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정치]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을 한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온 70대 실향민 이모(75)씨가 28일 국철 수원역에서 전동차에 몸을 던져 목숨을 잃었다. 남북 이산가족 1차 상봉 마지막날 행사가 열리던 날이었다.
이씨의 큰아들은 경찰 조사에서 "6·25전쟁 때 부모와 형제를 북에 두고 홀로 남한으로 내려오신 아버지가 추석 이산가족 상봉자에 포함되지 않아 크게 상심하셨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면서도 "나도 한번 상봉해봤으면 좋겠는데…"라며 매우 애석해했다고 한다.
이씨는 한국전쟁 때 북측 강원도 김화군 원동면에서 홀로 남한으로 내려와 육군에 입대한 후 중사로 예편한 뒤 인제군 원통에서 작은 슈퍼 등을 운영했었다. 이씨는 북측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10여년 전부터 대한적십자사에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했으나 번번이 탈락했다. 그는 월남후 결혼해 2남1녀를 뒀다.
황해도 은율이 고향인 오원식(78·서울 신길동)씨도 "북에 있는 부모 형제들과 헤어진 지 50∼60년이 지났지만 가족들을 한번이라도 만나봤으면 하는 소망을 품고 매일같이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 처럼 나이는 자꾸 들어 기력은 쇠약해지는데 상봉은 기약없이 지체되고 있는 이산가족들은 한둘이 아니다. 더욱이 이산가족이 고령이 되면서 사망자는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한나라당 임두성 의원이 대한적십자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까지 상봉을 신청한 이산가족은 12만7402명으로 이 중 3만9822명(31.3%)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사망자 수는 2052명(2006년), 4303명(2007년), 5626명(2008년)으로 급증하고 있다.
이번 상봉을 빼고 지금까지 상봉의 소원을 이룬 이산가족은 1만9960명(15.6%)에 그치고 있다.
북측이 이산가족 상봉 행사 자체를 남측의 인도적 지원과 사실상 연계시키며 대규모 상봉이나 생사확인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측의 장재언 적십자회 위원장은 이번 행사 때도 "남측에서도 상응하는 호의를 표시하는 게 어떻겠느냐"며 사실상 쌀·비료의 지원을 간접 요청했다.
전문가들은 남측이 이산가족 상봉을 단순히 인도적 차원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북측은 상대적으로 체제가 열악해 상봉에 소극적이라고 진단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측은 상봉 대상자를 찾아 좋은 옷을 입히고 체제 교육을 시키는 등 현실적으로 비용이 발생한다"며 "북측이 이산가족의 생사확인과 최소한도의 상봉을 보장하는 대신 남측은 매년 일정 규모의 쌀·비료를 예외없이 제공하는 식으로 근본적으로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안의근 기자,수원=김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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