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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정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 권노갑 전 의원. 그는 국회의장이나 당 대표를 지내지 않았어도 야당의 가장 큰 어른으로 대접을 받는다. 김대중 대통령이 이끌었던 동교동계의 좌장으로 여전히 야당 내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는 2011년에 당 상임고문에 추대되었다. 그에게 신묘년 한국정치의 나갈 길에 대해 들어보았다.
금년 만 81세인 권 고문은 여전히 60대처럼 정정해 보였고, 걸음걸이나 말에서도 전혀 ‘노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지금도 하루에 27홀, 많으면 36홀 골프를 친다고 했다.
-참 건강해 보이십니다. 올 새해부터 민주당 상임고문이 되셨습니다. 복권은 안 돼 총선에 출마는 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현실정치로 돌아오셨습니다. 소감이 어떠신지요?
“고맙습니다. 그동안 민주당 상임고문은
전직총리, 당 대표, 국회의장을 지냈던 분들로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김상현 전 의원과 제가 상임고문으로 추대됐어요. 김상현 전 의원은 전 민주화 추진협의회 공동의장 자격으로 추대됐습니다. 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모시고 민주화 운동을 했던 공로를 인정받아 상임고문으로 추대됐습니다. 저는 평의원 출신입니다. 1월 3일 날 위촉 환영식을 했어요. 내가 대표로 감사인사를 했어요. 1999년에 새천년민주당 상임고문으로 위촉받았다가 이번에 다시 복귀한 것입니다. 12년 만에 다시 현실정치로 돌아왔습니다. 감개무량하면서도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솔직히 우리 정치권에는 경륜 있는 원로 정치인들이 별로 없습니다. 각 정당들이 새로운 피 수혈이라는 세대교체 명목으로 원로들을 퇴출시켰죠. 결국 노장청의 조화가 깨졌습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민주적으로 수평적인 정권교체 이뤘을 때 노장청을 규합해서 정권을 창출했었습니다. 민주당도 그 기조를 갖고 노장청의 힘을 모아서 지혜를 얻고 정책정당으로 탈바꿈해야 합니다. 장외투쟁 일변도로 하지 말고 원내외투쟁을 지혜롭게 병행해야 합니다. 국민적 지지를 얻어야만 정권재창출이 가능합니다. 인사청문회도 그렇지만 지금 전국을 휩쓸고 있는 구제역 문제도 원내에 들어가서 대책을 논의해서 빨리 해결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농축산인들의 피해를 가급적 빨리 줄여야 합니다. 청년들의 패기와 용기도 중요하지만 노장년들의 지혜와 경륜도 중요합니다.
-신묘년 새해는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해입니다. 내년에 있을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민심을 선점하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한해 우리 정치의 나갈 길을 말씀해 주시죠?
“민주당 입장에서 생각해보겠습니다. 무엇보다도 국민이 신뢰하는 정당이 되어야 합니다. 수권정당이라는 이미지를 확실히 심어줘야 합니다. 수권정당으로 정책대안을 보여줘야 합니다. 무엇보다 지금의 긴장국면에 놓인 남북관계를 빨리 긴장 완화시켜서 국민들이 안심하고 평화롭게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되돌려 놔야 합니다. 그래야 경제도 더욱 발전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국방, 외교, 복지, 교육 등에서 확실한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민주당 정책위 뿐 아니라 각계 전문가들을 모아 당의 자문기구를 만들어야 합니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 후보 때를 생각해보면 그때 각계 전문가들로 자문단을 만들어 많은 의견을 수렴했습니다. 확실한 집권계획 청사진을 만들어서 국민들에게 비전과 희망을 보여줘야 합니다. 국민은 그런 민주당을 원하고 있습니다.”
-내년 12월에는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있습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 만에 정권을 한나라당에 내주었습니다. 여당에는 박근혜라고 하는 유력한 대권후보가 일찍부터 움직이고 있습니다. 반면 야당에서는 손학규 대표가 대권을 겨냥한 행보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둘 사이에는 아직도 지지도에서 많은 격차가 벌어져있습니다. 다음 대선에서 야당이 이기려면 어떤 전략을 구사해야 하나요?
