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동 1985’, 불편하지만 보지 않을 수 없다

‘남영동 1985’, 불편하지만 보지 않을 수 없다

기사승인 2012-10-08 15:24:01

[쿠키 영화] 고문을 하는 이도, 고문을 받는 이도 모두 ‘사람’이다. 몇몇 권력자들 때문에 행해지는 ‘고문’이라는 극악한 행위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미쳐가게 만든다. 가해자는 스스로 뭔 짓을 하는지 모르게 미쳐가고, 피해자는 그 행위 자체를 못 견뎌 미친다. 억울한 피해자를 물 고문하면서, 전날 회식 이야기와 여자친구 이야기를 태연히 하는 이들이 과연 정상일까.

올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오른 영화 ‘남영동 1985’(감독 정지영)는 보는 내내 관객들을 아프게 만든다.

영화는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민주화 운동 시절 당한 고문을 다뤘다. 김 상임고문은 민청련 사건으로 1985년 9월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22일 동안 참혹한 고문을 당했다. 영화는 김 상임고문이 쓴 수기 ‘남영동’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극중 김 상임고문은 김종태로 나온다. 이름을 바꾼 것은 정지영 감독이 고문이라는 것이 김 상임고문 한명 뿐 아니라, 여러 피해자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정했다. 이는 영화 자체에서도 느껴진다. 영화는 김 상임고문의 인생보다는 고문에 묘사에 집중한다.

칠성판이라 불리는 몸을 고정하는 판에서 물고문, 전기 고문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 고문에 참여한 이들이 ‘장의사’라고 부를 정도로 악랄한 이두한(현실에서는 이근안)은 태연하게 김종태를 고문한다.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사람의 몸을 해체시키고 괴롭힌다. 아니 정확히는 정신을 해체하기 시작한다. “칠성판 가져와”라는 말은 어느 순간 관객들조차 소름끼치게 만든다.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던 김종태도 결국 “시키는 대로 하겠다”며 무릎을 꿇었다.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감정이입은 엄청나다.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에서 숱하게 봐왔던 고문 장면이지만, ‘남영동 1985’가 보여주는 현실감은 고개를 돌리지 못하게 만든다. 코를 향해 물을 부어대는 고문기술자들의 모습과 이를 못참고 괴로워하는 김종태 사이에서 관객은 같이 괴로워하고, 같이 숨을 멎게 된다. 흔히 영화를 보며 갖는 감정인 ‘내가 저 자리에 있었으면’은 아예 부질없음은 물론 떠오르지 조차 못한다.

그리고 이런 것을 가능케 한 것은 배우들의 힘이다. 어떤 영화든 뛰어난 배우가 보여주는 스크린 장악력은 높이 평가받지만, ‘남영동 1985’는 배우에게 존경심을 불러일으킨다. 모든 장면이 ‘연기’라는 단어로 한정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와 같은 고문 장면에 배우들 스스로 ‘어디까지 가야하나’를 끊임없이 고민했으니 말이다.

김종태 역의 배우 박원상을 향해 정 감독은 “다른 배우라면 중간에 도망갔을 것”이라며 그의 연기에 대해 극찬했다. 실제로 영화를 보는 내내 김종태 역을 맡기에 박원상이 아닌 다른 배우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박원상은 “인간이 인간을 철저히 해체시키는 고문의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참고할 것이 없다는 막막함, 그리고 과연 이 연기와 이 인물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었다”며 어려움을 털어놨다.

박원상과 대척에 서있는 고문기술자 이두한 역의 이경영 연기도 ‘역시’를 외치게 만든다. 어쩌면 평소 선량한 느낌으로 옆집 아저씩 같은 느낌을 대부분 보여줬던 이경영였기에 그가 보여주는 잔인함은 배가되어 다가온다. 여기에 짧지만 강렬한 느낌을 준 문성근에, 남영동 분실을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명계남 등 배우들의 열연은 영화가 끝나고 긴 여운을 남긴다.

‘남영동 1985’는 11월 말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아직 배급사를 정하지 못했다. 대선이 있는 정치의 계절에 ‘남영동 1985’가 불어올 파장이 어떤 형식으로 어느 정도로 불지도 관심이지만, 당시 고문이라는 것에 직간접적으로 개입되었던 수많은 세력들이 이 영화를 얼마나 불편해 할지도 궁금하다.

부산=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 / 트위터 @neocross96
유명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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