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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연예] “이상에게 여성은 ‘여급’이었죠.”
지난 26일 폐막한 연극 ‘이상 12月12日’의 주인공 배수빈(33)씨는 이상의 여성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배씨가 연기한 이상은 그의 첫사랑인 마담 금홍과 이화여전을 나온 마지막 여인 변동림 사이에서 방황했고 괴로워했다. 이상 100주년을 기념해 18일부터 9일간 화성시 병점동 화성아트홀에서 공연됐던 이상 12月12日. 기획자가 배우 조재현이어서 화제가 됐던 창작극이다. 21일 화성시 인근 중학교의 단체 관람이 끝난 오후 4시 화성아트홀 분장실에서 배수빈씨를 만났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 고스란히 옮겨봤다.
-너무 좋아요. 아이들은 웃었지만.
“아유, 근데 아이들이 생각보다 잘 보던데요.”
-살이 많이 빠지셨다고 하던데.
“네. 한 3kg정도 빠졌어요. 이상이 뚱뚱하고 그러면 말도 안되고 해서.”
-공연 끝나고 나서 괜찮으세요? 근데 뭐랄까 광인 같은 느낌?
“아 그래요?”
-격렬하던데요.
“잡을 때 좀 힘들었어요. 끝나면 뭔가 쑥하고 빠져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음 진짜 그럴 것 같아요. 연극은 두 번째시죠.
“네. 두 번째. 이번이 좀 더 재밌어요. 자유롭고. 첫 번째 했던 공연은 이해제 연출(다리퐁 모단걸)하고 같이 했었는데 그건 뭐 여러 가지 재미있는 연극이었어요. 저는 재미있는 캐릭터는 아니었지만. 근데 이번 김낙형 연출이 한 것은 실험적이고 현실과 실제를 넘나들면서 무대가 펼쳐지니까 색다르고. 연출 스타일도 많이 다르고 색깔이 다르니까 좋은 경험인 거 같아요.”
-서울에서도 했으면 좋겠어요.
“아 그렇죠. 지금 경기도에서 이걸 지원하는 작품이라. 아마 이게 대학로에서도 좋으면 공연되지 않을까.”
-이상에 대해 평소 관심이 있었나요?
“아니오. 별로 관심 없었어요. 저는요. 그냥 시는 좋아하는데요. 이상 시는 어떻게 보면 너무 어렵잖아요. 그리고 뭔가 감성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고. 그냥 대사 그대로인 것 같아요. 나열 내지는 여러 가지 그런. 지금도 보면 신기했을 것 같아요. 서양문물이 마구 들어오고 혼돈의 시기잖아요. 저는 사실은 감수성이 느껴지는 문태준 시인이나 황인숙 시인이나 이런 시인들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런 시인들과는 또 다르게. 이상의 시 중에서는 ‘이런 시’ 정도가 뭔가 그래도 다가오는 부분이 좀 있었는데. 그래서 공부를 했어요. 이상에 대해서 자료를 찾거나 그 사람의 생애나 뭐 아니면 구인회하고의 관계나 이런 자료들을 찾으러 다니면서 공부를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아 이 사람이 그런 것들에 대해서 몰랐던 사람이 아니고, 그 사람 색깔 자체가 표현해 내는 방식 자체가 달랐구나.’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 뭔가 이해가 가면서, 이해보다는 연민이 더 갔죠. 그래서 낙형 연출하고 처음에 얘기를 할 때도 “연출님 저는 솔직히 시로써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은 힘들 것 같아요. 왜냐면 (감정에) 호소를 하는 시들은 아니니까. 저는 이상이란 사람이 요절했고 또 자기가 좋아하는 것, 그리고 자기 문학세계에 대해서 온몸을 바쳐서 끝까지 던졌다. 그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과 또 예술가적인 위대함을 함께 나타내고 싶다.” 대본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굉장히 좀 오래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이상을 몰랐던 사람이 이 연극을 본다면 조금이나마 그 사람의 절박함이라던지 죽음을 눈앞에 두고 문학을 위해서 다시 자신을 던진 그런 모습들에 대해서 뭔가 울림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연습을 많이 하셨어요?
