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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문화] 흔히 나이를 먹으면 몸을 편하게 굴리고 싶어한다. 혈기왕성한 나이에 밤샘근무 자주하고 승진할수록 고된노동에서 발을 떼는 게 우리 직장의 원리다. 하지만 27년차 베테랑 뮤지컬 배우 남경주(46)는 20대때나 지금이나 얼굴에 분주한 땀방울이 멎을새가 없다. 요새도 평일에는 연극 레인맨의 ‘찰리’로, 주말에는 뮤지컬 시카고의 ‘빌리’로 요즘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고 있다. ‘뮤지컬계의 지존’은 그의 부단한 노력으로 이뤄진 이름이다.
지난 11일, 레인맨이 한창 공연 중인 서초동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분장실에서 형 남경읍(52)과 함께 있는 그를 만났다. 형과 함께 있는 그는 예의 카리스마가 넘치기보다 귀엽고 장난기 많은 소년의 모습이었다.
“형과 오랜만에 작업하게 돼서 기분이 정말 좋아요. 그동안 바빠서 자주 못 봤는데, 요즘엔 매일 만나고, 서로 조언도 해줄 수 있고”
서로가 있어 하루하루가 즐겁다는 이 형제의 동반 출연은 ‘사랑은 비를 타고’ 이후 15년 만이다.
- 연극 레인맨은 ‘남경주’에게 어떤 작품인가요?
“정서적으로 밀착이 잘 되는 작품이에요. 어린 시절 형과의 좋았던 추억들, 가족에 소흘했던 아버지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들이 있는데, 이 연극 내용이 우리 형제 이야기와 참 비슷해요. 우리 형제를 위해 만들어진 작품 같아요.”
-레인맨에 나오는 레이먼 역과 찰리 역 중 더 탐나는 역할은 뭔가요?
“레이먼 역이 배우로서는 더 탐나요. 찰리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로 돈에 대한 집착을 보이고, 사회성이 결여되기도 했지만, 레이먼 보다는 자유롭고 사실적으로 편안하게 연기하면 돼요. 그런데 레이먼은 자폐아라는 특수한 장애가 있어서 정확하게 외울 것도 많고, 감정 표현을 안 하는 것 같지만 중얼거리는 모습에 다 감정이 실려 있어야 하기 때문에 배우로서 해야 할 일들이 참 많아요. 그래서 배우라면 꼭 도전해 볼 만한 역이고요. 그래도 지금은 찰리가 더 좋아요."
연극 레인맨은 돈만 아는 인터넷 주식 트레이더인 동생 찰리가 증오해왔던 아버지의 사망 이후 유산상속을 위해 고향에 왔다가 존재조차 몰랐던 자폐증 환자 친형 레이먼을 만난뒤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된다는 이야기다. 1989년 개봉된 더스틴 호프만,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레인맨이 원작이다. 지난달부터 공연 중인 연극 레인맨은 남경읍과 박상원이 레이먼 역을, 남경주와 원기준이 각각 찰리 역을 맡아 열연 중이다.
- 남경읍, 남경주 형제를 보고 ‘난형난제’란 말을 많이 하던데, 그래도 이건 내가 형보다
낫다 하는 건 없나요?
“지금 제가 형보다 나은 건 담배 끊은 것? (웃음) 그리고 무대 위에서는 육체적으로 할 수 있는 거요. 제가 초등학교 때 기계체조를 해서 유연성이 좋아요. 그래도 아직까지 술은 형한테 이길 수 가 없다니까요. (웃음)”
- 뮤지컬 시카고와 연극 레인맨에 동시 출연중인데, 솔직히 어떤 작품에 더 애착이 가나요?
“사실 레인맨에 더 애착이 가요. 물론 시카고도 쉬운 작품은 아니지만 스타일 자체가 풍자적이고 유머러스해요. 오래하기도 했고. 그런데 레인맨은 정말 아름다운 스토리거든요. 몰입도 끝날 때 까지 계속 해야 하고. 인간이라면 대부분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에 더 애정이 가잖아요.(웃음)”
- 27년 동안 배우 생활 하면서 후회한 적은 없었나요?
“두 번 정도요. 처음에 시립가무단에 들어갔는데 제가 꿈꾸던 뮤지컬 배우의 모습과 현실은 너무 다르더라고요. 1년 만에 그만 뒀죠. 그 뒤 밴드를 결성해서 밤무대에서 노래도 불렀는데, 술 마시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는 더 못하겠더라고요. 그 때 뮤지컬 배우를 계속 해야 하나 고민 많이 했어요. 그 다음은 미국 갔다 온 후였는데, 오랜 경험을 가진 배우로서 내 명성에 맞게 지금 잘 하고 있는 건가 객관적으로 판단해봤는데 거기에 많이 못 미치더라고요. 평생을 바쳐서 연기했는데 지금까지 뭐 했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그만 둘까 했어요. 물론 지금은 너무 좋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싹 없어 졌지만요.”
뮤지컬 계에서는 대선배로 통하는 그이지만 아직도 무대에 서면 떨린다고 했다.
