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톡톡]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커뮤니케이션을 실생활로 받아들이고, 때때로 실생활보다 더 집중하고 적극적으로 변신하는 것은 네티즌의 특성 중 하나다. 이는 ‘악플’ 등과 같은 폐단을 낳기도 하지만 흐뭇하고 따뜻한 사례를 낳기도 한다. 그리고 지난 2005년 개봉됐던 일본영화 ‘전차남’은 이런 모습을 제대로 그려낸 영화다.
‘전차남’은 실화를 토대로 제작됐다. 애니메이션에 심취한 일명 ‘오타쿠’인 소심남이 어느날 우연히 전철 안에서 취객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던 여성을 구해준다. 이 여성은 고마움의 표시로 에르메스 찻잔을 선물하고, 남자는 아름다운 외모에 고운 마음씨까지 가진 이 여성에게 마음을 뺏겨버리고 만다.
어찌할 줄 몰랐던 소심남은 결국 인터넷 채팅을 통해 네티즌들에게 도움을 구한다.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 데이트에 알맞는 복장부터 시작해 저마다의 사랑·실연 경험담까지. 인터넷에서 이 소심남은 전차남(電車男)이라고 불렸고, 사랑쟁취를 돕기 위한 코치 릴레이가 시작된다. 네티즌들의 열렬한 응원을 등에 업고 이 여성과 거리를 좁혀가던 소심남은 결국 사랑을 이룬다.
남자 주인공 야마다 타카유키를 꽃미남 기대주에서 일약 스타로 발돋움시킨 전차남은 실화가 바탕이었기 때문에 더욱 흐뭇하다. 맘에 드는 여성에게 말 한마디 건네는 것 조차 땀을 뻘뻘 흘리는 소심남들에게 은근히 판타지의 재미도 안겨준다. 이 영화는 일본에서 3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성공을 거뒀고, 다음해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돼 국내에도 친숙하다.
‘버스남을 찾아요!’
최근 트위터에 한 장의 사진이 올라왔고, 사진 속 전단지 내용은 이렇게 시작된다.
한 여성이 지난 16일 서울역에서 2000번 버스 맨뒷자리 바로 앞 좌석 창가쪽 자리에 파란색 후드티 차림으로 앉아있던 남성을 애타게 찾고 있다. ‘창문도 열어주고 어깨도 빌려준 남자분.’ 자신이 통로쪽 자리에 앉아 창문 좀 열어달라고 부탁해 열어줬거나 더워서 부채질하고 있는 것 보고 알아서 열어줬을 수도 있다. 또 잠시 졸아서 본의 아니게 어깨에 기대게 된 자신을 귀찮아하기는커녕 깰까봐 가만히 있어준 모양이다. ‘요즘(요즈음) 너 땜에(때문에) 잠이 안와.’ 스쳐가는 관심 정도가 아니라 단단히 짝사랑에 빠진 것 같다.
이 여성은 전단지에 자신의 이메일주소를 적어넣고 영화같은 만남을 꿈꾸고 있다. 답장을 보낼땐 그날 입었던 후드티와 바지(색깔이나 재질)를 꼭 적어서 보내달라며.
이 사진은 트위터에 올라오자마자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트위터리안들은 이 여성의 귀여운 용기에 응원을 보내주고 있다. 그리고 “꼭 만났으면 좋겠다” “인연이 이뤄지길 바란다”며 RT(리트윗·Retweet·타인의 트위터글이나 게시물을 자기 트위터로 옮겨와 확산시키는 행위)를 이어가고 있다. 이 사진은 2~3일전부터 화제를 모으기 시작해 28일 국내 트위터 RT 횟수가 100회를 넘기며 1위(followkr.com)를 달리고 있다. 이 사진을 한 명의 네티즌이라도 더 많이 보도록 해 둘의 만남 가능성을 높여주려는 트위터리안들의 응원인 것이다.
세부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일본 ‘전차남’과 전개가 매우 흡사하다. 짝사랑의 열병을 앓는 이가 인터넷을 통해 도움을 요청했고, 이를 본 얼굴도 모르는 네티즌들이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입소문 마케팅 등을 노린 연출된 이벤트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트위터리안들은 실제라고 굳게 믿으며 ‘무한RT’를 외치고 있다.
‘오늘 만났어요. 여러분 감사합니다.’ 과연 이런 글을 트위터에서 보게 될 수 있을까. 인터넷에서 시작된 영화같은 스토리가 실제로도 연출될 수 있을지 트위터리안들은 주목하고 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