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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사회] 은결이는 두 돌이 채 안돼 세상을 떠났다. 평소처럼 아침에 어린이집에 간 은결이는 그러나 여느 때와 달리 어린이집 원장의 등에 업혀 집에 돌아왔다.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깨어나지 않은 채 한 달여 만에 가족 품을 떠났다. 타살의혹이 제기됐지만 경찰은 증거가 없다며 수사를 접었다. 검찰도 같은 결론을 내렸다. 그로부터 1년 5개월이 흘렀다. 은결이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2010년 6월 21일
월요일이었다. 경기도 광주시 D아파트 3층. 은결이는 집에서 오전 6시30분쯤 일어났다. 엄마(34)가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 은결이는 쌍둥이 동생 은찬이와 장난감을 갖고 놀았다. 오전 7시. 엄마는 회사에 갔다. 아빠 한 입, 아이들 한 입. 식사를 마쳤다. 아빠는 은찬이를 품에 안고, 외할머니(62)는 은결이 손을 잡고 집을 나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어린이집은 같은 아파트 1층이었다.
공인중개사인 아빠는 떨어지지 않으려는 쌍둥이를 들여보내곤 출근을 서둘렀다. 집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65)만 남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린이집으로부터 인터폰이 걸려왔다. 원장(36)은 은결이 눈이 부었다며 안약을 찾았다. 원장은 3층에 올라와 안약을 가지고 내려갔다.
오후 4시15분쯤. 할머니는 당뇨병 검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아파트 1층 현관에서 원장과 마주쳤다. “쌍둥이 잘 놀아요?”라고 묻자, 원장은 “네. 쌍둥이 잘 놀고 있어요”라고 답했다.
오후 6시. 원장이 은결이를 아기띠로 업고 집으로 올라왔다. 어린이집에 1년여 다니는 동안 아이를 업고 원장이 직접 찾아온 건 처음이었다. 원장은 은결이가 평소보다 늦게 잠이 들어 잠을 깨우려 했는데, 곤히 자고 있어 업고 왔다며 아이를 할머니 품에 안겼다. 할머니는 은결이를 거실 매트에 눕혔다. 할머니는 은결이의 상태가 심상찮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다. “얘가 왜 이래? 은결아! 은결아!” 방에서 통화 중이던 은결 아빠가 거실로 뛰쳐나왔다. 온 몸이 축 늘어진 은결이는 흔들어도 깨어나지 않았다. 아빠는 어린이집으로 내려가던 원장을 급히 불렀다. 아이의 상태를 보고 원장도 말했다. “얘가 왜 이러지?”
6시10분. 출동한 119 구급대원들이 은결이를 구급차에 실었고, 아빠와 원장이 동승했다. 분당 야탑동 차병원까지 이동하기까지 23분간 구급차안에서 은결이는 발작을 일으켰다. 입술 주위는 파랬으며, 몸 여기저기 멍이 보였다. 발작이 계속되자 의료진은 아이에게 근육이완제를 투여한 뒤 뇌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를 실시했다. 그 사이 연락을 받은 은결 엄마가 직장에서 병원으로 달려왔다.
오후 7시45분. 은결이의 진단 결과가 나왔다. 우측 뇌부종 및 우측 경막하 출혈. “오른쪽 뇌는 이미 괴사된 것으로 판단되며 좌측 뇌까지 영향을 미쳐 생명이 위독한 상태입니다.” 수술조차 할 수 없는 상황. 기적적으로 살아나더라도 반신불수가 될 확률이 100%라는 의료진을 말을 듣고 부모는 주저앉았다. 산소호흡기를 꽂고 중환자실에 입원한 지 30일째. 은결이의 혈압 수치가 ‘0’으로 떨어졌다. 심장은 더 이상 뛰지 않았다. 두 돌 생일을 열흘 앞둔 7월 20일, 오전 10시였다.
