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가면 언제 다시 만나나‥"
죽어서 영혼으로 만나면 다시는 놓지 않겠다."

금강산은 하염없는 눈물만 흘렸다. 떠나는 사람이나, 보내는 사람이나 기약없는 이별을 해야 한다. 이제 헤어지면 죽어서 영혼으로만 만날 수 있을 가능성이 크다. 부등켜 안은 그들에게, 어찌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는 그들에게 이산(離散)의 슬픔과 분단의 아픔을 느낀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 사흘째이자 마지막 날인 1일 오전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다시 만난 남북의 이산가족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오전 9시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 1층 대연회장에 모인 가족들에게 북한 노래 '반갑습니다'는 너무 야속하게 들렸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과 안타까움에 서로 눈물범벅인 얼굴을 부비며 통곡하는 가족들에게 흥겨운 곡조의 이 노래는 다른 세상 것처럼 느껴졌다.

1시간으로 가장 짧은 '작별상봉'이 시작되자 상당수 남측 가족들은 단 몇 초라도 더 함께 있고 싶은 마음에 행사장 입구까지 나가 북측 가족을 업고 오기도 했다.

이번 상봉 가족 가운데 남북한을 통틀어 최고령인 남측의 김례정(96)씨는 "이제 다시 못 볼 텐데 어떻게 해‥"라며 애통해하다 갑자기 심장 통증을 느꼈지만 1분이라도 딸을 더 보기 위해 의료진의 진찰조차 거부했다.

북측의 딸 우정혜(71)씨는 노환으로 바깥출입을 거의 못하다가 자신을 보려고 5년 만에 외출복을 입은 어머니에게 울먹이면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큰절을 올렸고, 오빠 우영식씨도 "잘살고 있다가 통일이 되면 다시 만나자"며 눈물을 훔쳤다.

우씨 가족은 북측 이산가족이 탄 버스가 면회소를 떠날 때 어머니 김례정씨를 자리에서 들어올려 창문을 통해 두 모녀가 한번 더 손을 맞잡기도 했다.

북측의 아버지 고윤섭(81)씨를 만나러 미국에서 온 아들 고배일(62)씨는 큰절을 올리다 말고 엎드려 통곡했고,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고윤섭씨는 가족에게 업혀 상봉장을 나갔다.

출생 후 100일 무렵 이름을 지어주고 국군에 입대한 아버지 리종렬(90)씨와 다시 헤어지게 된 남측 아들 이민관(61)씨는 "아버지, 아버지"라고 하염없이 부르며 목놓아 울었다.

민관씨는 아버지를 모시고 나온 이복동생 명국씨의 손을 꼭 잡고 "아버지 잘 부탁한다. 정말 잘 부탁한다"며 간절히 부탁하기도 했다.

북측의 전순식(79)씨는 치매를 앓고 있으면서도 잠시나마 자신을 알아본 언니 순심(84)씨에게 "언니, 오래오래 살아. 그래야 또 만나지"라며 건강을 빌었다.

북측 박수환(76)씨도 가족과 함께 '아리랑'을 애달프게 불렀고, 다른 가족들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함께 부르며 다시 만날 날을 기약했다.

북한의 리순희(75)씨는 "저 때문에 맘고생을 많이 하셔서 더 사실 것도 못 사시고 돌아가셨습니까? 제삿날엔 평양에서 술 한 잔씩이라도 올리겠습니다"라고 쓴 편지를 남측 가족에게 쥐어주며 부모님 산소 앞에 꼭 놓아달라고 부탁했다.

남측의 조카 윤기양씨는 자신이 쓰고 있던 안경을 북측의 리경수(74)씨에게 벗어준 뒤 끌어안으며 "통일되면 만나자"고 다짐했고, 리씨도 "통일되는 날까지 굳세게 살자"고 남쪽 가족들을 위로했다.

상봉이 끝날 때 '잘 있으라 다시 만나요/잘 가시라 다시 만나요/목메어 소리칩니다/안녕히 다시 만나요'라는 가사의 북한 노래 '다시 만나요'가 흘러나오자 가족들은 북받치는 감정을 추스르며 서둘러 이별의 큰절을 올렸다.

전날(30일) 개별상봉에서도 남북의 이산가족들은 때론 기쁨으로, 때론 슬픔으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미국 시민권자인 고배일(62)씨.
북한의 아버지 윤섭(81)씨가 자신을 찾는다는 소식에 급히 귀국해 방북단에 합류했다. 아버지와 헤어질 때 세 살배기였던 배일씨가 “저승에서 영혼으로 만나면 아버님을 붙잡고 놓아드리지 않겠다”며 눈물을 멈추지 못하자 부친도 울먹이며 “꼭 그러자”고 답했다. 배일씨는 “아버님이 치아가 없어 음식을 잘 못 잡수시던데…미국에 가면 제가 치아를 다 해 드릴 수 있을 텐데”라며 아버지의 주름진 손을 꼭 쥐었다.