떨린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이고 프로일수록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해야 좋은 연기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 요즘 전문 뮤지컬 배우가 아닌 뮤지션들, 특히 아이돌 가수들의 잦은 뮤지컬 출연을 두고 전문성도 없이 흥행성과 대중성에 연연해 질적 하향됐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데 전문 뮤지컬 배우로서, 그리고 대선배로서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과연 그들이 가수를 꿈꿨을 때처럼 죽도록 준비를 해서 이 분야에 도전하는 건지 좀 의심스러워요. ‘내가 이번에 6개월 쉬니까 시립교향악단에 들어가서 연주 한번 해볼까?’ 이런 생각 잘 안하잖아요. 그런데 왜 유독 뮤지컬 분야만 그러는 건지. 그건 뮤지컬 배우들 뿐 아니라 제작자, 이 쪽에 몸담고 있는 모든 사람들한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연예계 쪽 사람들한테 얼마나 쉽게 보였길래 나도 저건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느냔 말이죠. 그들을 비판할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먼저 그렇게 생각하게 만든 것에 대해 책임을 통감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러면서 그는 노래나 춤만 추면되는 현재의 뮤지컬 공연계를 비판했다. 탭부터 시작해서 발레, 노래, 연기 등의 모든 것을 완벽히 소화해야 공연이 가능한 고전 뮤지컬 작품들을 많이 한다면 함부로 뮤지컬 한다는 생각을 할 수 없을 것이라며. 하지만 그가 높이 평가하는 연예스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시카고에 함께 출연 중인 가수 옥주현을 가리키며 제 작년 공연 때 보다 실력이 더 좋아졌다고 칭찬했다. “그동안 (옥주현이)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에요.”
- 배우를 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형이 공연했던 모습, 배우들의 환상적인 모습이 머릿속에 오랫동안 각인돼 왔던 거죠. 형과 함께 자라면서 알게 모르게 들었던 음악들, 그 예술적인 환경들이 가랑비에 옷 젖듯이, 자연스럽게 뮤지컬을 하게 만든 것 같아요.”
이렇게 자연스럽게 뮤지컬을 시작했던 그도 한 때는 미술학도가 꿈이었다. 물론 손재주가 있어 가능했겠지만, 미술부의 멋스러운 분위기와 옥상에서 담배를 필 수 있는 자유(?)가 허락됐기 때문에 더 끌렸다고.
- 형 말에 의하면, 어릴 적에 사고 많이 쳤다고 하던데.
“고등학교 때 담배 좀 피우고 싸움 좀 했던 거, 뭐 그런 거예요.(웃음) 종교부장까지 했던 형(형은 남경주의 고등학교 대학교 직속 선배다) 덕분에(?) 비교가 돼서 더 혼나기도 했고요. 그래도 가장 큰 이유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등) 불우했던 집안 환경 때문이었던 거 같아요. 열등감이 그런 식으로 표출 된 거죠. 누가 자존심 상하는 얘기라도 하면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갔어요. 지금은 욕도 다 잊어버렸을 정도로 그 세계와 발 끊었지만요.(웃음)”
- 고3 때 삼청교육대도 갔다 왔다면서요?
“그 당시에 국가에서 학교로 공문을 보냈어요. 고등학생 중에 학교에서 도저히 순화가 안 되는 학생들이 있으면 보내라고요. 그래서 학교마다 2명씩 보냈는데 거기에 저도 끼었죠. 말이 삼청교육대지, 고등학생들은 순화교육만 받았어요. 원래 4주 있어야 되는건데 저는 모범수라고 2주 만에 보내 주더라고요.”
1980년대 대표적인 인권침해의 사례로 꼽히는 삼청교육대. 그 곳에서의 섬뜩한 경험을 아무렇지 않게 태연하게 말하는 그에게 기자는 다시 질문을 던졌다.
- 그 때 경험이 지금의 삶 속에 영향을 미치진 않았나요?
“거기서 죽을 때까지 훈련받고 쓰러질 때까지 매 맞았어요. 거의 매일 울었죠. 갔다 오니까 아이들이나 선생님이 저를 못 건드리더라고요. 훈장 단거죠.(웃음) 그런 경험이 사회생활 하는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됐어요. 웬만큼 육체적으로 힘든 일도 그 때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에요.”
이런 귀중한(?) 경험 덕분인지 몰라도 그는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노래, 악기, 춤 등 여러 가지를 배우며 죽도록 노력했다고 한다. 지금의 명성을 얻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다.
- 뮤지컬이나 연극을 시작하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한다면요?
“도전하는 삶을 살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예전에 'art & fear : 예술가여 뭐가 두려운가'라는 책을 읽었는데, ‘예술이란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불확실한 것을 택하는 것이 더 안정적으로 보이는 이유가 뭘까?’ 라고 한 부분이 기억에 남아요. 뭔가 안정적인 것을 택하는 것 보다 불확실하지만 자기가 도전할 수 있는, 모험을 해볼 수 있는 일들을 구상하고 선택하면 어떨까 해요. 국민일보 쿠키뉴스 인턴 정민우 기자 jeongmw12@naver.com
, 사진 - 장일암 사진작가
(인턴제휴 아나운서 아카데미 '아나레슨'http://www.analesso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