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경제]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위기론’을 다시 꺼내들었다. 지난 2일 신년사에서 “지금의 기업 환경은 위기, 그 자체”라고 말한 지 보름도 안됐다.
구 회장은 위기를 얘기하며 변화·혁신을 요구했다. 경영 환경이 나쁜 상황에서 조직의 긴장감을 한층 높이려는 것이다. 시장을 선도할 제품을 만들어 확고한 글로벌 1위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비장한 각오도 담겨있다.
구 회장을 비롯한 LG그룹 최고경영진은 15일 1박2일 일정으로 경기도 이천 LG인화원에서 글로벌 전략회의를 열었다. 강유식 LG경영개발원 부회장, 구본준 LG전자 부회장,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이희범 LG상사 부회장, 박진수 LG화학 부회장 등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와 사업본부장 40여명이 참석했다.
LG그룹은 회의에서 글로벌 금융환경과 기술혁신 변화, 국제정세 변화 등 3가지 주요변수에 대응할 전략을 고민했다고 17일 밝혔다. 구 회장은 참석자들에게 “직접 경험하고 절실하게 느꼈겠지만 우리가 처한 경영 환경은 위기 상황”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우리가 가진 자원이 다소 부족한 경우라도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작은 움직임 속에서 큰 변화를 끌어내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켜야 한다”고 강도 높게 주문했다.
그룹 안팎에서는 구 회장이 위기를 외치는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외부 상황은 그야말로 안개 속이다.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의 경기회복 신호가 뚜렷해지고 있지만 신흥국은 불투명하다. 미국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수출에서 내수로 바뀌는 중국의 경제성장 정책, 일본 아베노믹스의 엔저 악영향 등을 감안할 때 사방이 지뢰밭이다.
그룹 내부 상황도 만만찮다. 확실한 미래 먹거리를 찾지 못했는데 주력제품의 성장세는 둔화되고 있다. 새 기술이 출현하고 산업구조가 바뀌는 등 시장의 변화 움직임도 거세다.
CEO들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이 상존하는 가운데 세계 경제가 본격적인 저성장 국면에 진입한 것으로 전망했다. 엔저가 우리 기업 경쟁력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로 신흥국 금융 리스크가 커질 수도 있다고 봤다. 미래 기술혁신에 대한 예측과 대응이 더욱 복잡해지는 등 사업 환경이 위기임을 재확인했다. LG그룹 관계자는 “변화 흐름을 사업 기회로 연결하고 원천기술 투자와 기술 시너지를 강화해 혁신 역량을 높여나가기로 했다”며 “긴장감을 높이자, 정신을 바짝 차리자는 내부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찬희 기자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