상봉이 너무 짧게 느껴졌는지 폴라로이드(즉석 인화) 카메라와 디지털 캠코더를 준비한 가족이 많았다. 북측 오빠 최의식(70)씨와 만난 남측 동생 예식씨는 “(오빠와 보내는 시간을) 하나하나 비디오카메라에 담고 있다”고 말했다. 북측 전상복(76)씨의 남측 조카 전선길(49)씨는 “디지털 카메라로 찍으면 사진을 전달할 방법이 없을 것 같아 급히 폴라로이드를 사가지고 왔다”고 말했다.

남측 가족 전순심(84)씨는 치매 증세로 첫날 북측의 여동생을 알아보지 못했으나 둘째 날엔 정신이 맑아져 동생을 알아본 뒤 꼭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남측 가족 성진수(79)씨는 첫날 단체상봉장에서 오열하다 어지럼증을 호소해 숙소로 후송되기도 했다. 남측 최고령자인 김례정(96)씨의 아들인 우원식 전 국회의원은 “노환으로 바깥출입을 못하시는 어머니로선 목숨을 걸고 이번 상봉장행을 택했다”고 말했다.

북측의 오빠 이희명(80)씨를 만난 이인숙(74)씨는 개별상봉 후 오빠가 버스에 오르자 그 옆에 서서 ‘오빠 생각’을 불렀다.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하는 부분에서 감정이 북받친 인숙씨가 울먹이자 희명씨는 버스 창문 밖으로 동생의 손을 잡고 “이제 난 울지 않겠다. 열심히 살아줘서 정말 감사하다”고 달랬다.

북측의 김제국(73)씨는 금강산호텔 2층 식당에서 단체로 점심 식사를 할 때 다른 북측 상봉자 우정혜(74)씨 가족과 어울려 ‘고향의 봄’을 합창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춤까지 추던 김씨는 평소 우씨를 알고 지냈다며 남한에서 온 우씨의 어머니 김례정(96)씨에게 “오래오래 사세요”라고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극적으로 생존이 확인된 국군 출신 상봉자 4명도 만남의 기쁨을 맛봤다. 북측 최고령 상봉자인 이종렬(90)씨는 생후 100일 때 헤어진 아들 민관(61)씨를 만났다. 당시 이씨는 다급한 상황에서도 아들의 이름을 지어주고 입대했고, 민관씨는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한테 받은 이름으로 평생을 살았다. 이씨는 “민관아, 지난 60년간 하루도 너를 잊지 않았다”며 환갑 나이의 아들에게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스무 살 때 군대에 갔다가 전사자로 통보된 윤태영(79)씨는 자신을 보러 온 남측 동생 4명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얼굴을 확인하다가 막내가 세상을 떠났다고 하자 몹시 애통해했다.

이원직(77)씨는 남측의 누나 운조(83)씨와 동생 원술(72)·원학·원탁씨로부터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다는 얘기에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면사무소에서 일하다 국군에 자원입대했다는 방영원(81)씨도 남측의 형수 이이순(88)씨를 만나 돌아가신 어머니와 형의 소식을 듣고 애통해했다.

이산의 한을 달래려는 가족들은 저마다 정성스럽게 준비한 선물 보따리를 풀어놨다. 1·4후퇴 당시 아버지 대신 인민군 부역에 끌려갔던 북측의 큰 오빠 정기형(78)씨를 만난 기옥(62)씨 가족은 선물 가방만 5개였다. 기옥씨는 오빠를 위해 신발 네 켤레를 준비했다. 기옥씨는 “생전에 어머니는 신발도 못 신고 끌려간 큰 오빠 생각에 항상 마음 아파하셨다”고 눈물지었다.

북측 작은아버지 윤재설(80)씨를 만난 윤상호(50)씨는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작은아버지의 북측 아들 윤호(46)씨가 아버지의 남쪽 고향집을 상상해 만든 목공예품과 골뱅이 껍데기로 장식한 꽃병을 선물한 것이다. 수공예 전문가인 윤호씨는 아버지가 기억을 더듬어 전해주신 경기도 광주의 고향집 정경을 장독대, 돼지우리, 장작더미까지 그대로 살려 목공예품으로 만든 뒤 동요 ‘고향의 봄’ 가사를 새겨 넣었다.

북측 김순록(76)씨는 자신이 건넨 술을 남측 집 진열장에 소중히 간직하겠다는 조카 김광휘(42)씨의 말에 “부모님 제사 때 한잔만 따라놓으라”면서 “빨리 통일이 돼 만나자”고 말했다. 금강산공동취재단,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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