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인터뷰를 더 많이 해야 합니다 영화가 상영되고 나서도 분명 주저주저하시면서 영화를 봐야할까 고민하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실제로 미리 영화를 보신 분들이 블로그나 트위터에 올린 글을 보면 보기 힘들다고 말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끊임없이 그 분들을 보게 만들고 싶고, 그래서 제가 더 열심히 홍보를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남영동 1985’는 굉장히 아프다. 영화 속에서 고문을 받는 이들도 고통스럽지만, 보는 이들도 고통스럽다. 영화의 대부분이 물고문, 고춧가루 고문, 전기고문이 이뤄지기 때문에 쉽게 눈을 뜨고 응시하며 보기가 힘들다. 그 중심에 배우 박원상이 있다.
‘남영동 1985’는 고(故) 김근태 의원이 1985년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22일간 고문을 당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김근태를 모델로 한 김종태를 연기한 박원상은 이 영화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듯한 열연을 선보인다. 그가 고통스러워할수록, 더 모진 고문을 받을수록 보는 이들은 답답하고 아파했다. 때문에 사실 이 영화를 ‘반드시 봐야 하는 영화’라고 말하지만, 그 안에서 일부 주저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그게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어쩔수 없는 핸디캡이죠. 고문을 당하는 사람을 똑바로 봐야하고, 카메라가 직접 응시하고 있으니까요. 물론 그게 감독님의 연출의도이기도 하죠. 응시하기 힘들더라도 2시간 동안 꼭 보자라고 말하시니까요. 고문의 표면적인 것을 소개하는 영화가 아니라, 2시간 동안 관객이 고통을 같이 느껴야 하는, 각인이 되든, 지나간 것에 대한 상기가 되든요. 부드러운 이야기로 전달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영화가 끝나면 감독님이 이야기하세요. ‘여러분 힘드셨죠. 힘드시라고 만든 영화에요. 여러분은 2시간 힘들었지만, 배우는 2달 동안 힘들었어요. 또 김근태 의원님은 평생 힘들었다고 돌아가시고, 아직고 많은 고문 피해자들이 매일매일 힘들어하세요. 우리가 2시간 힘들고 아파하며 그분들의 마음이 이해하는 것도 괜찮지 않나요’라고요. 그게 감독으로서 진심으로 관객에게 던지는 말인 것 같아요.”
박원상은 비단 기자와의 인터뷰뿐 아니라, 많은 매체와 인터뷰에서 당시 시대에 대한 부채의식을 이야기했다.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는 내용이지만 박원상은 유독 이 부분을 떠올렸다.
“제가 88년도 신입생 시절에 한창 연극에 빠져있었는데, 당시 학교(숭실대학교)에서 박래전 선배가 분신으로 투신해 돌아가셨죠. 연극을 하는 저에게 총학생회에서는 공연을 중단해달라고 했지만, 묵념만 드리고 공연을 했죠. 연극을 좋아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 문제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데, 그런 제가 과연 김근태 의원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는 털어냈을까. 아니 정확히는 그가 이 역할을 맡았을 때, 이 같은 부채의식을 고민하고, 털어내려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연기자로서 그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을 수도 있다.
“글쎄요. 털어졌는지는 모르겠어요. 전 그냥 배우니까, 누가 ‘박원상 씨 이런 작품 있는데 해볼래요’라고 저를 선택하면, 그때 다시 제가 선택하는 거죠. 제가 배우로서 저에게 온 작품 중에 이 작품은 해야 되는 작품이구나‘라고 생각했던 것은 밀어내지 않고 만나왔던 것 같아요. 제가 배우고,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이거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작품을 만나겠죠.”
박원상은 과거 인터뷰에서 캐릭터에 특징은 대본에서 찾는다고 말했다. 의사 역할을 하기 위해 굳이 어떤 실존하는 의사를 롤모델로 삼는 것이 아니라, 대본 안의 캐릭터에 몰입해 하나하나 잡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보편적인 캐릭터가 아니다. 실상 이는 극 초반 캐릭터를 잡는데 박원상을 흔들었다.
