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류현진(당시 한화)에 이어 2007년 김광현(SK)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프로야구는 왼손 투수 선발 시대가 열렸다. 데뷔 첫해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석권하며 국내 최고 투수로 군림한 류현진과 2000년대 후반 SK 왕조의 황태자였던 김광현은 왼손 에이스 시대의 주인공이다.
왼손 파이어볼러(강속구 투수)는 지옥에서도 데려온다는 야구계의 속설을 굳이 꺼내지 않더라도 왼손 투수는 오른손 투수보다 장점이 많은 것으로 평가된다. 우선 왼손 투수는 그 숫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희소성이 있고, 1루 견제에도 유리하다. 특히 우투좌타 등 인위적인 왼손타자가 많아지는 요즘 왼손 타자에 강한 왼손 투수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토종 왼손 선발 투수 전성시대는 2011년 김광현이 부상으로 부진에 빠지기 시작한데 이어 류현진이 2012년을 끝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서 사실상 끝났다. 물론 두 선수 외에도 왼손 선발 투수로는 2012년 다승 타이틀을 차지한 장원삼(삼성)이 있지만 평균자책점이 높아 상대적으로 위압감은 적다는 평가다. 그리고 장원준(롯데)은 2012년 경찰청에 입대했고 양현종(KIA)은 부진의 늪에서 오랫동안 헤맸다. 따라서 국내 구단들은 외국인 왼손 투수들 영입에 심혈을 기울였다. 유먼(롯데), 벤헤켄(넥센), 주키치(LG) 등이 대표적이다.
올해는 다르다. 토종 왼손 에이스 3인방이 살아났다. 가장 눈길을 끄는 선수는 김광현이다. 지난해 3년 만에 10승 반열에 오르며 반등의 계기를 마련한 김광현은 올해 명예 회복을 벼르고 있다. 실제로 시범경기에서 보여준 김광현의 구위는 강력했다. 비록 29일 개막경기 넥센전에서 패전 투수가 됐지만 잇단 수비 실책 탓이 컸고, 상대 넥센 타선이 워낙 잘했기 때문이다.
양현종도 예사롭지 않다. 양현종은 지난해 옆구리 부상 전까지 다승-평균자책점 1위를 질주할 정도로 페이스가 좋았다. 비록 부상 이후 후반기에 주춤했지만 올해 다시 구위를 회복했고, 시범경기에서 14이닝 무실점 행진으로 위력을 뽐냈다. 2009~2010년 류현진·김광현과 함께 왼손 투수 3인방을 구축하던 당시 모습을 찾았다는 평가다.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장원준도 주목해야 한다. 장원준은 입대 전이었던 2011년 15승을 거두며 정상의 왼손 투수로 손꼽혔다. 군복무하는 2년 동안 퓨처스리그 평균자책점 1위를 차지하며 변함없는 투구를 펼쳤다. 지난 31일 롯데를 상대로 6⅔이닝 7피안타(1홈런) 2실점의 호투로 복귀 후 첫 선발등판에서 승리투수가 되며 활약을 예고했다.
‘빅3’ 외에도 역대 투수 FA 최고액에 계약한 장원삼과 지난해 두산의 왼손 갈증을 풀어준 ‘느림의 미학’ 유희관 등이 왼손 선발 시대의 한 축을 담당할 전망이다. 올해 최고의 왼손 선발은 누가 될지 도 흥미진진한 관전포인트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