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준의 한의학 이야기] 미나리

박용준 (묵림한의원 원장, 대전충남생명의숲 운영위원)

입력 2021-04-16 18: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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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준의 한의학 이야기] 미나리
박용준 원장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라는 대사가 인상적인 화제의 영화 '미나리'. 거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미나리의 강인한 생명력과 적응력을, 우리 한국인 이민자들의 삶의 모습을 담은 이야기다. "미나리는 사철이요, 장다리는 한철이라". 덕이 높고 어진 인현왕후를 미나리에, 악독한 장희빈을 장다리에 빗대어 드라마에 나왔던 노랫가락이다.

이렇게 미나리는 과거는 물론이고, 현재에도 강인한 생명력과 덕을 담은 식물로 사랑받고 있다. 물기가 많은 곳이면 어디서든 잘 자라는 미나리는 배추가 귀했던 조선 시대에는 봄이 되면 미나리로 김치를 담가 먹었다. 그래서 예전에는 집집마다 미나리를 많이 키웠다. 미나리는 세 가지 덕을 가진 식물로도 유명한데 이를 근채삼덕(芹菜三德)이라 부른다.

근채삼덕(芹菜三德)이란 진흙땅에서도 싱싱하게 잘 자라는 자세, 음지에서도 잘 자라는 강인함, 그리고 가뭄이 와도 그 푸르름을 잃지 않고 이겨내는 자세, 이 세 가지를 일컫는다. 이런 근채삼덕의 자세는 공부를 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나타내기도 했다. 시경(詩經)에는 ‘즐거워라 반궁(泮宮)의 물가에서 미나리를 캐노라’라는 문장이 있는데, 반궁(泮宮)이란 고대 중국의 최상위 교육기관인 태학(太學)을 의미한다.

조선시대에는 성균관에서 공부하던 시절을 ‘반궁에서 미나리 캐던 시절’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미나리를 뜯는다’는 말인 채근(菜芹)에는 ‘인재를 발굴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렇게 거친 환경에서도 꿋꿋이 잘 자라는 강인한 생명력과 그 안에 담긴 세 가지 덕, 이를 통해 표상하는 품격 높은 미나리는 우리네 삶에서 오랜 세월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박용준의 한의학 이야기] 미나리

그래서 미나리는 일반 민중의 음식뿐 아니라, 궁중 음식으로도 널리 사용되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맛있고 풍부한 향과 맛의 미나리 자체뿐 아니라, 미나리가 충성심을 나타내는 채소이기 때문이었다. ‘미나리를 바치는 정성’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이를 헌근(獻芹)이라 하는데, 예의가 바른 겸양의 자세로 윗사람들에게 선물을 올리는 모습을 헌근(獻芹)이라 한다.

미나리는 물가에 나는 여러해살이풀로 향긋한 향이 나는 잎과 줄기를 약재로도 사용한다. 미나리는 한약명은 ‘수근(水芹)’ 또는 ‘수영(水英)’이라 한다. 달면서도 매운맛과, 서늘한 성질은 갈증을 없애고 인체의 불필요한 열을 잘 내려준다. 그리고 물고기의 비린내를 잡아주며 해독하는 효능이 있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갈증을 풀어 주고 머리를 맑게 하며, 술로 인한 독을 제거하여, 음주 후 두통이나 구토에 효과적”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미나리에는 몸에 좋은 무기질과 풍부한 섬유질, 그리고 각종 비타민이 함유되어 있다. 또한, 대표적인 알칼리성 식품으로 혈액의 산성화를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노화와 암의 원인이 되는 활성 산소의 생성을 억제하는 항산화 항암 효과가 뛰어나다. 몸속에 쌓인 독소와 노폐물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해독작용이 강하고, 간을 보호하는 효과가 커서 다양하게 여러 음식과 약재 처방으로 이용된다.

오랜 세월을 우리 민족과 함께 한 미나리. 이런 미나리의 품격은 앞에서 언급한 영화 ‘미나리’에 투영되어 있다. 가족들과 함께 영화 ‘미나리’를 감상하며, 미나리로 만든 다양한 요리를 함께 즐겨보는 풍경이 기대되는 봄날이다.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