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구매 병원의 ‘갑질’…리베이트‧환자피해로 이어져

병원과 특수관계인 ‘간납사’, 대금결제 꼼수‧과도한 수수료 요구

기사승인 2021-04-09 04:2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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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기 구매 병원의 ‘갑질’…리베이트‧환자피해로 이어져
사진=박태현 기자


[쿠키뉴스] 유수인 기자 = 의료기기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병원의 ‘갑질’ 행태가 불공정거래를 야기해 공급업체는 물론 환자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의료기관이 ‘특수관계 의료기기 공급사(간납사)’라는 게이트 키퍼(gate keeper)를 관행적으로 만들어 놓음으로써 시장 왜곡을 유발해 왔고, 이로 인해 리베이트, 저가의 중국산 제품 납품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8일 서정숙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민의힘 의원은 “간납사 문제로 대표되는 의료기기 시장의 불공정거래행위와 그로 인한 시장 왜곡은 우리나라의 의료기기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결국에는 의료기기 산업발전을 저해하고 종국에는 국민건강까지 위험하게 할 소지가 크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서 의원은 ▲병원 특수관계인의 간납사 운영 금지 ▲대금 지급 결제 기한 강제 규정 마련 ▲ ‘의료기기 공급 보고 책임 전가’ 처벌 등의 내용을 담은 의료기기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상태다. 해당 법안은 의료기관과 특수관계인 간납사간의 거래를 규제해 1차 의료기기 공급업자에게 갑질을 할 수 있는 왜곡된 시장 구조를 근본적으로 정상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서 의원은 설명했다. 

◇간납사 ‘납품업체↔병원’ 통관세 받고 세금계산서 발행

서 의원과 의료기 업계에 따르면, 대부분의 병원들은 의료기기 구매시 대행 업체인 ‘간납사’를 이용하고 있다. 때문에 국내에서는 공급업체(의료기기업체)가 의료기관에 직판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대개 공급업체→대리점→간납사→의료기관 순으로 유통된다. 

간납사는 쉽게 말해 병원의 물품구매 업무를 대행하면서 통행세 등의 수수료를 징수하고 세금 계산서를 발행하는 역할을 한다. 공급업체로부터 물건을 받아 병원에 영업‧판매하는 ‘대리점’과 미국의 구매 대행 회사인 ‘GPO’(Group Purchasing Organization)와 달리 물품구매에 있어 직접적 영향력이 없고 재고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 참고로 GPO는 병원 대신 물품을 대량 매입해 가격을 절감하고 이를 통해 병원에게 일정액의 수수료를 받는다. 

A 의료기 업체 관계자는 “간납사는 물품구매에 대한 결정권이 없고 아무런 책임 없이 톨게이트비용만 받는다. 구매결정권은 병원이 가지고 있다”며 “대신 병원 안에 원내물류 창고를 두고 임대료를 내며 병원에서 해야 할 일을 대신하고 있다. 그런데 병원에서 임대료를 높게 받다 보니 간납사도 납품업체로부터 수수료를 높게 받는다. 평균적으로 (의료기기에 적용되는)건강보험 상한가의 6~10%정도”라고 설명했다. 

◇병원‧간납사, 공급업체에 대금결제 지연‧할인 강요 

게다가 간납사가 병원설립재단과 ‘특수 관계’인 경우가 많고, 이때 독점적 지위를 형성해 대금결제 날짜를 늦추고 할인을 강요하는 등 ‘갑질’ 횡포를 부리고 있다.


의료기기 구매 병원의 ‘갑질’…리베이트‧환자피해로 이어져
서정숙 의원실 2020년 국정감사 자료

서 의원이 제공한 자료를 보면, 서울대병원이 이용하는 간납업체는 서울대병원이 지분을 갖고 있는 특수 관계였고, 9개 성모병원은 설립자인 ‘카톨릭학원’이 직접 운영하는 오페라살루따리스(舊 평화드림)이라는 간납사를 이용하고 있었다. 연세대학교 재단의 3개 세브란스 병원이 이용하는 간납업체 또한 학교법인이 소유한 업체였다. 5개 성심병원의 소유자인 일송학원 역시 이사장 동생이 최대 주주로 있는 ‘소화’라는 간납 업체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A업체 관계자는 “병원에서 간납사에게 돈을 주면 간납사가 대금을 결제한다. 그나마 상급종합병원급은 한 달 안에 대금을 지급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보다 규모가 작은 병원은 기본 6개월이고 보통 11~12개월간 지급해야 할 돈을 주지 않는다”면서 “제주도 소재 병원은 18개월짜리 어음을 끊어주고, 서울 동대문구 소재 병원은 소위 ‘카드깡’을 하며 수십억원에 대한 이자놀이를 하고 있다. 그 이자를 간납사에게 전가하고 간납사는 그 손실을 공급(납품)업체로부터 메운다”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간납사가 6% 할인 가격으로 물품을 받았는데, 병원이 11개월 후에 돈을 줄 수 있다고 하면서 할인율을 8~10%로 해주면 대금 결제를 6~8개월 안에 맞춘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대금결제일을 늦추고 가격을 낮춘다”며 “그나마 규모가 좀 있는 납품업체나 직판을 하는 업체는 여력이 있지만 전국에 있는 몇 천개 대리점들은 모두 소상공인들이다. 받아야 할 돈이 계속 늘어나니 도산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렇게 발생한 간납사 이익은 결국 특수관계인 병원의 이익으로 돌아가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간납사들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요구하고 있는 ‘의료기기 공급 보고’ 책임도 의료기기 납품업체들에게 전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관련해 서 의원도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간납사들이 의료기기 업체에게 보고의무를 전가하면서 잘못된 보고 내용으로 인해 식약처가 행정처분을 내릴시 해당 납품업체의 지급일을 연장하겠다고 협박하고 있다”며 “법에서 부여한 의무조차 납품업체에게 전가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원가 저렴한 제품 납품, 보험재정 낭비 야기 

