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 뽑아 키우고 싶은데 “기름밥 싫다”
[쿠키 경제] 아침 7시, 익숙한 발걸음으로 경기도 안산시 성곡동 도금단지에 자리잡은 도금업체 ㈜SKC의 공장 안을 한 바퀴 돌았다. 빽빽하게 들어선 기계와 자재들 사이로 직원들이 한 명 두 명 자리를 잡았다. 윙윙거리는 기계음과 함께 하루가 시작됐다.
30년째 도금업 ‘한 우물’을 파서 연 매출 300억원을 올리는 번듯한 기업으로 키워냈다. 하지만 공장 안을 분주히 오가는 근로자들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갈수록 인력난, 고령화가 심각해지고 있어서다. 젊은 사람을 뽑고 싶지만 중소기업에다 도금업체라고 하면 다들 손사래를 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생산직 중에 절반은 피부색도, 국적도 다양한 외국인 근로자다. 나머지 내국인 근로자는 40대부터 60대까지. 그나마 절반은 50대 이상이다.
㈜SKC를 운영하는 신정기(63) 사장에게 취업난은 먼 나라 얘기다. 일자리가 부족하다지만 ‘기름밥’ 먹는 일은 빈자리가 있어도 외면당하기 일쑤다. 도금업계에서는 중간 이상의 규모를 갖추고 있지만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대기업과는 경쟁이 안 된다. 연봉 수준도 낮고 ‘폼’도 안 난다. 업종에 대한 편견은 가장 큰 장애물이다.
“도금업은 예전부터 더럽고 힘들다는 3D 업종이었지. 이제 환경은 많이 개선됐는데 가장 중요한 인력 문제가 해결이 안 되네.” 신 사장이 나직이 말했다.
영업, 마케팅 등을 담당할 핵심 인력은 대학을 졸업한 젊은피로 채우고 싶지만 뜻대로 안 됐다. 중소기업에 다니면 신붓감 구하기가 힘들다며 거들떠보지 않기 때문이다. 가물에 콩 나듯 젊은 직원이 들어오지만 얼마 못 있고 떠난다. 관리직은 사정이 좀 나은 편이다. 4년제 대학을 나와도 취업하기가 힘들다 보니 가끔씩 문을 두드린다.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까. 신 사장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지금 같아서는 외국인 근로자 수급이 원활히 이뤄지는 것에 감사해야 할 형편이다. 회사를 이끌어나갈 젊은 기술자를 키워내고 싶지만 그런 기회가 올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신 사장은 젊은 외국인 근로자들이라도 오래 남아 현장의 기술을 이어주길 바란다. 우리 산업 현장의 공장이 늙어가고 있다. 숙련기술 단절, 생산직 인력 부족이 심각한 수준이다. ㈜SKC 같은 기업은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무역협회는 2000년부터 올해까지 취업자 평균 연령을 분석한 결과 2000년 이후 생산직에 취업한 근로자의 평균 나이는 7.4세가 높아져 올해 48.3세에 이르렀다고 22일 밝혔다.
김찬희 기자, 안산=임세정 기자 chkim@kmib.co.kr
58세 직원 “내 또래나 나보다 고령인 사람들 많다”
“앞으로 5년이나 일할 수 있으려나. 나이가 많아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네.”
일을 하다가 잠시 쉬러 나온 정재영(58)씨가 지친 얼굴에 엷은 미소를 띠고 말했다. 경기도 안산시 성곡동 635-7번지. 18개 도금업체가 모여 있는 아파트형 공장 단지다. 4층짜리 빨간 벽돌 건물들 가운데 정씨의 일터인 ㈜SKC가 있다. 가을비에 공기가 제법 쌀쌀해진 지난 15일 오후, 건물 1층 작업장에서 만난 회색 작업복 차림의 정씨는 이마가 조금 벗겨져 있었다.
이 공장에서는 플라스틱으로 모양을 만든 뒤 동·니켈·크롬 등 금속을 입힌다. 대부분 공정은 자동화돼 있다. 정씨는 자동 도금장치인 캐리어에 제품을 거는 일을 맡고 있다. 넓이 990㎡, 높이가 6m가량 되는 작업장에는 여러 액체 약품이 담긴 흰 수조가 줄지어 놓여 있다. 수조 위 천장에 있는 레일을 따라 폭이 2m 정도 되는 캐리어가 앞으로 움직이면서 걸려 있는 제품을 수조에 차례로 담갔다가 빼는 동작이 반복된다. 엠블럼 등 자동차 부품과 수전금구류(욕실·부엌용품)가 만들어진다.
정씨는 “여기에 내 또래나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많다”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런 작업 현장에는 안 오려고 해서 그런지 청년들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공장이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젊은이들이 생산직·중소기업을 외면하면서 숙련기술의 단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기초산업의 허리가 끊어질 지경이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50대 이상(준고령층) 생산직 인구는 2000년 164만명에서 올해 418만명 수준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전체 생산직 근로자 중 이들의 비율도 23.1%에서 48.3%로 증가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청년층 비율은 17.8%에서 8.8%로 하락했다.
이 기간 연령대별 생산직 취업자 수 변화는 더 놀랍다. 남성의 경우 청년층 근로자는 45만1000명 감소했지만 준고령층 근로자는 163만명 증가했다.