“아뇨 뭐, 한 20일 정도 했나요. 왜냐면 창작극이다 보니까 연출님이 대본을 쓰고 또 다시 회의하고 고치시고. 전 배우와 전 스텝들이 20일 동안 모여서 정말 날새는 줄도 모르고 계속 연습을 했죠.”
-이상 역할은 MBC 드라마 ‘동이’ 하실 때 제의 받으신 건가요?
“네, 동이 할 때 조재현 선배님께서 “너 뭔가 잘 풀어내지 못하는 것 같아, 너 공연 해야 되겠다” 이런 얘기를 하시면서. 사실 저도 동이를 하면서 갈증이 있었거든요. 재현 선배님이 오래전부터 저를 아시는 선배님이시다 보니까. 그래서 “선배님 저 너무 힘들어서 못할 것 같아요” 처음엔 거절을 했어요. 근데 자꾸 집에 가서 침대에 누웠는데 머리맡에서 자꾸 생각이 나는 거예요. 이거를 꼭 해야 할 것 같은. 그래서 다음날 전화를 드려서 “선배님 저 하겠습니다” 해서 힘들어도 이게 제 팔잔가 보죠 (웃음)”
-역할도 아셨고요?
“네. 이상을 그리고 싶다. 재현 선배님께서 원래는 그 곱추화가(구본웅)를 하시려다가 구본웅에서 다시 이상으로 바꾸면서 그 삼각관계와 금홍과 구인회와의 이야기들 이런 것들을 낙형 연출님에게 제안을 하시고, 쓰시고, 이렇게 된거죠.”
-조재현씨하고는 어떻게 아세요?
“예전에 같은 소속사에 있었어요. 초반에 제가 데뷔하고 나서 저 연기하는 것들을 봐주시고 조언도 많이 해주시고 굉장히 고마운 선배님이셨죠.”
-근데 동이는 시청자들이 많이 좋아했고 사실 성공한 드라마인데 본인은 갈증이 있으셨다는 거예요?
“음. 그렇죠. 어떻게 보면 무대는 배우가 자유로울 수 있는 그 게 있어요. TV라는 매체 자체가 어떻게 보면 아무리 자유롭고 싶어도 해야하는 몫이 있고 또 연출님이 이병훈 감독님께서 디렉션이 확실하신 분이니까 의도한 것을 그대로 해드려야 하기 때문에 뭔가 연기자로서는 자유롭고 풀어지고 막 이렇게 하고 싶은 열망 같은 건 많았죠.”
-참, 교회 오빠라는 얘기가 있더라고요?
“교회오빠요? 아 저 교회오빠는 아니에요. 교회오빠는 아닌데 혜진(한혜진)이가 자꾸 절 전도하려고 옛날부터 이제 “오빠 교회가야 해” 막 이러면서. 혜진이 참 착하죠. 되게 좋아하는 배우고 저 주몽을 하면서 만났는데 지금까지도 잘 되길 바라고 있고 또 모든 잘되길 바라고 그렇죠.”
-연기는 어떻게 처음 시작하시게 되셨어요.
“저는 뭐 어머니가 시켜 가지고 했어요.(웃음)”
-네?
“음 전 사실 사진이랑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요. 기타도 쳤었고 밴드에서 드럼도 쳤었고 그랬는데 제가 재능이 없는 것 같아서 그만뒀고요. 사진도 한번 찍어볼까 하다가 암실에서 약품냄새 맡고 그러다 보니 몸이 안좋아졌었어요. 어머니께서 네가 그렇게 하고 싶으면.. 연기자는 배 안 곯아 죽는다더라. 연기자를 해봐라. 그래서 하게 된 게.”
-처음 시작한 때가?
“스물 네 살 때. 군대 다녀오고 나서 했으니까.”
-목표를 이뤘나요? 최초의 꿈이라던가.
“저는 그냥 답이 안 나와서 지금까지 계속 하고 있는 거예요. 뭔가 끝이 안보이니까. 하나해도 또 끝나면 또 다른 게 기다리고 만들어야 하고. 그러니까 저를 자꾸 불태울 수 있는 도구들이 많이 있다보니까. 계속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상 역할이 힘들었죠?
“힘들죠. 힘든 역할인데 또 그만큼 자유롭게 놀고 나면 카타르시스가 있는 것 같아요. 그냥 논 것 같아요. 잘.”
