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천생 군인이다. 2005년과 2006년 국방부를 취재할 당시 그는 육군참모총장이었다. 당시와 달라진 것은 군복 대신 양복을 입고 있다는 것, 그리고 언론을 상대로도 자유롭게 말한다는 점 정도다. 육군참모총장이라는 자리가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위치이기도 했지만 그는 특히 말수가 적었던 군인으로 기억된다.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 당시 국방장관으로 북한을 방문한 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하면서 목례조차 하지 않아 ‘꼿꼿 장수’란 별명을 얻었다. 당시 국방부에서는 그 배경을 놓고 별도 해명 자료를 내기도 했고, 그 자신은 “고개 숙이면 머리 부딪힐 거 같아서 안 했다”는 얘기를 농담처럼 하기도 했다.
지난 26일 밤, 국회 국방위원 자격으로 연평도를 방문하고 돌아온 한나라당 김장수(62) 의원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당시 왜 꼿꼿했는지를 묻자 “사실은 그냥 고개 숙이고 싶지 않았고, 고집대로 하고 싶었다”며 “60만 장병들이 주시하고 있는 군의 수장으로서 내 행동 하나가 백 마디, 천 마디 정훈교육보다 낫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은 비록 적대국일지라도 국가원수에 대해서는 군례(軍禮)를 지킨다”며 “만약 내가 대인(大人)이었다면 간단한 목례 정도는 했을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참혹한 연평도 현장을 목격하고 온 그는 다시 군인으로 돌아간 듯 쉽게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현장은 어땠나.
“처참했다. 군의 피해도 그렇지만 민가에 포탄이 떨어지고 지붕이 뚫리고….”
-연평도 포격 도발을 어떻게 봐야 하나.
“천안함 폭침 사건과 이번 포격 도발은 우리가 간과한 측면이 있다. 휴전선 감시초소(GP)에서의 총격전이나 북방한계선(NLL) 해상에서의 대결에서 한 단계 더 진행된다면 연평도나 백령도 등을 공격할 수 있겠다고 예측은 했는데, 실제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간과했다.”
-북한 측에서도 충분히 민간 피해를 예상했을 텐데.
“포탄 자체가 122㎜ 방사포였다. 이건 특정 타깃을 제압하는 무기가 아니다. 민간 피해를 예상하면서도 했다는 거다.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어떤 짓도 할 수 있는 집단이 바로 북한이라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군과 정부의 대응에 대해 그는 할 말이 많았다. 강하게 반격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강하지 않은 군은 쓸모가 없다”고 강조했다.
-대응이 잘못됐다는 지적이 많다.
“북한의 도발에 항상 말로만 떠들고 국제 기구에 호소하고 당분간 대화 안 하고, 대응이 이런 식이니 북한이 ‘감히 우리를 건드리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천안함 사건 때도 군사적 타격을 즉각 하든지, 상응하는 적 함정을 격침시켜버리든지, 해안 봉쇄를 하든지, 아니면 최소한 우리 군 단독으로 무력시위라도 했어야 했는데 심리전조차 제대로 못 하지 않았느냐.”
-교전규칙과 확전 여부가 논란이다.
“남북의 포병 전력 비대칭성이 큰 상황에서 포로 도발했으니 포만 가지고 응징해야 한다? 말이 안 되는 얘기다. 공중 전력을 썼어야 한다. 적이 도발한 그 지점을 전투기로 반격하는 것은 확전이 아니다. 자위 차원의 반격을 하는데 그걸 왜 확전이라고 생각하나. 우리가 사고의 틀을 깨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전규칙을 우리가 만들어 놓고, 교전규칙이 이러니까 이렇게밖에 못 했다? 거기에 얽매여서…. 한심한 거다.”
-장관이었다면 바로 타격 지시 내렸겠나.
“1차 도발 때 바로 전투기로 때리라고는 안 했을 것이다. 자주포로 응사하라고 했겠지. 그렇지만 1·2차 사격 사이에 시간이 있고, 상황을 볼 때 민가에도 피해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바로 응징했어야 한다. 군인의 본분이 뭔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 아닌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위협받고 있는데 교전규칙에만 얽매여 있는 게 말이 되는가.”
