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문화] “전남 곡성군 서봉리 박판례(101) 할머니는 고관절 골절상을 당해 진찰을 위해 누우시라고 말씀 드렸더니 ‘아니, 버르장머리 없이 누구더러 누우라고 해, 죽을 때나 눕지’라고 야단치시는 거예요. 그분은 매일 매일의 삶을 부지런하고 당당하게 살아오셨기에 장수하신 것 같아요.”
‘장수과학자’ 박상철(60) 서울대 의과대 교수가 2001년부터 전국을 돌며 직접 만난 장수인들의 인터뷰를 담아 ‘100세인 이야기’(샘터)를 30일 출간했다. 이 책에는 그가 만난 900여명의 장수인들 가운데 100여명의 파란만장한 삶이 소개돼 있다.
경북 문경시 신전마을 고삼석(98)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중국에서 지낸 경험으로 중국어에 능통하다. 그는 “마지막 바람이라면 중국과 소련을 거쳐 구라파까지 한 바퀴 휙 돌고 싶어”라고 기염을 토했다. 전북 순창군 허갑돌(가명·100) 할아버지의 80세 부인은 “요즘도 같이 주무시느냐”는 물음에 “영감이 하도 건드려서 손주 방에서 자”라고 답했다.
장수인들의 평균 출산 자녀수는 5.4명이었다. 그러나 생존 자녀는 2.9명으로 조사돼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자녀를 먼저 떠나보낸 아픔을 갖고 있었다. 경남 거창 정규상(104) 할아버지는 스물다섯에 과부가 된 며느리와 함께 산다. 시아버지도 54세에 아내를 잃었지만 며느리가 불쌍해서 재취를 얻지 않았고, 며느리는 시아버지가 불쌍해서 재가를 포기했다.
전남 구례군 한 할머니(104)는 열심히 교회에 다니면서 주기도문과 마태복음을 줄줄 외운다. 교회에 나가지 않는 아들보다 교회에 다니는 딸이 더 좋단다. 전국 최고령자인 서울 청운동 최애기(109) 할머니는 건강검진을 하려고 청진기를 가슴에 대자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나 언제나 죽겄어?”라고 말해 주위를 웃음 짓게 했다.
17세에 소록도에 들어와 85년째 살고 있는 정동수(가명·103) 할아버지는 국내 최장수 한센병 환우다. 절망적이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하나님이 계시는데 무슨 걱정이 있겠어?”라고 답한다. 가족과 이웃, 사회로부터 박대를 당했어도 신앙으로 견뎌낸 것이다.
박 교수는 장수의 비결로 가족의 사랑과 헌신, 성실하고 즐거운 삶, 지속적인 운동, 적당한 식사와 음주 등을 꼽았다.
그는 “100세인의 대부분은 19세기 말에 태어나 일제와 한국전쟁을 겪은 분들로 전통적 사고와 관습이 변화하는 혼란을 슬기롭게 이겨낸 역사의 증인이자 생존의 영웅들”이라고 평가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광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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