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문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어요.”

발레리노 김용걸(36)은 지난 9년간의 프랑스 파리 생활을 이렇게 정리했다. 국립발레단의 스타에서 27세의 늦은 나이에 오디션을 통해 파리오페라 발레단에 입단한 그는 군무부터 시작해 2005년에는 결국 솔리스트 자리까지 올랐다. 그 과정이 남들에게는 마치 한 편의 신데렐라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정작 본인에게는 ‘기다림, 질투, 조바심, 포기, 희생, 고통’이란 단어가 먼저 떠오를 만큼 모진 시간이었음을 털어놨다. 오는 11∼12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김용걸과 친구들’을 들고 국내로 돌아오는 그와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희망보다는 절망이라는 것을 더 많이 만나야 했어요. 하지만 그 절망의 끝에서 간혹 보이는 작은 희망의 불빛이 그렇게 달콤하고 밝을 수 없더라고요. 그냥 주어지지는 않는다는 걸 알게 되니 저한테 일어나는 모든 걸 안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좀 나아지더군요.”

오로지 땀과 노력으로 올라온 자리지만 그는 이제 떠날 때가 됐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후배들과 무대에서 호흡하기 위해 완전 귀국을 결정했다. 김용걸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교수로 임용돼 후배들을 지도할 예정이다. 그는 “파리 생활을 접고 한국에 간다고 하니 은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거 같다”고 운을 뗀 뒤 “몸이 허락할 때까지 학생들과 함께 뛰며 얘기하고 공유하는 것이 목적이다. 고3 때 저와 함께 뛰며 가르친 문영철(한양대 무용과) 교수님의 수업을 잊을 수 없다. 선생님보다 더 잘 해보려는 욕구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외국 콩쿠르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후배들에게는 “무대에서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때론 자만해도 좋을 거 같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면서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헤쳐 나가야 하는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도록 나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귀국하자마자 당장 2개의 공연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먼저 선보이는 ‘김용걸과 친구들’은 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무용수를 포함해 40여명이 함께 출연하는 갈라쇼 형태의 공연이다. 김용걸은 예술감독으로 나서 출연진을 직접 골랐다.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강효정, 미국 컴플렉션스발레단의 조주환, 영국 러셀 말리판트 무용단의 김경신, 미국 트리샤 브라운무용단의 정현진, 싱가포르 댄스씨어터의 박나리 등은 해외무대 진출 후 처음 고국에서 자신의 춤을 선보인다. 볼쇼이발레단의 고참 단원인 배주윤도 참여해 김용걸과 호흡을 맞춘다. 출연진의 절반 이상이 남성 무용수인 것도 눈에 띄는 점. 그는 작품 선정과 관련해 “파리오페라 발레단을 대표하는 작품이자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클래식부터 현대 발레까지 골고루 선정했다”고 말했다.

9월 10∼13일에는 차이코프스키의 일생을 그린 ‘차이코프스키’를 국립발레단과 함께 공연한다. 그는 “위대한 한 음악가의 일생을 그리게 될 공연에 출연 제안을 받게 돼 무척이나 긴장된다”면서 “언제나 그랬듯이 최선을 다해 잊을 수 없는 멋진 작품으로 관객들에게 선사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준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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