-현 시점에서 북한에 경고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지난번 국방위에서 말한 적이 있다. 서해상에서 한·미 연합훈련 진행되지만 지난 23일과 마찬가지로 연평도에서 똑같이 해상 사격훈련 해야 한다. 북이 또 도발한다면 불바다를 만들어야지. 군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군은 강해야 한다. 똘똘 뭉쳐서 강해야 써먹을 수 있다. 소금이 짜지 않으면 써먹을 수 있나. 소금을 많이 넣느냐 조금 넣느냐는 요리사가 하는 거지만 일단 소금은 짜야 한다. 군을 어떻게 쓸 것인지는 통수권자가 알아서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군은 강해야 쓸모가 있다.”
-이번 사태에서 강한 모습을 못 보여줬다고 생각하는 건가.
“연평도의 해병대 용사들은 침착하게 용기를 잃지 않고 대응 사격했다. 기술적으로 미비한 면도 있지만 현지에서는 할 만큼 했다고 본다. 문제는 합동성 차원에서 육·해·공군 전투력을 통합 운용하는 책임자가 스스로의 교전규칙을 깨고 과감하게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과감하게 반격했다면 천안함과 과거의 북한 도발 때 대응 못한 거 전부 만회하고 우리 국민들 사기가 올라갈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위기라는 게 위험한 기회 아니냐. 기왕 벌어진 상황이라면 군 입장에서는 위험하더라도 좋은 기회로 활용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해군 함정으로 반격한다든지, 공군기로 반격하는 건 어느 선에서 이뤄지는 것인가.
“해군 함정에서 반격하는 문제는 해군 작전사령관이나 2함대사령관이 결정할 사안이다. 공군기가 출격하는 문제는 합동참모본부에서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공군기 반격하려면 미군과 협의해야 하는 것인가.
“평시 작전통제권을 우리가 갖고 있으니 합참에서 결정하면 된다. 평상시 적의 침투 상황이나 국지도발 상황은 우리가 결정하는 거다. 우리 전력을 우리가 활용하고 자위권 차원에서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쓴다는 데 뭐가 문제인가. 대범하게, 기초적으로 생각하면 된다. 자위권이라는 거는 범세계적으로, 유엔에서도 다 통용되는 거다.”
남남갈등에 대해 그는 의외로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 아니라고 말했다. 보수 인사로서 비교적 진보적이었던 정권의 장관으로 일했던 경험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였다.
-진보와 보수 간 남남갈등 문제가 제기된다.
“남남갈등이라는 건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보든 보수든 북한의 실체를 아는 그룹과 모르는 그룹의 차이이고 갈등이다.”
-하지만 일반적 인식은 그렇지 않다.
“이분법적 사고는 서로 간 화합을 도모하는 데 좋지 않은 요소다. 극우와 극좌를 제외한다면 나머지는 실체 알고서 화합하고 융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국회 대북결의안 때도 의견이 다소 달랐다.
“정치 성향은 철학일 수 있고 아집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집은 상당히 위험하다. 허상을 보고서 그런 것인지, 실상을 보고서도 그렇게 하는 것인지는 본인들이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 내에서는 햇볕정책 10년이 포탄으로 돌아왔다고 하는 의견이 많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군도 외딴섬이 아니니까, 정권에 따라 사회 분위기의 영향을 일부 받을 수 있지만 군이 적을 생각하지 않은 때가 없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이든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든 군은 국토를 방위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본연의 임무를 지키는 데 어긋남이 없었다.”
-국방예산 증액을 놓고 국회에서 말이 많다. 국방예산만 보면 노 대통령 당시엔 매년 증가율이 7∼8%대로 유지됐는데 오히려 이명박 정권 들어 5% 밑으로 떨어지는 등 일반적인 생각과 다른 부분이 꽤 있다.
“국방예산 증가율이 하락한 것은 이명박 정부 초기의 경제위기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하는 최대의 서비스는 안보인데 제대로 투자가 안 되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지역구 예산이라면 너도나도 달려들면서 지역구 없는 국방예산은 막 잘라서 자기 지역구로 돌리려 하는 것 보고 엄청 실망했다. 의원 첫해에 예결위원 하면서 호소하고 하소연해도 마이동풍이더라.”
-노 전 대통령과는 생각이 잘 안 맞을 것 같은데 어땠나.
“장관이 대통령께는 솔직해야 한다. 내 생각이 보수고, 반면 대통령은 진보적 성향 가졌다 해도 그는 나의 대통령, 우리의 대통령이다. 국민이 뽑아준 통수권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관으로 일할 때 노 대통령께 뭐든 솔직하게 얘기했다. 국방개혁 하려면 예산 필요하니 법적으로 보장해 달라고 요구해 만든 게 국방개혁안 법률이다.”
