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박보검을 위한, 박보검에 의한 ‘서복’

기사승인 2021-04-13 07: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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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쿡리뷰] 박보검을 위한, 박보검에 의한 ‘서복’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돌아보는 소년의 눈빛이 티 없이 맑다. 무해한, 하지만 속내를 알 수 없는 눈빛. 잠시 후, 멀리서 들리는 남자의 육성에 소년은 사나운 표정으로 변한다. 소년의 이름은 서복(박보검). 선인지 악인지 알 수 없는 그는 인류 최초의 복제인간이다.

영화 ‘서복’(감독 이용주)은 배우 박보검의 이미지에 크게 기대는 작품이다. 박보검이 연기한 서복은 영생을 꿈꾸던 서인연구소 연구원들이 만들어낸 존재다. 복제인간이지만 뚜렷한 자의식을 갖고 있어 자신의 존재 가치와 쓸모를 끊임없이 묻는다. 여린 듯 강하고, 강한 듯 절박한 박보검의 얼굴은 순식간에 관객의 마음을 무장해제해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영화는 전직 정보부 요원 민기헌(공유)이 테러 위협으로부터 서복을 피신시키는 과정을 보여준다. 죽음을 앞둔 기헌은 서복을 통해 삶을 연장하고자 한다. 서복은 자신이 실험체임을 안다. 나쁜 놈들이 네게서 죽지 않는 기술을 빼앗으려 한다고, 위험하니 나와 도망가야 한다고 다그치는 기헌에게 서복은 묻는다. “민기헌 씨가 나쁜 놈이 아니란 걸 내가 어떻게 믿어요?” 서복에겐 영생 기술을 빼앗으려는 집단이나, 자신의 유전자를 이용해 죽음을 유예하려는 기헌이 크게 다르지 않다. 둘 다 서복을 수단으로 보고 있어서다.

[쿡리뷰] 박보검을 위한, 박보검에 의한 ‘서복’
서복은 계속해서 묻는다. “죽는 기분이 어때요?” 기헌도 열심히 답한다. “안 좋지. 상당히 안 좋아.” 서복이 다시 묻는다. “그럼 사는 건 좋았어요?” 기헌은 고민에 빠진다. 자신은 살고 싶은 걸까, 아니면 그저 죽는 게 무서운 걸까. 영화는 인간 존엄성과 인공인간 윤리문제를 경유해 마침내 마지막 질문으로 관객을 데려다 놓는다.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그 두려움으로부터 우리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을까.

영화 ‘건축학개론’ 이후 9년 만에 신작을 내놓은 이용주 감독은 ‘서복’에서 삶과 죽음에 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관철하려는 의지가 엿보이지만, 대부분 인물에서 기시감이 짙게 느껴지는 점이 아쉽다. 배우 장영남이 연기한 임세은은 초반 시니컬한 매력으로 존재감을 드러내지만, 비밀이 밝혀진 후반부터 급격히 매력을 잃는다. 중년 여성 캐릭터의 동기와 욕망을 가족 바깥에서 찾을 수는 없을까.

‘서복’은 극장과 티빙(OTT)에서 동시 개봉하는 첫 영화이기도 하다. 당초 지난해 연말 성수기를 겨냥해 개봉을 준비해왔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3차 대유행이 수그러들지 않자 결국 온·오프라인 동시 공개를 택했다. 마지막 전투가 거대한 스케일을 자랑하지만, 관객을 영화관으로 부를 만한 장면은 따로 있다. 극 초반 나오는 기헌의 환상과 바닷가에서 서복이 기헌을 위로하는 장면이다. 짧지만 압도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15일 개봉. 15세 관람가.

wild37@kukinews.com / 사진=CJ ENM 제공.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