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인 줄 알았는데”…돈·마음 모두 잃었다 [로맨스스캠의 덫①]

손희정 / 기사승인 : 2021-12-07 06: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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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스캠 기승...4년 새 사이버사기 2배 증가
채팅앱 등으로 관계 유지...신뢰 형성 후 작업 개시
수억원대 피해도...아이템 구매 유도 등 기상천외한 수법
“사실상 돈 찾는 것. 기대 말라”

① “사랑인 줄 알았는데”…돈·마음 모두 잃었다 
② 사기는 가상화폐를 타고…타깃된 2030세대
③ “썸 기간 길수록 피해 눈덩이” 
④ ‘온라인 연애 사기’ 피하는 법…이것만 명심하자

 

그래픽=이해영 디자이너

코로나19로 개인 간 대면 접촉이 줄고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로맨스스캠’을 포함한 사이버 사기도 기승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사이버 사기 발생은 ▲2017년 9만2636건 ▲2018년 11만2000건 ▲2019년 13만6074건 ▲2020년 17만4328건이다. 최근 4년 새 2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로맨스스캠은 연애를 뜻하는 ‘로맨스’와 신용사기를 뜻하는 ‘스캠’의 합성어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호감을 표시하며 신뢰를 형성한 후 금전을 요구하는 사기 수법을 말한다. 실제 쿠키뉴스는 코로나19 기간 중 로맨스스캠으로 금전적 피해를 봤다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들과 나눈 인터뷰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내러티브(이야기)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그래픽=이희정 디자이너

반복되는 집콕 생활에 활력이 생겼다

재택근무와 저녁 약속 없는 삶, 하루에 한마디도 안하는 날도 있었다. 누군가와 일상적인 ‘대화’가 그리웠던 은영(20대·가명)에게 어느 날 메시지가 왔다. 그는 자신을 중국계 한국인이라고 소개했다.

“안녕, 나랑 친구 할래?”

얼마 전, 친구 따라 무심결에 설치했던 데이팅앱으로 온 쪽지였다. 은영은 연애보다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얘기 나누다가 안 맞으면 차단하면 되지’ 고민 끝에 답을 보냈다.

“잘 잤어? 오늘 날씨 진짜 좋아”
“점심 먹었어? 난 오늘 이거 먹었어. 다음에 너도 먹어봐”
“에휴ㅠㅠ 힘들었겠다. 내일은 괜찮을 거야”

하나둘 주고받던 채팅이 하루에 60건을 넘었다. 사소한 얘기부터 부모에게 말 못 한 고민까지 밤새 털어놨다. 연락을 주고받은 지 두 달 정도 됐을 무렵, 그는 비행기를 타는 사진과 함께 홍콩으로 출장 간다고 했다. 그 곳에서 2주간의 격리 생활로 힘들다고도 했다.

피해자 제공

“예전에 심심해서 가입한 채팅 사이트에서 3200만원을 충전했거든. 근데 남성 회원은 환전이 안 된대. 유효기간이 내일까지야”

어디서 들었던 사기 수법에 은영은 자신보다 그가 걱정됐다.

“사기당한 것 같은데? 소비자 공정위원회에 신고해 봐. 이런 거에 걸리다니 내가 다 속상하네”

이런 은영에게 그는 포인트를 선물해 줄 테니 환전해 달라며 링크를 보내왔다. 그를 믿은 은영은 회원가입 후 포인트를 받기 위해 50만원 상당의 ‘다이아 등급’ 아이템을 샀다. 업체는 환전하면 아이템 구매 비용도 돌려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처음엔 그를 도와주고 싶어서, 나중엔 아이템을 구매한 내 돈을 찾기 위해 환전에 집착했다. 환전을 위해 관련 아이템을 구매하다 보니 1000만원까지 지불했다. 이후 그와 대화가 끊겼다.

처음엔 사기라는 걸 믿고 싶지 않았다. 얼마 후 로맨스스캠 피해자 커뮤니티에서 그의 사진을 발견했다. 얼굴은 같지만 이름도 나이도 다른 사람이었다.

자괴감이 들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사기를 당한 자신이 바보 같았다. 존재가치가 없다고 생각해 극단적 선택의 충동도 느꼈다. 수치심과 분노, 무기력함이 시시각각 찾아왔다. 가족과 주변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비난받을까 두려웠다.


‘바보’라서 당한 게 아니다

은영은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왜 당한 거예요?” 어수룩해서 당한 거 아니냐는 경찰의 질문에 다시 자괴감이 들었다. 은영은 경찰학 전공자다. 범죄 심리를 공부했고 법도 배웠다. 그러나 학력을 밝힐 수 없다.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 왜’라는 질문이 나올 게 빤하기 때문이다.

경찰은 진범을 잡기 힘들다고 선을 그었다. 오히려 로맨스스캠이 뭐냐고 물어보고, 진술서를 작성하는 와중에 ‘이건 사이버 수사대로 가야 하나’ 등 우왕좌왕했다. 수사에 진척이 있으면 연락을 주겠다던 경찰은 한 달째 연락이 없다.

현재 은영은 직접 국선 변호사를 선임해 그가 입금한 대포통장 소유주에게 소송을 걸었다. 수사관이 바뀔 때마다 처음부터 설명하는 것에 진저리가 났기 때문이다. 첫 번째 수사관은 은영을 바보 취급 했다. 두 번째 수사관은 대포통장 주인을 찾았으나 곧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다.


기상천외 사기 수법…당할 수밖에

은영의 사례에서 보듯 로맨스스캠의 사기 수법은 기상천외하다. ▲가짜 가상화폐 거래소를 통해 투자 권유 ▲보석, 현금 등 고가의 물건을 한국으로 보낸 후 세관비 요구 ▲해외 보석 학자라고 속인 뒤 채굴기계 수리비 요구 등이다.

피해액은 최소 몇 십만원부터 최대 수억원대 이른다. 기자가 만났던 피해자 중에는 2억2000만원을 피해본 사람도 있었다. 개인 재산뿐만 아니라 부모 등 지인에게 돈을 빌린 경우도 있다.

은영과 같은 피해자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경찰, 변호사 등 전문가들의 답변은 한결같다.

“기존 보이스피싱처럼 피해를 구제할 수 있는 법이 없다. 당장 해당 계좌의 출금을 금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해외 IP주소를 알아내도 현지 공조가 필요하다. 제도권에선 할 수 있는 게 없다. 사실상 돈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말라”

손희정 기자 sonhj122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