-의견 충돌도 많았을 것 같다.
“노 전 대통령이 전방 부대를 자주 방문했다. 그럴 때는 군에 힘을 줬다. 그런데 가끔은 ‘군 지휘부가 미국 바짓가랑이 잡고 거들먹거린다’는 식의 얘기를 해서 힘 빠지게 했다. 국무회의 티타임 때 ‘대통령이 그런 말 하시면 저만 보수단체에게 죽어납니다’라고 하소연했더니 크게 웃으며 ‘알았어요. 그냥 하는 소리예요’ 그러면서 더 이상 얘기 안 하셨다. 이거 내가 너무 또 미화시킨다(웃음). 노 전 대통령은 당시 군에 부정적인 청와대 분위기를 감안해서인지 국무회의 후에 나를 따로 불러 보고받고 얘기를 들어준 적이 많았다.”
광주 출신인데다 노무현 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지낸 그는 2008년 총선 당시 각 당의 ‘섭외 1순위’ 후보였다. 민주당행이 유력하게 점쳐졌으나 그는 한나라당을 택했다.
-한나라당으로 간 이유는.
“당시에도 민주당은 손학규 대표였는데 세 번쯤 만났나? 내가 원래 성향이 보수인데다 주변에서 다들 민주당 가면 힘들 것이라고 말렸다. 그래서 손 대표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요즘도 만나면 꼭 인사하고, 야당 의원들과 관계도 좋다.”
-비례대표를 마친 뒤 다음 총선에선 어느 지역을 고민하고 있나.
“내가 어디 지역구 나가서 내 얼굴 내밀고 나 찍어주십쇼 할 수 있는 사람 아니다. 지역구 출마 안 한다 그러고 다니니까 주변 사람들이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단언하지 말라고. 그래서 알았다고 하고 말 안 한다. 하지만 속으로는 결심한 바가 있다.”
◇김장수 의원은
야전 주요 지휘관과 정책부서의 작전·전략 분야 핵심 보직을 거쳐 군 시절 대표적인 작전·전략통으로 꼽혔다. 온화하고 합리적인 성격이면서도 업무에 대해서는 철두철미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광주 출신으로 광주일고와 육사(27기)를 나와 1군사령부 작전처장과 6사단장, 7군단장, 합참 작전본부장,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육군참모총장을 거쳐 국방부 장관으로 일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여의도에 입성했다.
정승훈 유성열 기자 shjung@kmib.co.kr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 당시 국방장관으로 북한을 방문한 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하면서 목례조차 하지 않아 ‘꼿꼿 장수’란 별명을 얻었다. 당시 국방부에서는 그 배경을 놓고 별도 해명 자료를 내기도 했고, 그 자신은 “고개 숙이면 머리 부딪힐 거 같아서 안 했다”는 얘기를 농담처럼 하기도 했다.
지난 26일 밤, 국회 국방위원 자격으로 연평도를 방문하고 돌아온 한나라당 김장수(62) 의원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당시 왜 꼿꼿했는지를 묻자 “사실은 그냥 고개 숙이고 싶지 않았고, 고집대로 하고 싶었다”며 “60만 장병들이 주시하고 있는 군의 수장으로서 내 행동 하나가 백 마디, 천 마디 정훈교육보다 낫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은 비록 적대국일지라도 국가원수에 대해서는 군례(軍禮)를 지킨다”며 “만약 내가 대인(大人)이었다면 간단한 목례 정도는 했을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참혹한 연평도 현장을 목격하고 온 그는 다시 군인으로 돌아간 듯 쉽게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현장은 어땠나.
“처참했다. 군의 피해도 그렇지만 민가에 포탄이 떨어지고 지붕이 뚫리고….”
-연평도 포격 도발을 어떻게 봐야 하나.
“천안함 폭침 사건과 이번 포격 도발은 우리가 간과한 측면이 있다. 휴전선 감시초소(GP)에서의 총격전이나 북방한계선(NLL) 해상에서의 대결에서 한 단계 더 진행된다면 연평도나 백령도 등을 공격할 수 있겠다고 예측은 했는데, 실제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간과했다.”
-북한 측에서도 충분히 민간 피해를 예상했을 텐데.
“포탄 자체가 122㎜ 방사포였다. 이건 특정 타깃을 제압하는 무기가 아니다. 민간 피해를 예상하면서도 했다는 거다.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어떤 짓도 할 수 있는 집단이 바로 북한이라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군과 정부의 대응에 대해 그는 할 말이 많았다. 강하게 반격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강하지 않은 군은 쓸모가 없다”고 강조했다.