“학대가 의심됩니다”
은결이가 병원에 입원한 지 5일째 되던 6월 25일. 신경외과 의료진은 ‘환아 입원 당시 부기가 있으며 다발성 홍반이 보이고, 망막출혈이 관찰돼 아동학대가 의심된다’며 병원 사회사업팀에 협조를 의뢰했다. 당시 담당의사 허륭(현 인천성모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지난 1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망막출혈은 아동학대의 대표적인 외상 징후”라고 설명했다.
사회사업팀은 아동학대전문기관인 굿네이버스 경기동부지부 경기성남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했고, 이 기관은 보호자와 어린이집 원장의 진술을 토대로 경기광주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다. 사건 발생일로부터 23일이 지난 뒤였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어린이집부터 찾아갔다. 49평 아파트로 방 4개, 욕실 2개, 거실과 주방이 달려 있었다. 교사는 원장 포함 3명. 원아는 은결, 은찬 쌍둥이 형제까지 포함해 총 17명이라고 했다. 먼저 시설 안전점검에 들어갔다. 아이들이 활동하는 공간엔 안전매트가 깔려 있었고, 욕실 바닥에도 매트가 깔려 있었다. 가장 높은 놀이기구는 미끄럼틀. 140㎝였다. 특별히 위험한 시설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나 어린이집 안엔 CCTV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CCTV 설치는 정부 권장 사항일 뿐 현행법상 강제할 규정은 없다. 경찰은 증거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어린이집 아이들에게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어린이집 원장이 밝힌 10시간
원장이 경찰에서 진술한 은결이 하루는 이랬다.
08:00 울면서 등원(안아서 토닥거리자 울음 그침).
08:20∼09:00 죽을 먹이는데 오른쪽 눈 주변이 빨간 것을 발견. 할머니에게 연락해 안약 받아 옴. 몸에서 냄새가 많이 나 은찬이와 함께 욕실에 데리고 가 샤워를 시킴. 왼쪽 이마 부위에 멍 발견. 또래 아이와 놀다 부딪혀 생겼겠지 생각. 오른쪽 눈에 안약을 넣자 붉은 기가 가시고 얼굴이 밝아짐.
09:00∼09:30 원생들이 밥을 먹을 때 은찬이와 함께 거실에서 자동차를 타고 놂.
09:30∼11:00 수업 및 놀이.
11:00∼12:00 잎새반(은결 형제 포함 3명) 담임 교사 수업.
12:00∼13:00 점심식사 및 양치, 세수.
13:00∼13:30 자동차 놀이.
13:30∼15:30 다른 아이들이 낮잠을 자는 동안 혼자만 놀이.
16:00 낮잠.
17:00 밥을 먹이려 깨우는데 일어나지 않음. 바깥바람을 쐬면 깨어날까 아이를 업고 나감. 코까지 골며 곤한 잠을 잠. 업힌 채 트림 두 차례.
18:00 아이를 업은 채로 3층 집에 데려다 줌.
은결이의 담임교사는 원장과 진술이 같았다. 원장의 친동생인 교사(30)는 다른 사실을 추가했다. 평소엔 밥과 과자를 빨리 잘 먹는 편인데 사건 당일 점심을 먹을 때는 두 번 정도 숟가락을 놓쳤으며, 양파링 과자를 먹을 때 과자 4개를 두 손으로 받았으나 역시 두 차례 떨어뜨렸다(이 교사는 후에 해당 진술을 번복, 은결이가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인 적이 없으며 원내에서 넘어져 다치거나 폭행은 없었다고 말했다).
부검 결과: 외부 충격에 의한 뇌출혈
경찰은 7월 23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다. 사인(死因)은 외상성 경막하출혈 및 이에 합병된 급성 화농성 폐렴으로 나왔다. 외상성 경막하출혈은 머리에 가해진 직접 충격이나 회전력에 의해 뇌와 경막 사이를 연결하는 혈관이 찢어지면서 발생한다. 어린아이의 경우 이 같은 요인으로 외상성 경막하출혈 외에 망막출혈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의식장애와 같은 임상증상은 손상발생 후 수분에서 수 시간이 경과하여 나타난다는 게 국과수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은결이를 숨지게 한 외부충격이 어디서 왔는지 밝혀내지 못했다. 수사에 착수한 지 8개월 만인 지난 3월 어린이집 측에 대해 무혐의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뇌출혈의 원인을 특정할 수 없고 범행 입증이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3개월 뒤 검찰은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유족은 항고했지만 기각됐다.
