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경제]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MS), 제너럴일렉트릭(GE) 직원들이 한국에 올 때 부인이나 자녀들을 데려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부인이나 아이들이 장기출장을 떠나는 남편이나 아빠와 떨어지기 싫어하는데다 외국에서 견문도 넓힐 수 있어서다. 아빠가 낮에 일을 하는 사이 부인이나 아이들은 경복궁 등을 관광하고, 저녁에는 온 가족이 모여 인사동에서 한식을 먹기도 한다. 이런 게 가능한 것은 회사 차원에서 해외출장 시 가족을 동반하는 것을 폭넓게 허용해왔기 때문이다.

이제 삼성전자 직원들도 이런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됐다. 삼성전자는 15일부터 국내 대기업 중 최초로 해외 출장 시 가족 동반을 허용했다. 일 때문에 가정을 소홀히 해선 안된다는 추세에 맞춘 결정이다.

삼성의 새 출장시스템은 부서장의 승인만 받으면 부모, 배우자, 자녀와 함께 해외출장을 갈 수있다. 대신 가족 동반에 따른 경비는 본인이 부담하고, 주재원 등 현지 근무자에게 관광 가이드 등 편의를 요청할 수 없도록 했다. 출장 업무에도 지장을 받지 않아야 된다.

위험 지역을 제외하곤 어디라도 가족과 함께 출장갈 수 있다. 하지만 동행이 제한되는 경우 등 규정을 엄격하게 정했다. 세계 3대 IT전시회와 월드컵, 올림픽 등 스포츠 행사도 업무 부담 등을 이유로 가족 동반이 허용되지 않는다. 회사의 보안·기밀과 관련되거나 전략 과제가 수반된 출장도 마찬가지다. 회사 관계자는 “기준이 명확해야 직원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고 정해진 선 안에서 제도를 적극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국내보다 해외 매출 비중이 훨씬 높고, 150개 이상의 해외 사업장이 있어 직원들의 해외 출장이 잦다. 특히 주요 시장인 북미, 유럽 등으로 장기간 출장을 가면 시차 때문에 한국의 가족과 대화하기도 힘들 때가 많았다고 한다. 때문에 직원들은 가족 동반 출장을 자주 요청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일과 가정을 모두 챙길 수 있도록 배려해 생산성을 더 높이는 글로벌 기업들의 트렌드를 반영했다”며 “직원들의 만족도가 아주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가정보다 업무를 중시하는 경직된 우리 기업 문화에서 가족 동반 출장이 정착하기엔 다소 시일이 걸릴 것이란 회의론도 나온다. 특히 상급자와 부하직원이 함께 해외출장을 갈 때 아랫사람이 편하게 가족과 함께 출장을 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혼자 가면 몰라도 상사랑 함께 간다면 출장 자체가 부담스러운데 가족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을 것”이라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