“가장 중요한 것은 야권 후보의 단일화입니다.”
-누구와의 단일화를 말씀하시나요?
“국민참여당이지요. 그 사람들은 원래 열린우리당 사람들이고 앞서 민주당 출신들이지요. 국민참여당 이재정 대표도 새천년민주당 사람입니다. 김대중 대통령 밑에서 정치를 해 국회의원을 했지요. 유시민 전 장관이 주도적으로 당을 만들었지만 바탕은 민주당에 두고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민주당과 다른 점이 없습니다. 지난 6.2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 후보로 유시민 전 장관이 출마했던 것도 민주당과의 야권연대를 통한 통합후보의 자격으로 출마한 것입니다. 종국에는 국민참여당도 민주당에 들어와야 합니다. 민주당 내에서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대선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분열을 해서는 절대로 한나라당을 이길 수 없습니다. 필요하다면 진보적인 민주노동당, 진보신당과도 연대를 해야 합니다.”
-민노당, 진보신당과는 통일문제 등 여러 면에서 민주당과 노선이 다른 것 아닌가요?
“대북 문제에 있어 민주당과 조금 다른 측면도 있습니다. 민노당이나 진보신당도 천안함 폭침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과 관련해서 국민들의 여론이 어떻다는 것은 잘 알 것이고, 노선의 변화가 조금은 있을 것으로 압니다. 북한의 세습체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지요. 크게 봐서 보수 세력과 진보세력의 대립이란 차원에서 진보세력의 대연합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대국적 차원의 발상전환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임기가 2년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과거 집권 경험이 있던 분으로서 현 정부에 대해 충고를 해주신다면?
“저는 두가지면에서 현 정부에 조언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는 대북문제를 포함한 통일문제이고, 두 번째는 인사문제입니다. 지난 김대중, 노무현 10년 동안 민주정부가 추진했던 대북 햇볕정책을 계승 발전시켜 나갔더라면 지금과 같은 일촉즉발의 남북대결 상황을 피해나갈 수도 있었을 텐데 북한을 포용하지 못하고 대북 강경정책으로 일관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조금 아쉽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사문제도 지나치게 측근위주의 인사로 일관하고 있는 것 같아 조금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대통령 측근들 가운데는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대통령이 제의를 하더라도 자신에게 맞지 않으면 가지를 말아야지요. 스스로 대통령에게 저는 이런 하자가 있습니다라고 사양할 줄 아는 측근들이 많아야 합니다.
-대통령보다 주변인이 더 문제인가요?
“저는 김대중 정부에서 ‘궐밖 대신’이었어요. 전면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조용히 도와주었죠. 저는 국민의 정부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16대 국회 때 저는 스스로 의원직을 양보하고 현역의원 32명을 물갈이 했습니다. 낙천된 현역의원 32명을 새로운 사람으로 바꾸고 그들을 적재적소에 다 소화했습니다. 당시 언론에서 저를 저승사자라고 불렀죠. 제가 먼저 자리를 내놓지 않고서는 물갈이를 할 수 없었어요. 그런데도 아무런 후유증이 없었어요.”
-정치권이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들도 더 이상 국민들로부터 존경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으며 신회를 회복하기 위한 처방은 무엇입니까?
“아마 의원들이 금배지를 달려고 무던 애를 썼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선된 뒤 개원국회에서 선서할 때를 생각해 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 엄숙한 국회의사당 신성한 자리에서 국민들에게 선서했던 마을을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당선 됐을 때나 선서했을 당시의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그 바탕위에서 국민과 국가를 위해 봉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 초심을 4년 동안 지켜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오늘처럼 국민들에게 외면 받는 정치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특히 어느 때보다 정치인들의 품위가 문제되고 있습니다. 특히 막말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막말’정치가 성행하면서 국민들의 마음을 더욱 불편하게 하고 있습니다. 정치 대선배로서 이런 정치 풍토를 어떻게 보십니까?
