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소수 대란 ‘비싼 수업료 낸’ 정부, 경청의 자세 갖춰야 [기자수첩]

기사승인 2021-11-12 06: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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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소수 대란 ‘비싼 수업료 낸’ 정부, 경청의 자세 갖춰야 [기자수첩]
“사실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죠. 선뜻 말하기 어렵습니다”

기자가 만났던 기업 관계자 대부분이 하는 말이다. 당시 현안이 되는 경제 정책과 관련한 질문을 던지면 실제로 수용하기 어렵지만 기업들은 이를 감수하고 정부의 방침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아쉬움이 담긴 대답이 돌아오기 일쑤다. 정부의 방침에 어긋나는 발언은 결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경제활동을 통해 이윤을 내는 기업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사업을 영위하는 각국의 법과 제도 그리고 정부 정책을 따르는 게 당연한 순리긴 하다. 하지만 산업계의 어려운 사정조차 맘 편히 얘기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기업들은 정부의 태도에 더욱 주목한다. 많은 기업 관계자들은 정부가 기업의 의견은 경청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어느 정부가 들어서든 기업인들과의 소통을 강조하면서 국가 경제를 이끌어가는 주역이라고 치켜세웠지만, 정작 경제계의 요구와 목소리에는 인색하다는 의미다.

대통령 취임 후 기업인들을 청와대로 불러 대화하는 모습은 연례행사가 됐다. 기업인들은 이 자리에서 경제계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아울러 정부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후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오히려, 기업에게 일자리 확충과 시설 투자 등의 묵직한 과제가 주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이러한 정부의 태도에도 기업들은 자세를 낮출 수밖에 없다. 혹시 정부 방침에 어긋나는 말을 하면 불이익을 받을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은 이제 당연하게 여긴다. 경제 5단체나 업계를 대표하는 협회 등을 통해 기업들의 불만과 의견을 피력하기도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강도를 많이 낮춘 주장이 대부분이다.

최근 정부가 확정한 탄소중립 감축안 ‘2030 NDC’ 도출과정도 비슷한 대목이다. 경제단체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정부가 제시한 시나리오대로 탄소중립을 실현하기는 어렵다고 입장을 냈다 하지만, 정부는 산업계의 반응에는 주목하지 않았다. 

생존의 문제로 떠오른 탄소중립 현안에 대해 기업들은 크게 공감하고 관련된 행보에 적극적이다. 다만, 제조업 중심의 국내 산업 현장에 적용하기까지는 다소의 시일이 필요하기에 탄소중립 감축 속도를 조절해달라는 요구를 했다.

정부는 경청하는 척만 했다. 정부는 산업계의 목소리를 듣겠다면서 여러 차례 공청회를 열었지만, 결국은 기업의 요구는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2030년에는 2018년 탄소배출량의 40%를 감축하겠단 목표를 상향 설정했다.

최근 발생한 요소수 대란에서도 간접적으로 정부의 일방적인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요소수는 핵심 자원이 아니고, 그 누구도 현재의 부족사태를 예측할 수 없었기에 모두 정부의 탓이라고 하기엔 어렵다. 하지만 지난 2019년 한일 무역분쟁을 겪으면서 주요 수입 품목의 특정 국가 의존도가 높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또 수많은 전문가가 ’자원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점을 되돌아볼 때 정부의 소홀하고 안일한 대처는 비판받기에 충분하다.

당시 수많은 전문가가 미래 자원의 무기화 가능성을 제기했고, 한 국가에 의존하지 않는 자원 수급 계획 수립을 요구했다.

한일 무역 갈등을 겪은 이후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020년 국내·외 자원의 합리적 개발을 위한 ‘자원개발 기본계획(2020~2029)을 확정·발표했다. 대내·외 자원 위기에 대응하고 ’자원안보‘ 실현하겠다는 차원으로 국가 계획에 최초로 ’자원안보‘ 개념이 포함됐다.

하지만, 지난해 정부 예산 심사 과정에서 자원안보의 핵심인 ‘자원안보 진단체계 시스템’ 구축 및 운영 예산 10억원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올해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도 관련 예산은 빠져있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황운하 의원은 올해 국정감사에서 “정부가 자원안보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는 증거”라면서 산업부의 태도를 질타했다.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10일 국회에 출석해 최근 국내 요소수 대란에 대해 “비싼 수업료를 냈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해 논란을 빚고 있다.  

정부가 각계의 의견을 경청했더라면 굳이 비싼 수업료를 내지 않아도 되지 않았까?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