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인데 숏컷이네요? [쿠키청년기자단]

기사승인 2021-12-27 06: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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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인데 숏컷이네요? [쿠키청년기자단]
이미지=픽사베이

취업 준비는 자기 계발이 끝없이 이어지는 지난한 과정이다. 학점, 영어 성적, 자격증, 대외활동, 자기소개서, 인턴 경험을 위한 서류 준비, 포트폴리오 등 챙길 것이 많다. 들인 노력과는 상관없이 사소한 실수가 탈락을 결정짓기도 한다. 이런 불안감 역시 취준생의 몫이다. 여기 조금 다른, 여성 취업준비생들이 공유하는 기묘한 불안이 있다.

“여자애가 취업하려면 머리카락을 길러야지” 취업준비생 A씨, 그의 부모님은 말했다. 취업 증명사진, 면접 이미지를 생각해 머리 길이를 길게 유지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짧은 머리, 즉 ‘숏컷’은 일반적으로 ‘여성스럽지 않다’는 고정관념과 연결된다. 여성 취업준비생에게 숏컷의 의미는 더욱 섬뜩하다. 헤어스타일이 사회 진출이라는 틈을 비집고 삶에 개입하고, 부정적인 영향력을 끼친다. 20대 여성 취업준비생은 21세기 세상에서 머리카락 길이로 고민해야 한다.

여성이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숏컷을 했다는 이유로 감당해야 했던 문제들을 들어봤다. 지난달 18일부터 같은 달 27일까지, 온라인 설문을 통해 익명으로 수집한 20대 여성 취업준비생들의 이야기다.

“인턴이나 취업 준비를 할 때 머리카락 길이로 압박감을 느꼈다.”

“숏컷을 한 친구에게 주변 사람들이 ‘왜 숏컷으로 머리를 잘랐냐’는
질문을 많이 해서피곤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머리가 짧아서 면접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
이공계 계열이라 그런지 취업 준비 과정에서 미묘한 불친절함을 느낄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본격적인 취업 준비에 들어가니 숏컷을 하기 쉽지 않다.
왜 숏컷을 했는지 사람들에게 꾸준히 해명해야 하는 건 기본이다.
숏컷 한 여성을 사상검증 차원에서 골라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부 사람들을 보면서,
숏컷이 취업에 심각한 마이너스 요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숏컷 불안감, 여성의 과민반응이라고?

20대 여성 취업준비생에게 숏컷은 상당한 부담이다. 단순히 외모가 어떻게 보일지를 넘어서 일을 구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곤란함, 면접에서 부정적인 인상을 주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여성 취업준비생에게 내재되어 있다.

고민의 답은 보통 정해져 있다. “면접 가보면 그런 걸로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네가 너무 예민한 거다”, “피해의식 있냐” 그러나 여성 취업준비생의 불안이 막연한 피해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취재에 응한 20대 여성 취업준비생들은 경험담을 통해 숏컷이 취업시장에서는 검열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공유하고 있었다.

“두발 규정이 따로 있지 않은 회사이었음에도
면접에서 ‘머리가 왜 그렇게 짧냐’는 질문을 들은 지인이 있다.
불필요하고 사적인 질문을 받은 지인은 매우 당황스러웠고,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게다가 ‘왜 머리가 짧냐’는 질문이 상당히 부정적인 어조였기 때문에
숏컷 때문에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전했다.”

“서비스직 경우 긴 머리에 대한 압박이 커진다.
호텔 뷔페에서 파견직으로 일했다.
당시 숏컷이나 짧은 머리를 한 여성을 잘 쓰지 않으려고 해서 부담이 컸다.”


숏컷을 검열하는 사회가 원하는 것

숏컷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여성의 사회진출 및 취업 준비를 가로막는 벽이 됐다. 이런 분위기는 나아가 행동, 스타일, 가치관을 재단하고 더해 여성이 스스로를 검열하게 한다. 어떤 숏컷은 허용될 수 있고, 어떤 숏컷은 허용될 수 없는지를 나누어 여성을 남성 기준의 잣대로 평가하는 상황도 생긴다.

“윗머리에 볼륨을 주거나 끝이 가지런히 정돈된 숏컷이 아닌
투 블럭(옆머리와 뒷머리를 짧게 치는 헤어스타일)에 대한 시선은 더욱 부정적이다.
여성에게 ‘단정해 보이는 머리’를 요구하면서도
숏컷처럼 짧은 머리는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실정이다.”

“여성의 머리가 짧으면 그건 면접에서의 예의가 아니라고 하는 이상한 논리가 있는데
이러한 인식 기저에는 여성 혐오가 있다.”

숏컷을 ‘페미니즘’과 연결시키는 사상검증도 부지기수다. 숏컷에 대한 불안감은 여성의 단순 피해의식이 아니라 성차별적 구조에서 기인하는 공포감이다.

“20~30대 남자들이 숏컷에 편한 복장 여성을 발견하고
‘페미인가 보다’라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이미 경력이 쌓인 40대 여성 근로자에게 숏컷은 하나의 스타일로 인식되는 것 같다.
그러나 2030 여성들, 특히 사회 초년생의 경우 숏컷에 메이크업을 하지 않은 모습이면
바로 페미니즘과 연결 짓는 경향이 있다.”

“숏컷을 하면 페미니스트냐는 질문을 듣기 십상이다.
이 상황에서는 대체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는 항변 아닌 항변을 강요당한다.
숏컷을 했다는 이유로 가치관을 재단 당하거나 강제로 드러내야만 한다면 상당히 곤란하다.”

이런 시선이 만연하다 보니 숏컷을 한 여성 취업준비생은 웃을 수 없는 자기만의 생존전략을 만든다. 한 여성 취업준비생은 ‘여성차별’이 아니라 ‘남녀갈등’이라는 중립적 단어를 사용해서 자신에게 돌아올 화살을 피하는 전략을 고민한다고 했다. 남녀갈등이 심하고 페미니즘은 극단적인 사상이라는 답을 들려주어 남성 중심 조직문화의 사상검증을 피해 가는 것이 여성 취업준비생이 놓인 현실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양궁 국가대표의 헤어스타일을 문제 삼고 검열하며 대외적인 비판을 들은 민망한 전례가 있다. 숏컷을 하고 말고는 여성의 선택이며 고작 머리카락으로 누군가의 커리어나 가치관을 재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는 설명이 필요 없는 영역이다.

홍지희 객원기자 kukinews@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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