학력별로 분석했을 때도 청년층 고졸 생산직 근로자 수는 2000년 112만2000명에서 2013년 51만명으로 반 토막 났다. 반면 고졸의 준고령층 생산직 근로자는 2000년 161만4000명에서 올해 390만2000명으로 2배를 훌쩍 넘었다. 청년층 고졸자마저 생산직 일자리를 외면하는 것이다.
SKC에서 20년째 근무 중인 한계상(48) 공장장도 곧 50대에 접어든다. 한씨는 “작업이 거의 자동화돼 있기 때문에 현장은 그다지 위험하지 않은데도 젊은 사람들은 오려고 하지 않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일하던 사람들이 나이를 먹어가며 계속 남아 있고 뒤를 이을 사람은 없는 형편이다.
자재 구매부서 신기주(41) 차장은 이 회사에서 보기 드문 40대 초반이다. 첫 직장인 이곳에 관리직으로 입사해 15년을 일했다. 신 차장은 “약품관리, 제품관리, 외국인 직원 관리 등의 업무는 아무래도 노하우가 필요하다”며 “젊은층이 지원을 안 하는 건 월급이 적기 때문일 것”이라고 씁쓸해했다.
1950년대 중반에서 196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 대부분은 10년 안에 은퇴할 것으로 전망된다. 청년층이 기피하는 생산직을 중심으로 숙련기술이 끊길 우려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90년대 이후 제조업 현장의 젊은 인력은 대부분 외국인 근로자로 대체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언젠가는 자신의 나라로 돌아간다.
SKC 신정기 사장이 회사 기틀을 잡던 80년대에는 일본에 있는 도금업체에 뻔질나게 견학을 다녀오면서 기술 따라잡기에 열정을 쏟았다. 젊은 기술자들의 피와 땀 덕분에 우리 도금기술은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수준이 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동안 이뤄놓은 기술을 이어받을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 직면했다.
해법은 없을까. 신 사장은 “직업교육대학에서 일정 과정을 수료한 학생에게 업체에서 5년 정도 근무하면 병역특례 혜택을 주는 방안을 정부에 건의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생산직으로 취업할 가능성이 높은 고졸 취업준비생 등을 대상으로 위탁 직업교육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취업난으로 대졸자의 생산직 취업도 점차 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이들에게 적합한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정년연장, 임금피크제 등 고령 인력을 위한 근로시스템 개선도 병행돼야 한다. 무역협회 오호영 객원연구위원은 22일 “대학과 기업 요구 간의 미스매치 해소를 위한 대학생 대상 도제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면서 “더불어 정부 지원 하에 고령 기술·기능 인력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를 데이터베이스화해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안산=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일·학습 병행 듀얼시스템 통해 2017년까지 훈련생 10만명 육성
정부는 중소 제조업의 고령·공동화의 가장 큰 원인으로 숙련·보상·정보의 3대 불일치를 꼽고 있다. 산업현장과 동떨어진 교육 프로그램 탓에 구직자가 중소기업이 원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직자 입장에선 임금·복지·장래성이 낮은 중소 제조업체가 매력적이지 않다. 게다가 구인·구직 정보 및 정부 지원정책에 대한 정보 부족이 겹치면서 미스매치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정부는 올해부터 시작한 일·학습 듀얼시스템에 기대를 걸고 있다. 중고생이 대학 진학 대신 취업을 선택해서 기업 현장에서 실무교육을 받고 대학 학위나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새로운 교육훈련 제도이다. 정부는 오는 12월 듀얼시스템 1기생을 선발할 계획이다. 맞춤형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보유한 50개 기업이 특성화고 졸업반 학생을 훈련생으로 선발할 예정이다. 훈련생들은 근로자 신분으로 기업과 근로계약을 맺고 급여를 받으면서 교육을 받게 된다. 기업 또는 외부전문기관의 평가를 통과하면 훈련생들은 고교 졸업을 인정받게 된다. 성적이 우수한 훈련생들은 기업에 정식 직원으로 채용된다. 정부는 2017년까지 듀얼시스템을 통해 1만개 기업에서 10만명의 훈련생들을 육성할 계획이다. 훈련생 중 70∼80% 정도가 해당 기업 또는 동종 업계로 진출할 수 있을 것으로 노동부는 전망한다.
이와 함께 정부는 중소기업에 맞춤형 인력을 공급하기 위해 산업기능요원을 2017년까지 5500명 규모로 늘리고 취업성공패키지 참여자를 기술병으로 선발하는 맞춤 특기병제를 신설하는 등 병역혜택을 확대할 계획이다. 제조업체·산학연계 우량중소기업 등을 병역지정업체로 확대하고 특성화고 졸업생 및 중소기업 재직자를 산업기능요원으로 우선 선정할 방침이다.
정년 60세 연장 등 ‘오래 일하는 풍토’를 만드는 것도 정부의 과제다. 2050년이 되면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고령화 정도가 가장 높은 국가가 된다. 이에 지난 4월 국회는 58세였던 근로자의 정년을 60세로 늘리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공공기관 및 지방공단, 종업원 300인 이상 사업장은 2016년 1월 1일부터 국가·지자체 및 종업원 300인 미만 사업장은 2017년 1월 1일부터 정년이 연장된다. 개정법은 정년 연장에 연동해 노사가 여건에 따라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임금피크제 등 임금체계 개편이 사업장에 연착륙하도록 이끄는 것도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