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연예] 전화박스에서 뚜벅뚜벅 걸어나오며 자신은 ‘900세’라고 소개하는 이 남자. 시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외계의 악당을 물리치는 그는 제임스 본드도 아니고 슈퍼맨도 아니다. 영국의 드라마 ‘닥터 후(Doctor Who)’의 주인공이다.

‘닥터 후’는 타임로드(Time lord·시간여행자)인 닥터가 과거 현재 미래를 오가며 외계의 무리로부터 세계를 구하는 SF 판타지다. 1963년 영국에서 첫 방영된 후 아직도 사랑받는 최장 방영 드라마로 기네스북에 올랐으며, 드라마 속 악당의 이름인 델릭이 옥스퍼드 사전에 실린 영국의 대표적인 국민 드라마.

서울올림픽공원에서 열리는 ‘서울드라마어워즈’ 참석차 한국에 온 ‘닥터 후’ 제작진을 11일 만났다. ‘닥터 후’ 시즌 2·3·4를 제작한 필 콜린슨 PD는 SF라는 장르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고른 연령대의 사랑을 받는 이유에 대해 “매회 다른 장소, 새로운 사건,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모험정신이 드라마의 생명력”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드라마는 매회 새롭다. 시즌 4의 첫 에피소드인 ‘저주받은 자들의 항해’에 등장하는 타이타닉은 외계인들이 지구를 구경하려고 타고 온 우주선이라는 기발한 착상에서 시작된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모험은 흥미진진하다. 과거로 돌아가 찰스 디킨스, 셰익스피어 등 명사들을 만나 역사를 바꾸기도 한다.

콜린슨 PD는 “닥터와 동행하는 지구인 동료들을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로 설정, 시청자들이 마치 여행을 함께 하는 것처럼 느끼게 몰입도를 높였다”고 설명했다. 다소 수다스럽기는 하지만 평범한 외모의 친근한 인물을 전면에 내세워 드라마와 시청자 사이의 거리를 좁힌 것이다.

영국에서는 ‘닥터 후’가 방영되는 오후 7시만 되면 가족들이 TV 앞에 모인다고 한다. 부엌에 있던 엄마도, 방에 있던 아이도, 정원에 있던 아빠도 그 시간에는 함께한다. 콜린슨 PD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가족 사이에 대화가 늘고 유대감이 강해졌다는 편지를 많이 받았다”며 활짝 웃었다. 이어 “흔히들 시청률이 안 나오면 자극적인 소재를 찾으려는 유혹에 빠지지만 오히려 우리는 권선징악같은 명쾌한 교훈을 들려줘 전 연령대의 팬층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닥터 후’ 시즌 4는 내년 1월 BBC엔터테인먼트 채널에서 만나볼 수 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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