-연극 끝나고 가장 하고 싶은 게 뭐에요?
“저야 뭐 어디 산에 좀 가고 싶은데요.”
-낮술도 좋아하신다면서요.
“네 그렇죠. 하하하. 사실 술을 즐기는 것은 아닌데요. 동이하면서 지진희 형이나 효주씨나 소연씨나 뭐 광수씨나 그 팀들이 너무 좋아요. 촬영, 대본 기다리면서 마셨던 낮술이 낮술모임이 되가지고 그렇게 지금. 끝나고 낮술 한번 먹어야죠. (웃음)”
-영화, TV 나오시는 분들이 연극무대에도 많이들 서잖아요. 하나의 트렌드처럼. 하지만 연극만 하는 분들 가운데는 배고픈 분들도 많고.
“음 그렇죠. 좋은 배우들이 너무 많아요. 연극판에. 근데 생활고에 시달리시는 분도 많고. 연기만 해서 자기의 의식주를 해결한다는 것이 굉장히 힘들거든요. 제가 TV나 영화 위주로 하지만 공연에 와서 이렇게 하는 건, 이건 재현선배님도 함께 가지고 계신 생각인데, 이게 교류가 될 수 있거든요. 좋은 감정을 가진 좋은 배우들이 TV나 영화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가 될 수도 있어요. 왜냐면 감독님들이 보러 올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매칭이 되면서 아 저런 좋은 배우들이 굉장히 많았구나 하는 홍보도 될 수 있고. 무대라는 곳은 굉장히 신성한 곳이기 때문에 저한테는 제 것을 다 쏟아낸다고 해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또 그분들이 쏟아낸 만큼 함께 해주시고 그런 부분들도 감사하고. 제가 뭐 욕심이 많아서 그런가봐요. TV에서도 영화에서도 검증이 되지 않은 친구들보다는 뭔가 내공을 쌓고 사람들에게 뭔가 울림을 줄 수 있는 배우들이 뭔가 좀 더 바람직하지 않나. 네 뭐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 제가 뭐 이렇게 넘나들면서 그런 부분들이 좀 조금이나마 소통이 될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것 같고요. 저는 또 제 나름대로의 에너지를 무대에서 찾아가는 게 있기 때문에 좋은 것 같고. 같은 무대에 선 다는 것은 즐거운 일인 것 같아요.”
-조재현씨가 멘토인가요?
“그렇죠. 배우들의 갈증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아세요. 본인이 힘들었던 것도 있으시고 어려웠던 경험, 잘됐던 때 그렇지 않은 때 다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을 보시고 제안도 해주시고 좋은 이야기도 해주시고 그런 선배님이시죠.”
-조재현씨가 기획자로 참여했죠?
“연극열전 기획을 하고 계시고 그리고 경기도(문화예술의전당, 경기도공연영상진흥회) 위원장님이시니까. 또 어떻게 보면 그분의 메인스트림이 대학로 연극이잖아요. 그러니까 보통 지방에 있는 분들이 연극을 한편 보려면 대학로로 올라와야 하는데 경기도 그 위치를 하고 계시니까 ‘그러면 경기도에서 먼저 시작된 연극들을 대학로로 끌어와보자’하는 게 조재현 선배님의 취지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게 여기서 먼저 초연을 했고 좋아서 이쪽으로 와서 한다. 그런 것들은 좀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주로 중년분들이 많이 와서 보시나요?
“그쵸. 아무래도 제가 어머님들에게(웃음)”
-꿈이 있나요?
“없어요. 전.”-꿈이 없어요?