의료기기 구매 병원의 ‘갑질’…리베이트‧환자피해로 이어져
서정숙 의원실 제공


왜곡된 유통구조는 리베이트를 야기하고 공급(납품) 업체는 물론 환자들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다.  

서 의원이 최근 5년간 의료기기 리베이트 적발 현황을 살펴본 내용을 보면, 지난해를 제외하고는 적발 건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했으며, 적발 금액은 2017년이 228억 100만원으로 가장 크게 나타났다. 

업체들은 의료기기 보험수가가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간납사를 통해야만 의료기기가 유통되는 구조 탓에 부당한 갑질 행위를 참아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A업체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는 의료기기 제조업체와 상관없이 비슷한 재료끼리 보험코드를 엮기 때문에 가격이 같다”면서 “간납사를 통해야만 병원에 납품할 수 있으니 유통 가격을 낮춘다. 보험상한가가 1000원인 기기를 900원에 납품하면 간납사는 남은 100원으로 리베이트를 하기도 한다. 유통구조상 병원에서만 기기를 구매할 수 있으니 갑질이 들어올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이 관계자는 “무리한 할인 등으로 경영 사정이 안 좋아지다 보니 일부 업체에서는 조금 더 저렴한 제품을 찾아 납품하는 경우가 있다. 원가가 100원이면 운영비, 영업비 등을 고려해 200원에 유통해야 한다. 그런데 병원에서 100원에 납품하라고 하니 중국산, 파키스탄산 등 원가가 더 저렴한 제품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크게 보면 국민 세금이 낭비되는 구조다. 간납사에 떼어주던 할인율을 없애고 그 돈으로 공급 가격을 낮춰 보험재정을 아낄 수 있다”며 “일부 업체와 병원은 임상시험을 리베이트 창구로 활용하고 있는데, 여기서 발생한 의료비를 청구함으로써 국가 보험재정이 사라지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심혈관스텐트로 300케이스 스터디(임상시험)를 한다고 하면, 공급자 주도이든 병원 주도이든 연구비가 지원된다. 그러면 환자에게 시술한 그 비용에 대해 보험을 청구할 수 없는데, 그걸 청구하는 것”이라며 “업체측에서도 그렇게 해야 기기를 공급할 수 있고 병원에서도 매출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실제로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라 의료연구개발연구기관이 아닌 의료기관에서 연구 또는 시험의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의료행위 등에는 요양급여를 실시할 수 없다. 이를 막기 위해 청구시 특정내역(특정의 진료(조제)내역 및 청구내역에 대한 추가적 기술사항)에 임상연구정보서비스 등록번호(MT053)를 기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현지조사 등 사후관리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구조다. 

◇업체 피해 우려에 구체적 사례 확인 어려워

업계에서는 이같은 문제들을 인지하고 있지만 업체들이 피해를 우려해 적극 나서지 않고, 직접적으로 드러난 사례도 많지 않아 적극적 조치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관계자는 “간납사 등과 관련한 왜곡된 유통구조 문제는 이전부터 나오던 얘기이지만 워낙 구조 자체가 복잡해 쉽게 해결될 사항이 아니”라며 “대금결제 기한이나 수수료율 등을 포함해 전반적으로 정리를 하고 있다. 동향은 어느 정도 파악했지만 업체 측에서 공개하기를 꺼려하다 보니 직접적으로 드러난 케이스가 많지 않다. 사례를 좀 더 찾고 있는 중이고, 현재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복지부 관계자도 “간납사의 역할 중에 순기능도 있기 때문에 세부적인 내용들에 대해서는 검토가 필요하다. 특히 을에 위치한 업체가 신고를 하지 않아서 문제가 지속됐던 것인지, 입증이 어려워서 그랬던 것인지, 실질적으로 처벌이 어려웠던 것인지 확인이 필요하다”면서도 “건전한 의료기기 유통 구조는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서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의 입법 취지에 공감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서 의원은 “(왜곡된 유통 문제) 해결이 더딘 것은 당국의 의지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책당국의 의지란 결국 여러 정책문제들 중 무엇을 먼저 해결할지인 ‘정책 우선순위’를 통해 나타나는데, 그 우선순위가 높지 않았던 것”이라며 “하지만 이는 우리나라 보건의료정책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때문에 지난 국정감사에서도 해당 문제를 지적했고, 관련 의료기기법 개정안을 발의하게 됐다. 코로나19 감염병 사태로 인해 바이오제약산업과 의료기기 산업 발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의료기기 간납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적기”라고 말했다. 

그는 “해당 법안이 이달 임시회에서 논의될 수 있도록 적극 추진 중이며, 의료기기협회, 병원협회 등과 소통함으로써 왜곡된 시장 구조를 해소하고 우리나라 의료기기산업의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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