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도 마찬가지다. 일요일인 7일 열린 당·정·청 9인 회의에서 한나라당 참석자들은 “검찰 수사가 과잉”이라며 정부 측에 항의했다고 한다. 안상수 당 대표와 김무성 원내대표도 “후원금 계좌가 공개 돼있는 데 구태여 11명이나 압수수색한 것은 지나쳤다”고 강력한 항의 뜻을 전했다고 한다.
지난 5일 검찰이 여야의원 11명 사무실에 대해 압수수색을 한 이후 정치권이 보이고 있는 행태는 그야말로 가관이다. 뻔뻔스러움이 도를 넘고 있다. 좀 젊잖게 표현해서 후안무치하다. 국민들 앞에 석고대죄를 해도 부족할 진데 검찰이 국회를 무시하고 민주주의에 도전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번 검찰의 압수수색은 법원이 영장을 발부해 이뤄진 것이다.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삼권분립의 한 축인 행정부, 즉 검찰이 다른 한 축인 사법부, 즉 법원에 국회의원 사무실을 압수수색할 필요가 있다고 요구해 받은 영장에 근거한 것이다. 최근 법원의 영장 발부율이 매우 저조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법원이 신속하게 국회의원 사무실의 압수수색영장을 내 준 것은 사법부도 전격적인 압수 수색의 그 필요성을 인정한 것이다.
그럼에도 검찰이 국회를 무시했다고 정치인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그야말로 오만이다. 입법부인 국회는 결코 행정부나 사법부 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여야 지도자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청목회 회원들이 청원경찰법 개정안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의원들에 대해 집중적인 로비를 한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심지어 의원 측에서 먼저 돈을 요구한 정황도 포착됐다고 한다. 그런데도 여야 지도자들은 “10만 원 짜리 후원금까지 손을 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한 목소리로 주장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청목회 회원들이 수백만 원 돈 뭉치를 의원 사무실에 던져놓고 회원 명단을 주며 알아서 쪼개서 후원금 처리를 하라고 한 정황까지 드러나고 있다. 사안이 이런데 여야 중진 정치인들은 검찰 수사를 ‘정치말살’이라고 주장하고 “국회와 정치인 모두를 불신의 대상으로 삼으려 한다”고 항의하고 있으니 소도 웃을 일이다.
또한 국회 대정부질문 기간 중 의원 사무실을 압수 수색한 것에 대해 ‘의회에 대한 도전’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이 또한 참으로 해괴한 주장이다.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은 행정부의 총리 장관을 출석시킨 가운데 국민이 직접 선출한 국회의원들이 국정 현안에 대해 질문하는 자리다. 같은 시간 행정부가 사법부 동의를 얻어 입법부 소속의 범죄 혐의가 있는 의원들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것이 어떻게 의회에 대한 도전인지 궁금하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또한 국회 회기 중이라는 이유를 들어 압수수색이 부적절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국회의원은 현행범을 제외하고 회기 중 체포 구금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범죄 혐의가 있는 국회의원을 수사하거나 조사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헌법과 국회법 어디에도 그런 조항은 없다. 오히려 의원들은 그동안 철저히 법을 악용해 검찰이 중대 범죄를 저지른 동료 의원을 구속하려해도 물리적으로 막았고, 헌법에 보장된 면책특권을 이용해 ‘아니면 말고 식’의 정치공세를 남발했다.
검찰을 두둔할 생각은 결코 없다. 검찰은 ‘브레이크 없는 벤츠’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권력자의 눈치를 보며 ‘정치 검찰’의 노릇을 해온 전비가 있다. 그래서 신뢰도 많이 상실했다. 인신을 구속하고 은행 계좌를 뒤질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진 검찰은 그동안 정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기관이기도 했다. 그런 검찰이 좌충우돌하면 제어할 방법이 별로 없다. 그나마 언론을 가장 두려워한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 부패한 정치권력을 손댈 기관 또한 검찰이다. 4년 주기로 치러지는 국회의원 선거로는 함량미달의 정치인을 걸러내기는 정치구조상 미흡하다. 따라서 수시로 논에 피를 뽑듯 강제로 솎아낼 수밖에 없고 그 악역을 검찰이 하는 것이다. 검찰이 공정성에서 과거 문제가 많았다고 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입법로비 수사는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사안에 대해 여야 정치인들은 오만을 버리고 조금 겸손해야한다. 특히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더욱 그렇다. 손 대표는 의회 민주주의 본산인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삼권분립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 고 있다. 또한 차기 대권을 꿈꾸는 유력 정치인으로 합리적 사고의 소유자라고 믿고 있다. 국회는 행정부와 사법부 위에 위치한 성역이 아니다. 국회의원들은 일반 국민들보다 더 엄격함을 요구받는다. 몰염치한 일들을 저질러 놓고 ‘명예’ 운운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시시비비를 가려 검찰 수사에 앞서 문제가 있는 의원들을 당에서 먼저 퇴출시키는 용기를 보여야한다. 그래야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더불어 검찰이 명심해야할 일이 있다. 이번 사건의 수사에 ‘사(私)’가 끼어서는 안 된다. 오직 ‘의(義)’로 수사를 해야 한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절대로 이번 사안과 관련해 정치권과 타협해서는 안된다. 탄핵을 받아 설사 옷을 벗더라도 역사는 김 총장의 용기를 올바르게 평가할 것이다. 과거 역대 권위주의 정권에서 얻은 ‘정치검찰’이란 오명을 벗고 정의가 무엇인지를 명쾌하게 보여주길 기대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강렬 국장기자 ry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