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사람] ‘100만 민란’ 추진하는 문성근의 꿈은 ‘늙지만 젊은 배우’

[쿠키 문화]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 어느 시기보다 혼란스럽다고 말한다. 매달 거대한 정치사회적 이슈로 인해 숨이 막힐 정도라고 표현하는 이들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렇다고 ''딱'' 부러지게 해결된 것도 없다. 진행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이들의 평행선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시대에 ‘민란’을 주장하고 나선 이가 있다. 바로 영화배우 문성근이다. 발칙하고도 선동적이며 현실성이 떨어질 수 있는 단어 ‘민란’은 ‘문성근’이라는 아이콘과 결합되어 묘하게도 거꾸로 현실적이면서도 진지한 단어로 변모했다. 문성근이 가지고 있는 힘이다. 노사모 탈퇴 6년 여만에 ''유쾌한 100만 민란 프로젝트''라는 새로운 정치 참여 형식을 제안한 것이다.

◇ 연기 태생이 ‘사회’와 함께 간다

올해로 연기 인생 26년을 맞이한 문성근은 연기자 인생을 걷기 시작하면서 지적이면서 사회참여적인 이미지가 일찌감치 굳어졌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가 故 문익환 목사의 아이들이며, 연우무대라는 사회의식이 있는 연극집단 출신이라는 배경이 1차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일치감치 1990년에 국가 정보기관의 주요사찰 대상에 ‘문익환씨 4남’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후의 작품 면면도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8년간의 평범한 직장생활을 청산하고 연극계에 뛰어든지 2년 만에 하게 된 사회의식이 강한 연극 ‘칠수와 만수’를 통해 그는 이미 사회참여형 배우의 길을 걸을 것을 예감했다. 1992년 ‘칠수와 만수’ 재공연 당시 그가 “사람들은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터무니없고 기가 탁 막히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죠. 팽배해있던 공포감이 덜해진 것을 빼놓고요”라는 말을 던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우리처럼>에서 탄광촌으로 도피한 과거 운동권 경력의 나약한 지식인 역을 맡거나, <베를린 리포트>에서 고뇌하는 심각한 지식인 역도 그이기에 가능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경마장 가는 길>에서는 자기정당화에 뛰어난 파렴치한 사이비 지식인 R을 맡아 자주 벗기도 했지만, 역시 세련된 이중인격자의 모습을 잘 소화해냈다. 이후에도 <그 섬에 가고 싶다> <세상 밖으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꽃잎> <초록 물고기> 등 <101번째 프로포즈>의 다소 안 어울리는 배역을 소화해낸 몇몇 영화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시대에 대한 저항이 담긴 작품에 주로 출연했다. 그가 어느 감독에게 대본을 거절하며 "이데올로기가 없다"고 말했다는 오래 전 에피스도는 문성근이라는 배우를 잘 설명해준다.

◇ ‘그것이 알고싶다’와 ‘노무현’

사회 참여형이라 할지라도 스크린 속 문성근은 연기 잘하는 배우로 대중들에게 우선 각인됐다. 배우에게 ''연기 잘한다''는 말이 최고의 칭찬일 수 있는 상황이지만, 문성근은 어느 순간 그 틀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 계기가 된 것인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다. 2002년 5월 11일 마이크를 놓게 된 문성근에게 ‘그것이 알고싶다’는 대중들에게 지적이며 똑부러지는 이미지를 한층 강화시켜줬다. 벌써 8년이 지났지만, ‘그것이 알고싶다’를 문성근의 빈틈없는 말투와 아직도 연결시키는 이들이 적지않음이 이를 방증한다.

그런 그가 마이크를 놓게 된 이유가 문성근이라는 아이콘을 사회참여형에서 정치참여형으로 옮기게 한 故 노무현 전대통령이다. 1980년대 말 문성근의 주연을 맡은 ‘칠수와 만수’의 비판적인 주제 의식에 매료된 노 전대통령과의 인연은 이후, 문성근으로 하여금 ‘노사모’를 조직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문성근은 명계남과 더불어 노무현이라는 인지도 낮은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문성근에게 현실정치는 여기서 끝이었다.

문성근은 흔히 ‘승리자’가 행하게 되는 논공행상에 참여하지 않게 된다. 정치인으로서 출마 의사가 없다고 공공연히 선언한 그는 실제로 외곽에서 생활정치인으로 남게된다. (그가 정치인으로서 어느 한 자리를 맡게다고 한 것은 아마 2003년 어느 인터뷰에서 “통일이 된 뒤 집안의 고향인 함경북도 회령 군수로 출마할 생각은 있다”는 말이 유일할 것이다)

하지만 생활정치인 선언은 문성근으로 하여금 배우로서의 고난을 의미했다. 대선이 끝나고 2005년 방은진 감독의 데뷔작 ‘오로라 공주’에 캐스팅 되기 전까지 그에게는 시나리오가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2002년 봄 촬영을 마친 ‘질투는 나의 힘’이후 3년 만에 영화 촬영현장 나들이를 한 셈이다.