-대응이 잘못됐다는 지적이 많다.
“북한의 도발에 항상 말로만 떠들고 국제 기구에 호소하고 당분간 대화 안 하고, 대응이 이런 식이니 북한이 ‘감히 우리를 건드리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천안함 사건 때도 군사적 타격을 즉각 하든지, 상응하는 적 함정을 격침시켜버리든지, 해안 봉쇄를 하든지, 아니면 최소한 우리 군 단독으로 무력시위라도 했어야 했는데 심리전조차 제대로 못 하지 않았느냐.”
-교전규칙과 확전 여부가 논란이다.
“남북의 포병 전력 비대칭성이 큰 상황에서 포로 도발했으니 포만 가지고 응징해야 한다? 말이 안 되는 얘기다. 공중 전력을 썼어야 한다. 적이 도발한 그 지점을 전투기로 반격하는 것은 확전이 아니다. 자위 차원의 반격을 하는데 그걸 왜 확전이라고 생각하나. 우리가 사고의 틀을 깨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전규칙을 우리가 만들어 놓고, 교전규칙이 이러니까 이렇게밖에 못 했다? 거기에 얽매여서…. 한심한 거다.”
-장관이었다면 바로 타격 지시 내렸겠나.
“1차 도발 때 바로 전투기로 때리라고는 안 했을 것이다. 자주포로 응사하라고 했겠지. 그렇지만 1·2차 사격 사이에 시간이 있고, 상황을 볼 때 민가에도 피해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바로 응징했어야 한다. 군인의 본분이 뭔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 아닌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위협받고 있는데 교전규칙에만 얽매여 있는 게 말이 되는가.”
-현 시점에서 북한에 경고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지난번 국방위에서 말한 적이 있다. 서해상에서 한·미 연합훈련 진행되지만 지난 23일과 마찬가지로 연평도에서 똑같이 해상 사격훈련 해야 한다. 북이 또 도발한다면 불바다를 만들어야지. 군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군은 강해야 한다. 똘똘 뭉쳐서 강해야 써먹을 수 있다. 소금이 짜지 않으면 써먹을 수 있나. 소금을 많이 넣느냐 조금 넣느냐는 요리사가 하는 거지만 일단 소금은 짜야 한다. 군을 어떻게 쓸 것인지는 통수권자가 알아서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군은 강해야 쓸모가 있다.”
-이번 사태에서 강한 모습을 못 보여줬다고 생각하는 건가.
“연평도의 해병대 용사들은 침착하게 용기를 잃지 않고 대응 사격했다. 기술적으로 미비한 면도 있지만 현지에서는 할 만큼 했다고 본다. 문제는 합동성 차원에서 육·해·공군 전투력을 통합 운용하는 책임자가 스스로의 교전규칙을 깨고 과감하게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과감하게 반격했다면 천안함과 과거의 북한 도발 때 대응 못한 거 전부 만회하고 우리 국민들 사기가 올라갈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위기라는 게 위험한 기회 아니냐. 기왕 벌어진 상황이라면 군 입장에서는 위험하더라도 좋은 기회로 활용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해군 함정으로 반격한다든지, 공군기로 반격하는 건 어느 선에서 이뤄지는 것인가.
“해군 함정에서 반격하는 문제는 해군 작전사령관이나 2함대사령관이 결정할 사안이다. 공군기가 출격하는 문제는 합동참모본부에서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공군기 반격하려면 미군과 협의해야 하는 것인가.
“평시 작전통제권을 우리가 갖고 있으니 합참에서 결정하면 된다. 평상시 적의 침투 상황이나 국지도발 상황은 우리가 결정하는 거다. 우리 전력을 우리가 활용하고 자위권 차원에서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쓴다는 데 뭐가 문제인가. 대범하게, 기초적으로 생각하면 된다. 자위권이라는 거는 범세계적으로, 유엔에서도 다 통용되는 거다.”
남남갈등에 대해 그는 의외로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 아니라고 말했다. 보수 인사로서 비교적 진보적이었던 정권의 장관으로 일했던 경험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였다.
-진보와 보수 간 남남갈등 문제가 제기된다.
“남남갈등이라는 건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보든 보수든 북한의 실체를 아는 그룹과 모르는 그룹의 차이이고 갈등이다.”
-하지만 일반적 인식은 그렇지 않다.