“사실 배우가 연기를 하는데 있어서 그 부분은 달라질 수 없어요. 어떤 작품을 하든 대본 안에서 내가 찾아야 할 답이 있어요. 대본 밖에서 뭔가 의지하고 찾으려 하면 내가 가야하는 것을 놓치는 실수를 할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이번 작품을 준비하는 초반에 김근태 의장님의 자료를 찾고, 영상을 보면서 자꾸 의지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것을 형님들이 자꾸 끄집어 내주려 하셨어요. 다행이 그런 도움으로 촬영을 하면서 부담을 덜어내며 한 장면 한 장면 김종태로 갈 수 있었죠. 단지 ‘내가 과연 감당할 자격이 있나’라는 고민은 계속 됐죠.”
‘남영동 1985’에서 가장 소름끼치는 장면은 죽음까지도 갈 정도로 고문을 당하는 자와, 일상에서 사는 고문 가해자들이다. 고문피해자는 전기 고문에 죽음 직전까지 가지만, 그 사이 가해자들은 야구 중계를 라디오로 들으며 흥겨워 한다. 한 공간에서는 이 이질적인 모습은 ‘인간’ 자체에 대해서까지 고민하게 만든다.
“완전 잘못된 거죠. 그러나 지금도 우리가 살아가는 부분의 어떤 한 곳을 떼어내어 보면, 그 프레임 안에서는 잘못된 것 투성이죠. 단지 그것을 짚어내느냐, 아니면 그냥 스쳐지나가나 이 차이인 것 같아요. 제가 청파동에서 태어나 선린 중학교 근처에서 30년을 살았어요. 대공분실 바로 옆이었죠. 남영역도 근처고요. 거기는 술집도 많고, 소음도 심해요. 영화에서 김종태가 창가로 다가가서 귀를 대는 장면이 있어요.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기 위한 행동이죠. 그 폐쇄된 공간에서 그런 소리라도 없다면 아마 더 절망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영동 대공분실은 아이러니한 공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대표 건축가인 김수근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박원상에게도 특별하게 다가왔다.
“남영동 대공분실을 지은 분이 유명한 김수근 건축가에요.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연극을 처음 본 곳이 소극장 ‘공간사랑’이란 곳이에요. 그리고 그 옆의 원서 공원도 참 좋아했죠. 그런데 이 두 곳 모두 김수근 건축가가 지은 곳이더라고요. 사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일제 시대 어쩔 수 없이 부역에 협조했던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그 분은 돌아가셨지만, 참 아이러니하고, 씁쓸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이 영화의 백미는 장관이 된 김종태와 고문기술자 이두한이 만나는 장면이다. 그리고 이두한이 김종태를 고문할 때마다 들려준 ‘클레멘타인’ 휘파람 소리가 이 장면에서 소름끼치게 다시 들려온다. 단지 고문 피해자로 연기한 박원상도 그 ‘고문당하는 연기’가 몸에 남아 반응했다.
“사실 내가 용서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면 못할 것 같다. 김근태 의원도 ‘남영동’ 책을 보면 용서하지 못했고, 그런 자신을 자책했다고 나온다. 이해가 안됐다. 용서는 잘못된 사람이 빌고, 피해자가 행하는 것인데 왜 피해자가 그것에 대해 자책까지 해야 되는지. 나중에 이근안이 ‘고문은 예술’ 운운하는 것을 보고 진심으로 이 사람은 사과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영화에서 난 단지 ‘고문당하는’ 연기를 했을 뿐인데도 몸이 그 고문을 기억하고 있었다. 문 밖으로 나가다가 뒤돌아보는데, 경영이 형 입이 정말 휘파람 부는 것처럼 보였다. 머리는 연기라고 알지만,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소름이 끼쳤다. 진짜 고문을 당한 분들은 평생 기억하고 있다는 것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남영동 1985’는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15세 관람가’를 받았다. 모진 고문 장면 그리고 박원상의 노출 장면이 등장하는데도 불구하고 ‘15세 관람가’는 영화계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박원상은 이에 대해 “반가운 일”이라며 웃었다.
“힘든 영화지만 개인적으로 어린 학생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어요. 사실 세상이 속도에 치이면서 과거에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모습을 아이들이 습자지처럼 빨아들이고 있고요. 아이들이 잘못됐다면 그건 어른들의 잘못이죠. 그리고 어른들 역시 과거의 잘못을 털어내야 하고요. 영화가 개봉되고 전 중학생인 아들을 데리고 볼 생각입니다. 사실 그 아들이 이 영화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제일 궁금해요.”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 / 사진=박효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