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음주 질주에 피해자 사지마비…'윤창호법'은 없었다

기사승인 2021-07-19 06:2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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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음주 질주에 피해자 사지마비…'윤창호법'은 없었다
음주운전 사고 후 A씨는 사지 마비, 인지 저하, 언어 장애를 겪고 있다. 심부정맥 혈전증 및 폐색전증으로 입원 치료 중이다. 간병인 도움 없이는 거동하기 힘들다. A씨 가족 제공.
[쿠키뉴스] 정진용 기자 = “가족도 못 알아보는 언니. 혼자 생활할 날이 올까요. 의사는 장담을 못 한대요. 가해자는 1년6개월을 받았어요. 법은 왜 있나요”

# 지난해 11월10일 새벽 5시20분 A씨(46·여)는 경기 용인 수지구 죽전패션타운 앞 횡단보도를 보행신호에 건너던 중 신호 위반 해 돌진한 오토바이에 충돌했다. 20대 가해자 B씨는 당시 무면허에 혈중알코올농도 0.083%(운전면허 취소수준)인 상태였다. A씨는 이 사고로 뇌손상 및 다발성 골절을 입고 뇌수술을 받았다. 전치 12주 이상 진단이 나왔다. 지난달 17일 1심 재판부가 B씨에 선고한 형량은 징역 1년6개월. 초범인 점, 피해자 측에 일정 금액을 건넨 점이 양형 사유로 언급됐다. 양측은 항소했다.


윤창호법 시행됐지만…모든 음주운전 사건에 적용되는 건 아냐

음주운전 가해자들이 여전히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있다. 형량을 높인 이른바 ‘제1 윤창호법’이 아닌 기존의 교통사고처리특례법(교특법)이 적용돼서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즉 제1 윤창호법은 지난 2018년 12월18일부터 시행됐다. 음주운전자에 대한 처벌이 관대한 기존 법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제2 윤창호법’(개정 도로교통법)은 음주단속 기준을 강화하고 음주 운전으로 인한 면허 취소 결격 기간을 연장하는 내용으로 지난 2019년 6월25일부터 시행됐다.

모든 음주운전 사고에 제1 윤창호법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현행법상 음주운전 사건이 일어날 경우 처벌할 수 있는 법은 2가지다. 제1윤창호법을 적용하거나 교특법 및 도로교통법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어떤 법으로 기소됐느냐에 따라 형량 차이가 크다. 제1 윤창호법상 음주운전 상해사고 법정형은 1~15년 징역 또는 1000만원~3000만원 이하 벌금이다. 사망사고 법정형은 무기 또는 3년 이상 징역이다. 반면 교특법상으로는 상해, 사망사고 모두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그친다.
[단독] 음주 질주에 피해자 사지마비…'윤창호법'은 없었다
쿠키뉴스DB.

‘정상적 운전이 곤란한 상태’여야 한다는 법원…난감한 수사기관


문제는 제1 윤창호법 적용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제1 윤창호법 적용 기준은 ‘운전자가 음주 영향으로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지’ 여부다. 수사기관과 법원의 자의적인 해석이 개입될 여지가 크다.

법원은 단순히 술을 마시고 운전한 것만으로는 제1 윤창호법을 적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17일 법원이 음주 상태에서 차량을 몰다 사망사고를 낸 운전자에게 윤창호법 무죄 판결을 내려 논란이 됐다. 운전자는 사고 당시 혈중알코올농도 0.120%에 두 번이나 음주운전으로 벌금형을 받은 전과가 있었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언행 부정확, 보행 비틀거림, 혈색 붉음’이라고 된 경찰 정황 보고서만으로 피고인의 주의 능력·반응속도·운동능력이 상당히 저하된 상태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피고인에 대한 음주 측정 사진으로 보면 눈빛이 비교적 선명하다”며 “다음 날 이뤄진 조사에서도 사고 경위를 비교적 상세히 기억했다”고 부연했다.

법원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니 수사기관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검찰은 제1 윤창호법으로 기소할 경우 피의자의 음주사실에 더해 정상 운전이 불가능했다는 점까지 입증해야 한다. 부담이 가중되는 셈이다. 자칫 패소할 수도 있다. 때문에 보다 안전하고 쉬운 교특법 위반으로 기소한다는 설명이다.

[단독] 음주 질주에 피해자 사지마비…'윤창호법'은 없었다
A씨 진단서 내용.

“윤창호법 있는데 왜 솜방망이 처벌?” 눈물짓는 피해자 가족


가족과 떨어져 홀로 지내며 새벽 5시에 일어나 일터로 나가던 A씨였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사태 이후, 2년 가까이 타지역에 사는 가족들을 만나지 못했다. 일하는 병원에 폐를 끼칠까봐 전화로만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았다. 그러던 A씨는 하루아침에 간병인 없이는 일상 생활이 어려운 상태가 됐다. 가족도 무너져 내렸다. 간병비라는 무거운 짐도 더해졌다. 한 해 6000만원에 달한다.

A씨 가족은 제1 윤창호법의 ‘고무줄 잣대’가 제정 취지를 빛바래게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A씨 동생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언니는 사지 마비, 인지 저하, 언어 장애를 겪고 있다. 숨만 간신히 쉬고 있을 뿐 식물인간 같은 상황”이라며 “피해자와 가족은 정신적, 신체적 피해를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한다. 가해자는 징역 1년6개월이 나왔다. 피해자만 죽으라는 게 이 나라 법인가”라고 토로했다. 또 “윤창호법 적용 기준이 무엇인지 알고싶다”며 “언니 한 명이 아니라 수많은 음주운전 피해자와 그 가족을 위해서라도 법 허점을 메워야 한다”고 울먹였다. 가족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글을 올렸다.


법조계 “객관적 기준 마련해야”…교특법 손질 의견도


법조계에서도 법 보완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법률사무소 라미의 이희범 대표변호사는 “법률가들도 음주운전 사고 발생시 어떤 혐의로 기소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혈중알코올농도 0.1% 이상이면 제1 윤창호법을 예상할 수 있지만 이것마저 확실하지 않다”며 “수사기관도 국민 공분을 샀거나 널리 알려진 사건은 제1 윤창호법을, 단순 사건에는 교특법을 적용시키는 등 주관적으로 운용되는 측면이 분명 있다”고 짚었다.

이 변호사는 “비슷한 사고를 두고도 적용되는 죄명이 다르다면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며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에 대한 정량적이고 통일된 기준을 법으로 정하는 등 제도적 손질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윤해성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수사기관의 행정 편의주의가 작용한 측면이 있다. 제1 윤창호법은 수사기관이 여러 가지를 입증해야 하는 등 책임이 따른다. 반면 교특법은 법원이 인정하지 않을 위험이 적다. 지난 60년간 해온 관행, 편리함을 무시할 수 없다”면서 “교특법을 개정하거나 폐지하지 않는 이상 제1 윤창호법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jjy4791@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