어린이집 원장을 만나다
지난달 31일 오후 4시30분. 은결이가 다니던 어린이집을 찾아갔다. 벨을 누르자 원장이 나왔다. 자그마한 체구에 다부진 인상이었다. 차분하고 싹싹한 말씨였지만 은결이 얘기를 꺼내자 원장은 가슴에 손을 얹고 고개를 숙이더니 거친 숨을 몇 차례 몰아쉬었다. 돌아가 달라는 원장의 말에 발길을 돌리려는데 원장이 말문을 열었다.
“저기요. 아이가 병원에 실려 가기 한 달 전에 집에서 넘어져서 후두부 쪽이 부풀어 올랐대요. 그런데 병원에 안 데려 갔대요.”
원장은 한달 전 집에서 넘어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지만 국과수 부검 결과에는 수 시간내 진행된 뇌출혈로 나왔다. 그녀는 유족이 청구한 배상금액(3억4000만원)을 말하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어린이집에서 다른 사고나 사건은 없었나요.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었어요. 그때 다니던 아이들은 지금 계속 다니고 있고요.”
그때 원장의 동생인 교사가 앞치마를 두른 채 나타났다. “너무들 하시는 거예요. 진짜 너무들 하시는 거예요. 이것도 제보 올린 거예요? 그분들이? 저 이것 때문에 상처 많이 받아서 절대 취재 응하지 않는다고 했었거든요. 경찰서에서도 취재 응하지 말라고 했었거든요! 나가주세요.”
당시 이 어린이집을 다녔던 아이의 부모 3명과 통화했다. 사건 이후 다른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고 있으며 다른 아이들도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경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어린이집 운영이 잠시 중단된 게 이유였다.
끝나지 않은 슬픔
지난 1일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는 유족들이 어린이집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 1심 선고가 있었다. 재판부는 “어린이집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은결이가 조기에 치료를 받을 수 없게 된 사실이 인정된다”며 유족들에게 2000만원을 배상할 것을 명령하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그러나 어린이집에서 뇌출혈이 발생했다는 원고의 주장은 증거가 없다며 기각했다.
은결 아빠는 은결이를 가슴에 묻었다. 영유아부 교사로 10년간 교회에서 봉사했던 은결 아빠. 이제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은결이의 마지막 사진은 사고 전날 교회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아빠는 은결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밖에 없었던 자신에게 일차 책임이 있다며 가슴을 쳤다.
은찬이는 쌍둥이 형의 부재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똑같은 차, 똑같은 인형, 똑같은 장난감이 두 개씩인데 은찬이는 모두 자기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은찬이는 어딘지 외로워 보였다. 조금만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금세 토라졌고, 떼를 쓰거나 울거나 아니면 아빠를 때렸다.
“소아과 의사가 그러더라고요. 뱃속에서부터 형이랑 같이 있었기 때문에 형의 빈 자리가 클 거라고. 각별히 관심을 기울이라 그러데요.” 외할머니가 은찬이를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은결이와 행복했던 시절을 추억하던 아빠는 은찬이와 은결이가 함께 목욕하던 동영상을 노트북으로 보여줬다. 아빠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지만 은찬이는 신기한 듯 한참을 바라봤다. “은찬이랑 친구랑 목욕하네.” 은찬이는 형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은결이 엄마는 사건 이후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은결 아빠는 직업을 세 번 바꿨다. 이들 부모는 절규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죽어 돌아오는 일이 생겼는데 그 원인을 밝혀낼 수 없다면 어떻게 전국의 부모들이 안심하고 어린이집에 아이를 집에 맡길 수가 있겠느냐고.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어린이집에서 발생한 사망사고는 12건, 아이가 다쳐서 돌아온 부상사고는 3415건이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광주=글 이경선 기자, 사진 김지훈기자 boky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