그는 당시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제게 맞는 영화가 있으면 출연하고 싶다고 여러 차례 말해왔는데 시나리오가 거의 들어오지 않았어요. 투자자들이 정치적 부담을 느꼈는지도 모르겠지요. 그나마 하기로 했다가 무산된 적도 있고요. 광고주들도 친 한나라당 성향이 많아서 그런지 CF 출연 제의도 뚝 끊어졌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연이든 단역이든 이후 문성근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종종 보였다. 사이코 살인마 역을 맡아 <실종>을 촬영했고, 강우석 감독의 <강철중 : 공공의 적 1-1>에서는 단역을 깜짝 출연하기도 했다. 극단 차이무의 연극 ‘변’에서 ‘변학도’ 역을 맡기도 했고, 드라마 ‘자명고’를 통해 사극 도전도 했다. 또 노근리 사건을 재조명한 <작은 연못> 제작을 주도하기도 했으며, 홍상수 감독의 <첩첩산중>과 최근 개봉한 <옥희의 영화>에서 불편하지만 외로운 현대의 지식인 역을 소화하기도 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문성근이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에 몰입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부터였다. 이에 그는 “어떤 정부가 들어섰기 때문이 아니라 참여정부가 끝났다는 게 중요합니다. 난 어떤 혜택을 받지도 않고, 직업을 바꾸지도 않겠다고 했죠. 그런 말에 대한 신뢰는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 생각했고, 시간이 흐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일까. 어느 정도 몇몇 작품을 통해 몸은 푼 문성근이 2009년부터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종종 “억압에서 자유로워졌다” “그동안 압박을 많이 받았다” “자유를 얻었다” “정치참여가 예상보다 배우에게는 치명적” “이렇게까지 시나리오가 들어오지 않기는 처음”이라는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일지는 몰라도, 그가 내놓은 작품이 바로 ‘유쾌한 100만 민란 프로젝트’다.

바로 2012년 민주 진보 정부를 세우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일종의 민란이자, 시민혁명으로, 정치인들에게도 모두 제3지대에서 만나 백지상태에서 새 그림을 그리는 야권 단일정당을 건설하자고 주장한다. 문성근은 이를 위해 직접 길거리에 나서서 시민들에게 이를 알리고 대화한다. 그리고 16833명의 팔로워를 이끄는 트위터를 통해 직접 소통을 하고 있다.

◇배우 문성근의 꿈은 ‘연극’과 ‘감독’

문성근의 ‘민란’이 성공할 지 여부는 알 수 없다. 그 ''민란''의 필요성 역시도 여기서 거론할 수는 없다. 하지만 ‘민란’의 성공 여부를 떠나 이를 주도한 문성근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안다면, ‘민란’의 진정성과 방향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지 않을까. 문성근이 인터뷰에서 한 자신이 꿈꾸는 미래를 들어보자.

“러시아에 가면 40년간 16세 캐릭터를 연기해온 예순 살 배우의 연극이 관광코스라고 하더라. 요즘 연극 ‘칠수와 만수’ 재공연을 생각하고 있다. 극중 나이가 26세인데 오리지널 멤버인 나와 강신일이 다시 함께 무대에 서는 거다. 강신일에겐 2년에 한 번씩 한 달간 10번만 하자고 했다. 그럼 우리가 80세가 다 될 것이다. 무대에서 몸이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해보고 싶다. 강신일의 건강이 회복되면 해보고 싶다”

“1999년과 2000년 쯤, 감독 데뷔를 준비했다. 하지만 스크린쿼터문제가 불거지면서 그쪽 활동을 하느라 시간을 놓쳤다. 앞으로 연기를 하며 공부를 통해 다시 감독으로 데뷔하고 싶다. 내가 만드는 영화는 쓸쓸한 영화가 될 듯 하다. 고등학교나 대학동문이 30년 만에 만나는 내용으로, 학생 때는 비슷했지만 30년 후 서로 엄청나게 달라진 모습, 변화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는데 있어 오해가 생기는 생과 연륜이 느껴지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유쾌한 100만 민란 프로젝트’를 꿈꾸며, 답답한 세상을 벗어나려 하지만, 문성근은 천상 배우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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