형 아이템의 과도한 사행성 등으로 논란을 빚으면서 이용자들의 집단행동이 연이어 나타나는 추세다. 트럭시위 뿐만 아니라 간담회까지 요청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자의 기본적인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확률형 아이템을 규제하는 법안들을 속속 발의하며 업계를 압박하는 중이다. ‘우리라고 트럭시위 못하느냐’는 목소리가 린저씨 사이에서 힘을 얻었고, 이것이 트럭시위 등 불매운동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린저씨가 ‘노 엔씨’ 외치게 된 이유는
5일 여의도 앞에 선 트럭. 

린저씨들은 이번 시위를 ‘개돼지 해방전쟁’이라고 칭한다. 17년 전 ‘리니지2’의 ‘바츠해방전쟁’에서 따온 이름이다. 바츠해방전쟁이 게임 내에서 횡포를 저지른 특정 혈맹을 대상으로 이용자들이 일으킨 혁명인 반면 개돼지 해방전쟁은 회사를 겨냥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익명을 요구한 개발진 출신의 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최소한의 보호 장치도 없었다는 것이 유저들의 분노를 유발한 것”이라며 “엔씨 문양사태의 경우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후 대처에 문제가 있던 것은 둘째 치고, 그동안 극도로 과금을 유도해온 리니지M에 대한 반발이 이제야 터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또한 과거 리니지를 플레이 했다고 밝힌 한 유저는 “지나친 사행성 유도와, 낮은 아이템 확률로 인해 이용자들이 언제 분노를 터뜨렸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며 “엔씨가 간담회를 통한 소통에 나서는 등 이용자와의 신뢰를 회복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논란이 확산되면서 엔씨도 출혈이 극심하다. 이번 논란에다가 상반기 기대작인 ‘트릭스터M’의 출시가 돌연 연기되는 등 악재가 겹치면서 이달 초만 해도 100만원이 넘었던 엔씨의 주가는 7일 기준 80만원대까지 폭락했다. 엔씨 매출의 80% 정도가 국내 시장, 그중에서도 리니지에 편중돼 이용자 반발이 확산할 경우 실적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한편 엔씨 관계자는 “상황을 계속 예의주시 중이다. 현재 2차 보상안까지는 진행된 상황이다. 추가적인 방안이 나오면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을 아꼈다. 

mdc0504@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