“글쎄요 꿈이라기 보다는 .. 칸영화제에 서고 싶어요 내지는 그런 것 하고 싶어요. 이런 것들 보다 그냥 제 안의 제 모습들을 많이 찾고 갔으면 좋겠어요. 그게 바람이에요. 여러 작품을 만날 때마다 또 다른 작품들을 끄집어내서 보여주고. 되게 힘든 작업이긴 한데 제가 그러면서 희열을 느끼고 살아있음을 느끼고 또 그런 쾌감이 있으니까요. 배우 하는 동안 내안에 있는 모습들을 많이 많이 보고 그러고 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상 연기하면서 우울하진 않았어요? 연예인 자살이라던가 그런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울했죠. 근데 뭐 저는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해요. 에너지의 환원이죠. 스트레스를 어떻게 자기가 환원하고 좋은 에너지로 바꿔서 되돌려주느냐는 문제인 것 같아요. 저같은 경우는 산을 간다던가, 마음을 나누는 친구들과 교류를 한다던가 내가 모르는 모습들 그런 모습들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못 나누니까 사람들이 고립되고 그런 것 같아요. 친구들을 많이 포섭하고 힘도 되주고 힘도 받고.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무대에 서면서도 관객들에게도 받고 주고. 그런 것들이 이 직업의 매력이 아닐까.”
-좋아하는 배우는 누구에요?
“정재영 선배님 좋아해요.”
-진지해 보이시는데. 평소 성격은 어떠세요. 조용하신 편이세요?
“이래요. (웃음) 다 똑같죠 뭐.”
-배우가 되고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일상생활에서 달라진 건 없죠. 뭔가 좀 맛있는 걸 사먹을 수 있다? (웃음) 그리고 아이패드를 갖고 싶었는데 아이패드를 살 수 있다?”
-이상 12월12일 대사가 너무 어렵던데요.
“네 잘 안 쓰는 단어니까. 뭐 에피그램이라던지. 실제 이상은 찬란한 광채가 육래할 것이라던가 그렇게 말을 했어요. 자의식이 굉장히 강했던 사람이죠. 장광설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말 재주도 이상한. 언어유희같은. 뭔가 혼자 우주를 달려갔던 사람이 아닌가.”
-이상이 지금 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요?
“음 지금 시대에 태어났으면 백남준씨 같은 아티스트처럼 또 다른 뭔가를 추구 했겠죠.”
-배우는 종합예술이죠?
“그렇죠. 배우라고 배우라고 하더라고요. 뭐든 배우라고.”
-이상처럼 되시면 안되는데(웃음).
“아이고 저는 이 친구는 좀 어려워요. 공감 가는 부분은 있어요. 억압된 시기에 새로운 문물들이 얼마나 신기했겠어요. 동경이 얼마나 컸겠어요. 그 시대에 크로스오버를 진행했던 예술가가 아닌가. 뭐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그림 만으론 한계가 있으니까 그걸 문학으로 그림같이 그리고. 재밌는 친구 같아요. 절박했고 죽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더 몰두를 할 수 있었던 것 같고.”
-한편으론 무능력자였요.
“네 그 시대의 룸펜이에요. 이 작품을 도대체 뭘로 감동을 줘야하지? 얘는 그 시대에 방안에 쳐 박혀서 글 쓴 앤데. 어떻게 그거를 사람들에게. 왜냐면 김구선생도 아니고요. 김좌진 장군, 안중근도 아니고 뭔가 드라마틱한 그게 없는 거예요. 아, 그럼 이 사람의 예술혼이다. 자기가 쓰고자 했던 글에 대한 치열함 그리고 젊은 시절에 간 안타까움. 이런 부분들을 녹여보자 했죠.”
-이상에게 여성은 어떤 존재였나요?
“워낙에 이상은 여자들을 보는 생각 자체가 여급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소설이나 그런 것들을 보면은 여자분들이 불쾌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서도 사랑했죠. 성녀와 창녀와 그런 것들을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던 그런 사람이 아니었나 싶어요.”
-배수빈씨의 여성에 대한 생각도 궁금한데요?
“보호해야하는 사람이죠. 사랑받아야 되는 사람? 그렇게 생각해요. 신성한 존재. 스스로가 소중히 여기고 아낀다면 사람들도 아껴줄 것 같아요. (여성들은) 되게 예쁘죠. 진짜 예술의 모티브는 여자에서 오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클림트라던지 제가 어제 잠깐 쉴 때 클라라라는 영화를 봤는데 거기 슈만과 브람스도 그랬고. 여인을 보고 예술적 감성을 깨우치는 예술가가 너무도 많아요. 그래서 저는 여성분들이 너무 멋있는 것 같아요. 영감을 주는 존재들인 것 같고. 뭐 그래요.”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경선 기자 boky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