“국회에서 의정활동을 하다보면 여야 간에 충돌도 있기 마련입니다. 저는 역지사지 정신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상대방을 우선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참을 줄 알아야 합니다. 저도 어떨 때는 흥분해서 주먹도 쓰고 싶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것을 자제하고 역지사지 하는 심정을 갖게 되면 격한 감정도 풀어지더군요. 무엇보다 타협과 대화가 부족합니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타협점을 찾아야 합니다. 이번이 아니면 다음이라는 생각을 가져야하는데 한꺼번에 전부를 얻으려는 데서 충돌이 생기는 것이지요. 참 안타까워요. 국민들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고 있는데 의원들이 그 점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아요.”
-의사당 폭력도 참 문제입니다. 세계 신문들에 조롱거리가 되고 있지요. 고문께서 정치를 하셨던 13대 때와 비교해 주시지요.
“13대 국회 때는 폭력이 없었어요. 아마 여소야대 정국이기도 했지만 대화와 타협으로 국회를 이끌어 갔어요. 1988년에 여소야대가 되어서 민정당이 여당이고, 평민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은 야3당이었습니다. 오히려 야당이 정책과 대안을 많이 내서 국회가 원만하게 운영이 됐어요. 14, 15대 때도 지금과 같은 폭력국회의 모습은 전혀 없었습니다.
-민주당으로 이야기를 돌리겠습니다. 손학규 대표최고위원체제가 지난해 10월 출범했습니다. 때로는 장외투쟁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있습니다만 지금 야당이 잘하고 있는 것인가요?
“저는 민주당 손학규 대표의 인격과 경륜에 대한 신뢰를 보냅니다. 손 대표가 앞으로 우리 당을 위해 큰일을 해주길 바랍니다. 지난 3일 당 지도부와 상임고문단의 신년모임에서 밝힌 바와 같이, 때로는 장외투쟁도 해야 하겠지만 국회를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원내에서 활동이 훨씬 중요합니다. 바라건대 원내외 투쟁을 병행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인 질문을 드리죠. 금년에 만 81세시죠? 아직도 청년의 건강을 유지하고 계십니다.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 무엇인지요?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십니까?
“첫째로 욕심을 내지 않는 것입니다. 남을 미워하지도 않습니다. 미운 마음을 간직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게 해코지를 했던 사람에게도 나쁜 감정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그 사람이 잘 되길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마음이 편안합니다. 두 번째로 잠을 잘 잡니다. 단백질은 닭고기와 오리고기로 보충합니다. 섭생에 매우 주의합니다. 적당한 운동을 합니다.”
-무슨 운동을 하시나요?
“주로 골프를 합니다. 지난주에도 해남에 가서 골프를 했지요. 주로 과거 동지들과 하는데 임채정, 김원기 전 국회의장, 이해찬 전 총리 등과 잘 어울립니다.”
-제가 듣기에는 18홀이 아닌 27홀을 하신다는데…….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36홀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돌아가시기 전 하와이로 공부를 하러 가셨다가 그분이 서거하시는 바람에 중도에 그만두고 돌아오셨죠? 지금도 영어공부를 하시나요?
“예, 지금은 계속 코리아헤럴드 등 영자신문을 읽고요. 최근에는 장하준 교수가 쓴 경제서적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읽고 있습니다.
-기억력이 아주 좋으시네요.
“예. 기억력이 비상하다는 말은 많이 듣습니다. 아직도 사람 이름을 다 기억합니다. 아직까지 노인이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적이 없고, 늙고 있다는 생각은 더더욱 해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도 옛날 그대로예요. 육체적 연령이 50대 같아요. 4-50대한테도 육체적으로 질 것 같지 않은데요.”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권 고문의 발걸음은 매우 경쾌했다. 100세 건강은 문제없어 보였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강렬 국장기자 ry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