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톡톡] ‘무작위 숫자 4000개, 단어 400개의 순서, 뒤죽박죽 늘어놓았던 포커카드 52장의 위치….’
지난 14일 끝난 ‘월드 메모리 챔피언십(World Memory Championships)’에서 34살의 회계사 벤 프리드모어(Ben Pridmore·영국·사진)가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기억력 올림픽’이라고 불리는 이 대회에서 지난해를 포함해 통산 세 번째로 우승을 차지했다.
총 3일 동안 치러지는 이 대회는 숫자, 카드, 날짜 등을 이용한 다양한 과제가 주어지며, 각 부분의 총점을 합산하는 방식으로 우승자가 가려진다. 세계에서 가장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참가자에게 주어지는 암기과제들은 웬만한 사람들은 듣기만 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로 엄청나다.
일단 참가자들에게는 숫자들의 순서를 외우는 과제가 주어진다.
▲‘1, 5, 4, 8…’과 같은 식의 무작위 숫자 100개, 200개, 300개를 듣기만 하고, 각각 100초, 200초, 300초 동안 외운다. 그리고 이 숫자들을 각각 5분, 10분, 15분 동안 순서대로 적어야 한다.
▲무작위로 나열된 4000개의 숫자를 외워야 한다. 1장의 종이에는 열당 40개에 25열의 숫자가 나열돼 있고 총 4장이 주어지는 것이다. 1시간 동안 외우고 2시간 내에 적어내야 한다. 무작정 순서대로만 적어 나가는 것이 아니다. 각 열까지 그대로 재현해내야 한다. 순서뿐만 아니라 각 열의 시작과 끝도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무작위로 나열된 1000개의 숫자를 5분 동안 외워 15분 내에 적어내야 하다. 열당 40개에 25열의 숫자가 나열된 1장의 종이가 주어지며, 각 열까지 재현해야 한다.
▲‘10011110101…’과 같은 패턴 없이 나열되는 연속된 두 숫자의 순서를 외워야 한다. 1장에 열당 30개에 25열, 총 6장이 주어진다. 1장에 750개로 총 4500개의 순서를 외워야 하는 것이다. 외우는 시간은 단 30분, 60분 동안 적어내야 한다. 각 열까지 재현해야 한다.
포커카드, 날짜 등과 관련된 과제도 있다.
▲뒤죽박죽 섞어 늘어놓았던 포커카드 52장의 위치를 기억해야 한다. 외우는 시간 1시간, 2시간 내에 재현해내야 한다. 여기에는 5분 동안 외우고 5분 동안 최대한 재현해보는 스피드 과제도 있다.
▲특정 날짜와 이에 부합하는 사건을 기억해 내야 한다. 날짜는 40개이며 픽션인 사건은 110개가 주어진다. 사건은 10개 단어 이내로 서술돼 있으며, 외우는 시간은 단 5분, 15분 내에 적어내야 한다.
▲ 이 외에 칼럼 기사에서 총 400개의 단어의 순서, 110명의 상반신 사진과 그들의 이름을 15분 동안 외워서 30분 내에 순서대로 적어내는 과제 등이 있다.
우승을 차치한 벤 프리드모어는 모든 부분에서 1~3위를 기록했다.
특히 열을 이뤄 제시되는 숫자 과제는 모두 외우면 만점, 1번 실수하면 절반, 2번 실수부터는 0점이다. 만점은 과제의 규모에 따라 수 백점에서 수 천점까지 나올 수 있다. 다만 마지막 열에서만 실수를 하는 경우 그만큼만 점수가 깎이고 나머지 수만큼의 점수만 가져간다. 40개 숫자에서 2번 실수를 했다면 38점만 받는 식이다.
벤 프리드모어는 이런 구조에서 0점을 받은 과제가 있기는커녕 전부 880~1026점의 고득점을 기록했다. 또 64명의 세계 각국의 대표들이 경합한 이번 대회에서 0점을 기록한 과제가 하나도 없는 참가자는 59명이나 됐다. 우리나라 참가자는 없었다.
이번 대회에서 벤 프리드모어를 포함한 참가자들이 보여준 성과는 인간두뇌가 가진 능력에 다시 한 번 경탄을 표할 수밖에 없는 이유나 다름없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