“이분법적 사고는 서로 간 화합을 도모하는 데 좋지 않은 요소다. 극우와 극좌를 제외한다면 나머지는 실체 알고서 화합하고 융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국회 대북결의안 때도 의견이 다소 달랐다.
“정치 성향은 철학일 수 있고 아집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집은 상당히 위험하다. 허상을 보고서 그런 것인지, 실상을 보고서도 그렇게 하는 것인지는 본인들이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 내에서는 햇볕정책 10년이 포탄으로 돌아왔다고 하는 의견이 많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군도 외딴섬이 아니니까, 정권에 따라 사회 분위기의 영향을 일부 받을 수 있지만 군이 적을 생각하지 않은 때가 없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이든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든 군은 국토를 방위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본연의 임무를 지키는 데 어긋남이 없었다.”
-국방예산 증액을 놓고 국회에서 말이 많다. 국방예산만 보면 노 대통령 당시엔 매년 증가율이 7∼8%대로 유지됐는데 오히려 이명박 정권 들어 5% 밑으로 떨어지는 등 일반적인 생각과 다른 부분이 꽤 있다.
“국방예산 증가율이 하락한 것은 이명박 정부 초기의 경제위기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하는 최대의 서비스는 안보인데 제대로 투자가 안 되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지역구 예산이라면 너도나도 달려들면서 지역구 없는 국방예산은 막 잘라서 자기 지역구로 돌리려 하는 것 보고 엄청 실망했다. 의원 첫해에 예결위원 하면서 호소하고 하소연해도 마이동풍이더라.”
-노 전 대통령과는 생각이 잘 안 맞을 것 같은데 어땠나.
“장관이 대통령께는 솔직해야 한다. 내 생각이 보수고, 반면 대통령은 진보적 성향 가졌다 해도 그는 나의 대통령, 우리의 대통령이다. 국민이 뽑아준 통수권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관으로 일할 때 노 대통령께 뭐든 솔직하게 얘기했다. 국방개혁 하려면 예산 필요하니 법적으로 보장해 달라고 요구해 만든 게 국방개혁안 법률이다.”
-의견 충돌도 많았을 것 같다.
“노 전 대통령이 전방 부대를 자주 방문했다. 그럴 때는 군에 힘을 줬다. 그런데 가끔은 ‘군 지휘부가 미국 바짓가랑이 잡고 거들먹거린다’는 식의 얘기를 해서 힘 빠지게 했다. 국무회의 티타임 때 ‘대통령이 그런 말 하시면 저만 보수단체에게 죽어납니다’라고 하소연했더니 크게 웃으며 ‘알았어요. 그냥 하는 소리예요’ 그러면서 더 이상 얘기 안 하셨다. 이거 내가 너무 또 미화시킨다(웃음). 노 전 대통령은 당시 군에 부정적인 청와대 분위기를 감안해서인지 국무회의 후에 나를 따로 불러 보고받고 얘기를 들어준 적이 많았다.”
광주 출신인데다 노무현 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지낸 그는 2008년 총선 당시 각 당의 ‘섭외 1순위’ 후보였다. 민주당행이 유력하게 점쳐졌으나 그는 한나라당을 택했다.
-한나라당으로 간 이유는.
“당시에도 민주당은 손학규 대표였는데 세 번쯤 만났나? 내가 원래 성향이 보수인데다 주변에서 다들 민주당 가면 힘들 것이라고 말렸다. 그래서 손 대표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요즘도 만나면 꼭 인사하고, 야당 의원들과 관계도 좋다.”
-비례대표를 마친 뒤 다음 총선에선 어느 지역을 고민하고 있나.
“내가 어디 지역구 나가서 내 얼굴 내밀고 나 찍어주십쇼 할 수 있는 사람 아니다. 지역구 출마 안 한다 그러고 다니니까 주변 사람들이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단언하지 말라고. 그래서 알았다고 하고 말 안 한다. 하지만 속으로는 결심한 바가 있다.”
◇김장수 의원은
야전 주요 지휘관과 정책부서의 작전·전략 분야 핵심 보직을 거쳐 군 시절 대표적인 작전·전략통으로 꼽혔다. 온화하고 합리적인 성격이면서도 업무에 대해서는 철두철미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광주 출신으로 광주일고와 육사(27기)를 나와 1군사령부 작전처장과 6사단장, 7군단장, 합참 작전본부장,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육군참모총장을 거쳐 국방부 장관으로 일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여의도에 입성했다.
정승훈 유성열 기자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